동화 공모전 수상
10년 전부터 내 삶의 마지막 직업은 동화 작가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소망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았기에 아무도 모르게 작가학교를 다녔더랬다. 그렇게 시작해 작가학교를 마치고 합평 모임을 했지만 그 모임은 곧 흐지부지 사라졌고 나도 생업에 빠졌다. 하지만 늘 가슴 한구석에는 무언가 찜찜한 구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몇 년 뒤, 다시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 수업은 들어가기도 어려웠다. 정해진 제재로 정해진 글자 수에 맞춰 글을 내야 했고 거기서 통과하면 선생님과의 면접을 거쳐야 했다. 그 공지사항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쳤다. 다른 때였다면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 겨우 마음을 다잡으며 1차 전형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2차 전형인 면접날이, 감자 입대 전 마지막 가족여행으로 잡은 일정과 겹쳤다. 여행지는 제주도였고 2박 3일 중의 두 번째 날이 면접일이었다. 가족들은 중간에 다녀오라고 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담당자에게 사정을 얘기했다. 담당자는 면접일을 바꿀 수 없다는 연락을 해왔다. 결국 면접을 포기했고 다음을 기약했다. 하지만 다음에 1차를 통과하리란 보장도 없어 심란했다.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선생님 수업이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도전해서 그 과정의 수업을 들었다. 1년 반 동안의 수업은 피가 되고 살이 되었지만 동시에 내가 계속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다. 그 무렵 코로나와 함께 그 수업은 자연스레 중단되어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들이 하나둘 등단하기 시작했고 점점 그 수가 늘어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만둔 것도 마냥 편치만은 않았나 보다. 결국 다시 발을 디뎠고 ‘열매를 거두려면 무조건 뿌려야 한다’는 지금 선생님의 지론을 따라 덜컥 공모전에 넣었다. 그리고 얼마 전 전화를 받았다.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안 받는데 어쩐 일인지 무심코 받았다. 그리고 통화 마지막에 난 담당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정말 제가 대상 맞는 건가요?”
담당자는 아주 친절하게 내가 맞노라고, 다시 한번 축하한다고도 말해 주었다.
어제가 시상식이었다. 콩알이와 남편이 따라왔다. 마지막 순간에 대상 상패와 꽃다발, 커다랗게 상금 금액이 적힌 보드를 받았다. 수상 소감도 말해야 했다. 단체 기념사진도 찍고, 가족사진도 찍었다. 주최 측에서 마련해 준 곳에서 심사위원과 식사도 했다. 2월경 책이 나올 거라는 소식도 들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들이라 당황스러웠지만 감사한 일이었고 어쩌면 다시금 걸어갈 길이 생긴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