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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비 Dec 24. 2018

주체성을 찾아가는 여행

주체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는 나의 우주에 대하여


 이 글은 '나'라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과 개인적인 경험을 담았다. 앞으로 주체성을 키워드로 나다움, 심리학, 철학, 과학, 경제, 사회, 공동체 등 다양한 주제의 생각을 글로 담아보고 싶다. 그 안에서 사람들과 긍정적인 영향을 교류하고 싶다. 서로의 우주가 더 넓어지길 바란다. 또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지속적으로 글을 쓰겠다는 개인적인 다짐이기도 하다. 주체적인 사유와 행위를 담은 기록이 만들어 낼 가치를 믿는다.




 살아오며 내가 무언가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말인지 알게 되었지만, 이 글에서 굳이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자 한다.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나타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지금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주체성(주체적인 삶)'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왜 나는 주체성에 대한 고민들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 시작점은 잘 모르겠다. 단지 현재의 내가 가진 고민과 과거의 경험들을 연결해서 발견한 연결고리이다. 생각을 따라 점들을 연결하다 보니 발견했다.




적도기니에서 외교관 하고 싶다! :-)

왜냐고? 몰라 나도! :-)
어린 시절 좋아하던 지도 놀이

 나는 살아가며 자유 속에서 선택하며 주체적으로 행동할 때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고 재미있었다. 자유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고 그 과실은 달콤했다. 어린 시절 나는 다양한 나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줄곧 이야기하던 장래희망은 외교관이다. 각각의 나라가 가진 이야기를 살펴보며 직접 살아보고 싶었다. 다른 나라의 정보가 담긴 책을 표지가 뜯어질 정도로 자주 열어봤다. 처음 들어보는 나라의 인구, 문화 등을 알아가는 건 너무 즐거웠다. 또 수업시간 교실에서 나라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아는 것을 알리느라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다. 이와 같이 나라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부모님이었지만 나의 주체성으로 지속되었다.




나는 그저 그런 개구리구나...
나는 그저 그런 개구리인가봐...

 반대로 나는 주어진 환경에 의해 학습해야 하는 경우에 과정이 따분하고 고통스러웠다. 내가 외교관을 꿈꾸다 포기하게 된 것은 영어가 싫어서다. 중학교 3학년 때 특수목적고등학교(이하 특목고) 진학이 유행처럼 돌았다. 나름 공부도 잘했고, 어머니께서 학원을 다니며 특목고 진학에 도전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처음엔 싫다고 했지만 학원에서 나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을 보고 결정하자는 어머니의 말씀에 시험을 보았다. 시험의 결과는 그저 그런 낮은 수준이었다. 스스로 잘난 맛에 살던 중학교 3학년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한 자극이었다. 학원에 다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학교에서 수업을 열심히 듣던 학생에서 학교에서는 잠을 자는 학생이 되었다. 주체적으로 탐구하던 학생에서 학원에서 주입해주는 지식을 받아들이기 급급한 학생이 되었다. 많은 것을 배웠고 노력했지만 나는 특목고에 진학하지 못했다. 배움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영어가 싫어졌다. 영어를 잘해야 하는 외교관은 나의 길이 아니라며 포기했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똑똑한 개구리들이 모인 우물로 이사하니 나는 그저 그런 개구리'가 되었다. 입시 경쟁에서 그저 그런 개구리가 주체성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어가 아니고 수동적인 배움이 싫었다. 점수로 줄세우며 친구들과 경쟁해야하는 환경이 싫었다. 수동적인 내 모습이 싫었다.




답답함이 궁금증으로
"왜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살까?/살지 않을까?"
왜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살까?/살지 않을까?

 또 타인의 행동을 보며 이해가 안되고 답답하다고 느꼈다. 지금보다 미숙했고 타인이 나와 다르다는 인식이 부족했다. 모두가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삶의 모습을 틀렸다고 생각했다. 어린시절 집에서 아버지의 별명은 '충성맨'이다. 이는 놀러가기로한 가족과의 약속보다 회사의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서운함이 담긴 별명이다.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시는 아버지의 노력이 대우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화가 났다. 그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에서 수동적인 아버지의 선택이 답답했다. 나중에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며 알았다. "아버지는 '안정성'의 가치를 추구하시는구나. 그 가치를 지켜오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구나. 아버지를 이해하니 내 삶이 너무 감사했다. 틀린게 아니고 다른것이구나!"


 또 모든게 나와 같은 사람 5명이 함께 일하는 것을 상상해보면 머리가 아프다. 조금 과장해보면 각자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논리적으로 맞다고 우기며 끝없이 논쟁하고 있을 것이다. 또 세심하게 챙겨야 할 것 들은 뒷전으로 미루어두고 이슈가 생겼을 때 처리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생각하지 않고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 와 같은 본질적인 이야기로 대립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엔 책임감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다가 각자 하고 싶은 것을 문서로 만들어 5개의 기획서가 만들어지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더 나은 결과와 혁신을 만드는 것이구나!


 이처럼 나와 주변을 인식하는 과정들을 통해 답답함은 궁금증이 되었다. 나는 "주체성이란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살까?/살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등등 수많은 의문들에 답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가고 있는건 아닐까? 그렇게 나는 '주체성'을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나의 특이점을 만드는 하나의 요소이자 강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나는 주체성에 대한 사유와 사고를 하나씩 시도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도와 행동의 과정과 결과로 내 삶의 궁금증 '주체성'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부족한 글이지만 나의 관점으로 꾸준히 적어나갈 것이다. 이는 주체적인 사유와 행위를 담은 기록이 모여 만들어지는 휴먼브랜드를 위한 작은 시도이다. 이 글로 나의 좁은 식견을 세상과 소통하며 채우고 넓혀가고 싶다. 이 곳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각자의 관점과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글의 주제는 내가 담긴 모든 것이다. 내 삶을 담은 수필, 책을 읽고 나의 관점으로 담긴 서평, 사회현상을 포착하여 이야기하는 칼럼, 과학 기술에 대한 정보와 생각, 주체적인 사람들의 인터뷰 등 다양하게 담아가고 싶다.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주체성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내가 가진 나다움의 우주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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