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인 삶에서 발견한 '무기력' 일기
여전히 나는 꽤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있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직원으로 치열하게 고민하며 서비스를 만들고 있고, 최근엔 투자도 받는 기분 좋은 소식도 있다. 전주로 이사와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고, 요즘 일상이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꽤 자주 듣는다. 그런데 나는 요즘 좀 무기력하다.
운이 좋게도, 주변에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들이 많고, 많았다. 한 친구가 "영범, 요즘 힘들어 보여"라고 걱정해 주는 말에 "나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고 이야기해 왔다. 사실은 '아니, 나는 괜찮다는데 왜 자꾸 힘들어 보인다고 하는 거야. 이해가 안 되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생각이 드러났던 걸까? 그 친구와는 묘하게 멀어졌다. 정확히는 그 친구가 피하더라. 요즘, '친구의 걱정을 듣던 나는 사실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잘 안다고 굳게 믿으며 살았다. 여전히 충분히 나를 고민했고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왜 무기력한 거지? 힘들어 보이지? 이해가 안 되니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해 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이 자꾸만 들어, 다시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일을 하지 않으며 웹 개발 공부를 하며 지낸 목포에서 보낸 일상,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기분 좋은 일로 가득하게 전주에서 보낸 일상과 요즘을 비교해 보자. 첫째, 폭식하는 일상이 반복되고, 살이 찐다. 소위 인생 몸무게를 계속해서 갱신하고 있다. 전주로 이사 와서 열심히 하던 운동을 어느 순간 가지 않았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몸은 무거워지고 체력은 떨어지니 조금만 힘들면 짜증을 낸다. 둘째, 일상에 별다른 이벤트가 없어졌다. 매일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요리하고 밥을 먹고 이벤트로 가득한 일상에서 별다른 이벤트 없이 일하고 책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유튜브보다 잠드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셋째, 듣는 귀가 없어졌다. 차분하게 상대방 이야기를 못 듣는다. 자꾸만 말을 끊고 들어가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다. 넷째, 회사일 이외에 생산적인 활동이 없어졌다. 회사일이 끝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일상에서 생기는 문제를 방치하고 해결하지 않는다. 그렇게 마음에 스스로 만든 죄책감이 쌓여간다. 마지막, 나에게 더 엄격해지고 그 못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 친다. 그렇게 나를 나무라고 못된 말로 나와 주변에 상처를 낸다. 아마 나를 걱정하는 고마운 친구들에게는 익숙한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내 일상은 색이 하나씩 빠져나가서 '회색'이 되었다. 아주 잔잔하고 호기심도 없고 더 지루한, 매력 없는 내가 되어가고 있다.
사실 나는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나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현상을 마주한다. 사람들이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해서 쌓인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도 꽤 많은데... 치열하게 살면서 얻은 보석 같은 경험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오늘 다른 사람에게 틈을 보이지 않고, 완벽하고 싶은 나를 마주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면 보여주기 싫은 틈을 들킬까 무서워서 입을 다물고 나를 보호하기 급급했다. 사람들이 내 매력을 찾는 게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기도, 공개하기도 어려웠다. 내가 가진 생각과 가치를 알리려고 노력했는데 계속 실패한 이유를 찾았다. 그렇게 틈은 없지만 매력 없는 '회색 육면체'가 돼버린 거 같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랑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치명적 결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완벽한 캐릭터보다 결점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에 공감하고 감정 이입한다. 감정이입은 친밀감을 만들고, 응원하는 마음을 만든다. 나는 매력적이고 싶어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회색 육면체'가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회색 육면체'는 지금 나의 무기력을 만든 핵심이다. 매력적이고 싶어서 완벽하고자 했고,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을 숨기고 질책하다 보니 무기력해졌다.
그래서 좀 부족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어보려고 한다. 이 글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쓰고 있다. 평상시라면 작가의 서랍에서 나오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좀 부족해도 생각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회색 육면체'를 '결점을 가졌지만 나다운 색을 가진 매력적인 모양'으로 만드는 생각과 고민을 이어가 봐야지. 숨지 말고 숨기지 말고, 완벽하지 않아도 부족한 부분도 나답고 매력적으로 이야기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