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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비 Dec 25. 2018

주체성을 찾아 떠난 제주

소모된다는 느낌에서 시작된 사유의 기록

앞으로 글을 통해 찬찬히 '작은 성공'을 하겠다며 제주로 이주하고 지내온 2년간의 경험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웃고 울며 치열하게 살아냈다.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감을 주기를 바란다. 이 글에서는 제주에서 소모된다는 느낌에서 시작된 사유를 담아보고 싶다.




 2018년 11월 25일 일요일, 서귀포에서 기획하여 진행한 청년혁신가컨퍼런스 '청년, 짜이 뭐하맨 - 변화의 시작 : 작당' 행사를 마친 다음날, 목욕탕에 가서 여유롭게 목욕하고 서귀포 자구리 공원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서귀포 자구리 공원에서 바라본 바다


 제주에 내려와서 이렇게 여유롭게 바다를 본 게 몇 번이나 되지? 무엇을 한다고 그렇게 바빴지?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5분 거리에 바다가 있는데 여름에 바다에 한번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며 푸념했다. 그 이야기를 하며 속상하지 않았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 같아서, 삶에 대한 불안이 줄어드는 듯해서 오히려 그 이야기를 하며 뿌듯했다. 지금 돌아보면 앞으로의 삶이 불안했고, 내 마음에는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초조했고 환경과 주변 사람들을 탓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속상했다.



좋은 곳에서
참 치열하게 살았구나.
공원의 벤치에 누워서 바라본 소나무 그리고 하늘


 2년 전 겨울, '휴먼 브랜딩 프로젝트, 따뜻한 공동체 프로젝트'를 함께하던 친구들과 제주에 이주를 놓고 치열하게 논의했다. 서울에서 창업과 관련한 활동을 하던 나는 제주로 이주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창업, 실험하는데 모든 여건이 서울이 좋았다. 제주에 무엇이 있을지 머릿속에 잘 안 그려졌다. 그런데 친구들은 무조건 가야겠다고 했다. 논리적으로 설명은 안되지만 꼭 가고 싶어 했다. 논의 끝에 스스로 납득이 되는 '작은 성공'을 해보자며 제주 이주를 결심했다. 서울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제주는 적은 경쟁으로 시도할 기회들이 생길 것이다. 작은 기회들이 모여 작은 성공이 될 것이고 제주에서 성공한 모델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 이런 가정과 생각으로 이주를 결심했다.


 그런데 제주에서의 삶은 만만치 않았다. 이주하기 전 몇 차례 미팅으로 만들어질 것 같았던 일거리들은 계속 미루어졌다. 일거리가 미루어지니 의식주는 불안했고 심적으로 갑자기 주어진 무한의 자유는 낯설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해야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자유는 처음이었다. 자유에서 비롯된 책임과 불안을 다루는 방법을 몰랐다. 많은 부분들에 미숙했고 부족했다. 또 사람들의 인식이나 생활방식 등 많은 부분이 내가 살던 곳과 달랐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였다. 


 웹 쇼핑몰 개발, 휴머니즘 프로젝트, 체인지 메이커 교육, 웹 프로그래밍 교육, 편집 디자인, 연탄공장 예술 공연, 문제 해결 문화행사, 퍼실리테이터, 성격 프로젝트, 자기표현 프로젝트, 미술 전시 기획, 블록체인 학습 공동체, 홍보 마케팅, 콘텐츠 제작, 청년 자문위원, 서귀포 청년정책협의체, 문화도시 조성사업... 2년간 수많은 일들을 했다. 많이 성장하고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제주의 노을


 치열하게 살아가다 내가 소모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체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나를 마주했다.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왜 제주로 왔지? 제주까지 와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잠시 멈추어서기로 했다. 책임감 없이 몇몇 일에서 도망쳐 나왔다. 내가 숨 막힘을 느끼는 일들을 멀리했다. 일부로 도망쳤다. 도망치는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무기력하고 못난 모습이었다.


  무기력한 상태로 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너 왜 이러니? 무엇이 문제야? 오랜만에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나에 대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모습이 한심스러웠다. 너무 부끄러웠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점점 알기 어려웠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만을 안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조금은 공감이 됐다. 나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의 욕망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게 문제였다. 스스로 무엇을 욕망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물론 무엇을 욕망하는지 온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의 욕망인지 타자의 욕망인지 사회의 욕망인지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욕망에 대한 힌트를 몇 가지 얻었다.


 첫 번째 힌트, 내가 주체적이기 위해서는 필요가 아닌 내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 체인지 메이커 교육을 할 때 많이 느꼈다. 나는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해 경험을 통해 많은 고민들을 해왔고 부족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해 소개하고 경험해볼 수 있는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다. 체인지 메이커 교육을 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문제 해결 과정을 소개하고 함께 경험하며 영감을 주는 것과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청년들의 생태계를 위한 일거리를 실험하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일거리는 내가 제주에서 느낀 필요였다. 다양한 시도와 경험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살아가기 위해 그것을 일거리로 만들어야 했다.


과정을 주체적으로 즐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중학교 체인지메이커 수업 - "우리 학교의 문제는 무엇일까?"


 체인지 메이커 교육을 진행하며 가장 큰 어려움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필요와 욕망에 부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업을 받는 학생들, 중학교 선생님, 중간지원조직 담당자님,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보조강사님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었다. 학생들은 재미있고 쉬운 수업을 원했고, 학교는 아이들이 수업을 통해 결과물을 도출하기를 원했고, 중간지원조직은 체인지 메이커로서 아이들이 문제 해결 과정을 공감하여 문제 발견하기부터 솔루션을 만들어 주변에 알리는 것까지 모두 경험하기를 원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고 아이들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여 혁신적인 솔루션을 만들기를 바랐다. 다각적이고 다양한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수업을 진행하며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주체성이 발휘되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이 과정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수동적인 태도로 버티고 있었다. 이외에도 문화기획, 콘텐츠 제작, 홍보 등 일거리를 만들기 위한 활동들에서 나의 수동적인 태도를 발견했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필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었다. 나는 과연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동료였을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과정을 주체적으로 즐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나에게 필요한 일보다는 욕망을 충족하는 일을 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두 번째 힌트, 내 욕망은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제주에서 사는 2년 동안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생태계와 인프라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많이 했다. 제주도는 서울에 비해 내가 필요한 지원과 인프라가 많이 부족했다. 어떻게 하면 제주도가, 서귀포가, 내가 사는 마을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또 함께 팀을 하던 친구는 사회 시스템과 생태계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함께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 시스템을 혁신하고 혁신가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활동했다. 청년들이 모였으면 좋겠다며 모임과 행사를 기획해서 진행했다.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정책협의체 활동을 했다. 마을에서 살아가며 활동하고 싶어서 마을로 들어가 살았고, 마을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려 했다. 그런데 활동을 하면서 지쳤고 '나는 생태계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은 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다양성은 존중하지만 멀리하고 싶다.

 세 번째 힌트, 나는 내가 존중받고 싶어서 다양성을 존중한다. 내가 무기력한 이유 중에 하나는 마음이 다쳤는데 모르고 덮어두었기 때문이었다. 제주에 내려온 큰 이유인 공동체와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생각보다 컸다. 서울에서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하고 지지하며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공동체가 제주에서는 휘청거렸다. 나는 공동체에 대해서 고민하고 앞장서서 무언가 해보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한 친구가 '요청하지 않은 도움'이라며 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당시에는 내가 못나고 부족해서 타인을 존중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그 말은 나의 마음에 비수로 날아와 꽂혀있다. '요청하지 않은 도움'이라는 말에는 나에 대한 존중이 담겨있지 않다. 그런데 나 자신도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려다 스스로에 대한 존중을 하지 못했다. 내가 다양성을 존중하고자 노력하는 이유는 결국 내가 존중받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 다양성은 존중하지만 멀리하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의 자기다움

 네 번째 힌트,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이 있다. 제주에서의 2년을 돌아보며 발견한 아무 자원도 없지만 나의 필요와 상관없이 재미있어서 자연스럽게 했던 활동은 '휴머니즘 프로젝트, 성격 프로젝트, 자기표현 프로젝트'다. 또 제주로 이주를 결심할 수 있는 원동력을 주던 '휴먼브랜드 프로젝트, 따뜻한 공동체 프로젝트'도 그 과정이 재미있고 힘들지 않았다. 이와 같이 내가 주체적인 모습으로 재미있게 한 활동들의 공통점은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무엇이 자기다움을 결정하는가?

 나의 많은 궁금증은 '사람'으로 향하고 있었다. 개인이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기다움'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며 살아갈 때 주체적일 수 있다. 각각의 욕망들은 '자기다움'에서 비롯된다. '자기다움'은 유전적인 요인, 어릴 적 환경과 경험, 부모의 성향, 기족 관계, 친구 관계, 사회적 위치 등 많은 요인들에 의해 형성된다. 왜 사람은 서로 다른가? 어떻게 하면 다양한 사람들의 '자기다움'을 알 수 있을까? 무엇이 '자기다움'을 결정하는가? 나의 궁금증은 자기다움을 바탕으로 주체성을 발휘할 때 사람이 가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궁금증을 해소하고 혁신을 만든다면, 주체적인 개인들이 가진 가능성이 모여 개인의 삶과 이 세상이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 힌트, 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이고 눈에 보이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나는 내 행동의 결과가 눈에 바로바로 보이는 것을 원한다. 나는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는데 힘이 빠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 결과를 바로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에 지속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나는 지향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예상한 결과만을 주지 않는다. 내가 예상한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 경우 그 행동을 지속하고 마무리하는 원동력을 잃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나는 눈에 보이는 작은 성과들을 설정하고 빠르게 전략을 수정하고 보안하는 과정들로 나아가야 방향을 잃지 않고 주체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또 나는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는다. '긍정적이다.'의 기준이 상대적이고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가 믿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로 인해 누군가의 삶과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자기다움'의 나침반

 제주에서의 2년을 돌아보며 나에게 질문하고 성찰하여 5가지 욕망의 힌트를 얻었다. 욕망의 힌트로 '자기다움'의 나침반을 재설정할 수 있었고 불안이 아닌 설렘으로 살아갈 원동력을 재정비했다. 앞으로도 스스로 수많은 질문과 성찰을 하며 나를 마주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날 것이다. 그때마다 주체적인 삶에 다가가는 힌트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믿음이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어떤 삶의 경험들이 나를 채워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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