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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한PD Jun 02. 2022

방송일을 버틸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

독한PD 에세이

올해로 벌써 15년째 방송 프로그램 제작하는 PD로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2007년도 20대 중반의 꽃다운 나이에 조연출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10년 뒤 반드시 멋진 프로그램을 만드는 PD가 되겠다는 것이 저의 꿈이었습니다.


운이 좋아 1년 만에 프로그램 입봉(조연출에서 PD가 되는 것을 뜻하는 업계 은어)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누가 그랬다죠. PD의 약자가 P 곤하고 D러운 직업이라고요. 그만큼 육체적, 정신적인 노동의 강도가 센 직업이라는 거죠.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열흘은 기본, 연작 프로그램을 할 때는 최대 3주 이상도 촬영해야 합니다. 이때는 오로지 촬영 현장에 몰입해야 하니 사생활은 엄두도 못 냈죠. 촬영 기간에 잡힌 가족 행사나 지인 모임은 갈 생각도 못했습니다.  촬영이 끝나고 사무실에 들어오면 조연출이 파일을 정리하는 동안 잠깐 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편집 작업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시사 전 날까지 긴장하며 편집에만 몰두했습니다. 이때도 물론 저의 사생활은 없었죠.

 

그래도 대한민국 일선에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자부심 때문이었을까요?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지면서 방송은 나가더군요. 그렇게 에너지를 다 쏟은 뒤 며칠 쉬었다가 다음 아이템이 잡히면 회의하고 촬영을 나가는 쳇바퀴 같은 날들이 반복됐습니다.     


노동의 강도도 세고 스트레스도 많았던 고된 직업.

이 업계에서 15년째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두 가지를 뽑고 싶습니다. 경험과 관계.


첫째로 '경험'. PD라는 직업은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합니다.  어떤 프로그램과 어떤 아이템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나라는 물론 많은 나라에 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예전에 ‘EBS 글로벌 프로젝트 나눔’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아프리카를 무려 6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우간다, 에티오피아, 모잠비크, 잠비아, 콩고, 말리..



 아프리카를 가려면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합니다. 20시간이나 비행하며 시차 적응 또한 해야 합니다.  '일반인들이 돈 주고 가기도 어려운 나라를 PD라는 직업으로 가기 때문에 늘 새로운 경험을 하러 간다, 여행을 간다'라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겨울 틈이 없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 호텔과 촬영 현장을 가는 내내 모두가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흙집에 살며 오염된 물을 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라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며 제가 하는 일에 더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촬영하면서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더 많았습니다.  이런 소중한 경험들을 제가 PD가 아니면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둘째로는 '관계'입니다. 저는 제가 제작했던 방송 프로그램 출연자와 지금도 인연을 맺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EBS 극한직업 촬영할 때 인연을 맺었던 분들이 많은데요. 지금도 그 출연자들이 살고 있는 곳을 지나갈 때마다 늘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여쭤봅니다. 시간이 나면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기도 하고요.

 

 당시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촬영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온 젊은 PD가 '형님'이라고 부르니 낯설고 어색했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내성적인 성향이어서 처음부터 '형님'이라고 부르기는 쉽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촬영 끝나고 막걸리 한잔하며 친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카메라를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진짜 속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직업상 카메라를 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꾹 참았습니다. 그냥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었죠.


그리고 다음 날


출연자들의 대답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질문에 툭툭 내뱉던 대답이 좀 더 부드러워진 거죠. 그러면서 인터뷰 내용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인터뷰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저를 '서울에서 온 낯선 PD'가 아니라 'PD 동생'으로 받아들이며 비로소 형님 동생 관계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출연자와 관계를 맺고 낮은 자세로 소통을 해야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경험과 관계. 이 두 가지가 있어서 저는 이 일을 하며 버틸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싸이월드의 사진첩이 공개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살았던 집에 꽁꽁 숨겨두었던 비밀 일기장을 여는 마음으로 저의 싸이월드 사진첩을 보았습니다. 거의 10년 만에 열어본 사진첩에는 방송을 막 시작하던 20대 시절의 제 사진들로 가득했습니다.


 

 멋진 PD가 되겠다는 꿈을 꾸며 이 업계에 발을 디뎠던 스물다섯 살 앳되보이는 청년의 사진이 가장 눈에 띕니다. 그 청년은 어느새 시간이 흘러 마흔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 드는 생각은 초심을 잃지 않고 이 일을 사랑하며 오랫동안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멋진 PD가 될 날이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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