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 ybacchus@naver.com]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권종관 감독, 2015)는 완성도나 예술성을 차치하고라도 영화가 드라마와 달라야 하고, 사실상 다른 이유를 잘 설명해 주는 상업 영화의 정도를 보여 주는 점에선 훌륭하다.
인천. 어수선한 사건 현장을 말끔한 수트 차림의 필재(김명민)가 주름잡으며 수사를 주도한다. “어허, 현장의 증거물을 그렇게 함부로 다루면 안 되지.”라며, 어리숙한 신입 형사를 가르치는가 하더니 어느새 수갑을 찬 피의자에게 다가가 명함을 건넨다. 알고 보니 그는 형사가 아니라 전직 경찰, 현직 법무사 사무장이다.
그는 모범 경찰 할아버지, 상습 전과자 아버지라는 비대칭적 가족력을 지녔다. 그나마 자신이 경찰 시험에 합격하는 날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 주신(?) 아버지에게 감사하며 열심히 범죄와의 전쟁에 앞장섰던 열혈 경찰이었지만 워낙 다혈질이었던 탓에 ‘마누라’(파트너 형사) 양용수(박혁권)와의 불화로 인해 일찍 옷을 벗었다.
선배였던 수사반장 항주가 “너 이런 데에 왜 이런 차를 몰고 와 위화감을 조성하냐.”라고 BMW 승용차를 지적하자 “애들 자극받아서 빨리 옷 벗고 돈 벌게 만들려고.”라고 대놓고 경찰의 현실을 조롱한다. 그는 철저한 자본주의 신봉자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고, 돈이 안 되면 뭐든지 안 한다.
검사 출신 변호사 판수(성동일)의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사실상 사건 브로커이다. 피의자에게 접근해 형량을 낮춰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수임료의 30%를 챙기는 상습 변호사법 위반자이다. 순태(김상호)는 전과자이지만 오로지 여중생 딸 동현(김향기)을 위해 택시 운전기사를 하며 착하게 살아간다.
그런 그가 갑자기 인천 대표 기업 대해제철 며느리 살인 사건의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체포된다. 동현에게 금세 나오겠다고 자신하지만 혐의가 점점 굳어지자 그는 신문 기사를 통해 접했던 모범 경찰 필재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낸다. 이 편지에 지금까지 돈벌레였던 필재가 갑자기 변하는 설정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그건 필재라는 한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이 점차 설명한다. 그는 유일한 식구인 치매 환자 할아버지(신구)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버릇없는 손자이지만 퇴근 때 할아버지의 간식을 챙기는 정 많은 효자이다. 그의 대칭적 가족력 설정은 그의 이중성 혹은 트라우마에 대한 보충 설명을 생략하게 만든다.
필재는 동현과 대화를 나눠 그녀의 급우인 한 소년이 순태의 알리바이를 입증해 줄 결정적인 증인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소년은 증언대에 설 것을 거부하고, 필재는 동현에게 그의 설득을 부탁한다. 또한 용수가 사건에 깊게 관여된 것을 파악하고 그를 만나 딜을 한다. 조건이 수락되자 필재는 더 이상 순태를 위해 손해 볼 이유가 없어진다.
그는 설득에 성공했다는 동현에게 이제 사건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다. 동현은 어른들의 치졸한 세계에 다시 한 번 실망하고 상처 받는다. 그런데 필재에게 갑자기 괴한들이 나타나 폭행을 가하더니 경고한 뒤 사라진다. 직감적으로 용수가 자신과의 약속을 깨뜨렸다고 느끼지만 이내 그가 살해된 소식을 듣는다. 결국 이 모든 사건의 배후는 인천을 지배하는 대해재벌의 실질적인 주인인 사모님(김영애)이었다는 걸 깨닫는데.
‘LA 컨피덴셜’으로 대표되는 범죄 수사물은 유머와 서스펜스, 불안과 카타르시스, 분노와 이완이 공존하는 게 공식이다. 그건 시나리오와 연출을 배우들이 몇 배 강화해야 하고, 그만큼 캐릭터가 확실할 때 가능하다. 그런 형식에 대비해 각 인물들의 성향은 매우 명징하고, 버라이어티하며,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이 역할에 매우 충실하다.
성동일, 신구, 이한위는 유머 담당이다. 할아버지는 이미 형사를 그만둔 필재가 멀쑥한 정장 차림으로 퇴근하자 “수사하는데 왠 가다마이(정장)냐.”라고 묻는다. 엉뚱하게도 사모님의 갤러리 개관 기념식에 초대받아 필재, 판수와 동석한 할아버지는 뷔페에서 만두에 집착하는 판수를 보며 “저게 검사 출신 변호사이냐? 시골 개장수 같다.”라고 핀잔을 준다.
그러자 판수는 표정이 싹 변하며 “그래요, 우리 아버지 개장수였어요.”라고 울먹인다. 필재와 할아버지를 웃기려 한 이 거짓말은 동시에 관객을 웃기는 재치이다. 영화는 필재와 동현의 두 가지 시선에서 진행된다. 필재는 ‘빵잽이’(상습 전과자) 아버지를 경멸해 경찰이 됐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라는 신념을 지녔다.
하지만 그는 말보다 주먹이 앞선다. 죄를 미워하는지, 죄인을 증오하는지 모를 정도로 법질서 확립보단 범인에 대한 경멸과 체포에 대한 집착에 얽매인 그는 선과 악의 경계, 법과 정의의 영역을 묻는다. 그건 여사님의 하수인인 부장검사(최병모)나 킬러 두목 박 소장(김뢰하)도 마찬가지이다.
여사님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는 박 소장은 그러나 그녀와의 대화를 일일이 녹취해 두는 배수진을 친다. 사법 시험 준비 때부터 여사님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와 승승장구한 끝에 부장검사 자리에까지 오른 장 부장은 “이제 박 소장 따위는 버리고 나만 믿으세요.”라고 건방지게 가르치려다가 “나한테 올 땐 운전사 대동하지 말고 네가 운전하고 와.”라는 핀잔만 듣는다.
박 소장과 장 부장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이다. 특전사 출신의 박 소장은 국가를 위해 생사를 넘나들었지만 제대 후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유치권 행사 중인 ‘죽은’ 건물을 접수하고, 살인을 일삼는 불법. ‘이 사회는 애국자를 위해 무엇을 해 주는가, 진정한 애국이란 무엇인가, 사회에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이 정녕 이 사회를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인가?’ 등을 묻는다.
장 부장은 고위급 공무원일 수도, 대기업 임원일 수도 있다. 오로지 공부 잘 하는 것 외엔 살아남을 수 없는 ‘흙수저’들은 그래서 절대 자본가를 이길 수 없다. 장 부장은 그나마 주체성만은 지키려 한다. 박 소장은 개 노릇을 하지만 주인이 자신을 버릴 경우의 수를 헤아리고 배수진을 친다.
사회의 지도층은 최소한의 정체성을, 빈민층은 극단의 생존 본능을 견지하고자 한다는 게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이고 차별성이다.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추진력이 많이 떨어지고, 긴장감이 현저하게 느슨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건 장르적 특성이 가진 한계일 뿐 곳곳에 포진된 메시지와 대사의 쫀쫀함이 충분히 보완해 준다.
여기서 유일한 아이 동현은 중년 혹은 노년의 주인공들에 비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존재감을 빛낸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편지를 보내거나 면회하러 가지 않은 이유는 아버지의 살인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된 피해자의 향수를 자신이 탐했기 때문이다. 이건 가난이 얼마나 처참한가를 얘기하기보단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웅변한다.
그녀는 울고 싶으면 실컷 울라는 필재에게 “아버지 수감 후 내가 가장 두려운 게 뭔지 아세요? 그건 아버지 없는 삶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것.”이라고 울부짖는다. 그녀는 이제는 매우 당연해진 한 가정 아동, 1인 가구의 대명사이다. 1인 가구를 이루는 사람은 외롭고 괴로워야 정상인데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은 거기에 익숙해져 ‘혼밥’과 ‘혼술’이 당연해지는 추세이다.
그걸 중학생이란 어린 나이에 일찍 배우게 된 동현은 벌써부터 그게 다행스러운 게 아니라 두렵다는 걸 아는 ‘애어른’이 됐다. 타락한 천사 필재의 시선보다 타협한 천사 동현이 더 안타깝거나 무서운 영화이다. ‘연기본좌’ 김명민은 말할 것도 없고, 아역 김향기까지 전 배우의 연기력이 완성도에 한몫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