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적극적인 사람답게 그는 기술관련 자격증만 3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하나같이 취업 성공률이 높은 자격증인데도 무엇이 아쉬운지 그는 또 다른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G에게 퇴직은 별로 두렵지 않고, 노후생활도 불안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G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일만 하다가 죽을 거야?”
순간, 그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네~에?”
“아니 그렇잖아. 당신은 지금 회사에서 30년은 다닐 테고, 퇴직한 후에는 기술자격증 갖고 30년 더 일하다 보면 힘 빠져 죽을 거 아니냐고?”
이제 그는 얼굴색을 고치고 다시 물어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저는 이렇게 대답했지요,
“일도 해야 하겠지만, 자기 삶도 살아야 좋지 않을까.”
G는 금방 제 말을 소화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격증이 있어서 퇴직이 두렵지 않다는 G의 말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퇴직이나 노후 문제를 경제적 측면에서만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퇴직을 앞둔 저는 퇴직 준비를 위해 이런저런 관련 책과 인터넷 자료들을 찾아 공부하고 있지만, 대부분 획일적이고 편향적인 자료라서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퇴직과 관련된 정보들은 한결같이 재취업, 재테크, 노후자금 등과 같은 경제적 문제에 치중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제적 준비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불만을 갖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퇴직을 앞두고 그동안의 노력과 성취에 대한 자긍심, 무탈하게 성장한 식구들에 대한 감사함도 분명 있습니다. 저처럼 정년퇴직하는 노동자는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한 현실이니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청춘을 바친 직장을 떠나야 하는 일은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퇴직 후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운 감정 또한 해일처럼 사납게 일렁거립니다. 게다가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결단하는 일은 이성보다는 감성 작용에 가깝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복잡한 감정들이 부딪히고 얽히고 넘치는 시기가 바로 퇴직 전후인데, 정작 퇴직 관련 정보들은 무정하게도 돈에만 쏠려 있습니다. 한마디로 제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격려하는 정보는 찾아보기 힘든 현실입니다.
퇴직 이후 30여년을 더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퇴직은 영광이라기보다는 웅덩이와 허들을 동시에 포함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따라서 자기가 먼저 충분히 위로받은 후라야 자신의 상처를 응시할 용기가 생기는 것처럼, 퇴직은 감정을 수용하고 조율하는 시간, 삶을 되돌아보고 조망하는 구간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돈과 재취업에만 편중된다면, 퇴직 전후의 감정은 억압되어 신경증으로 전이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춘기 때는 사춘기답게 보내야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하듯이, 퇴직 전후에 맞이하게 되는 삶의 전환기를 건너뛰게 되면 삶이 질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삶을 평면으로 이해할 뿐, 중층적이고 복잡한 삶의 본질을 간과한다는 점입니다.
프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을 고착화한 것으로 보면 삶이 정체하고야 만다."
프롬의 말을 곱씹어보면 삶은 선형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 것이 됩니다. 즉 삶은 어린이-청년-성년-노년의 순서대로 물리적, 시간적으로 직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삶의 과정을 유아기-사춘기-성인기-중간항로-제2성인기-노년기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단순히 성장한 후 늙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도전을 받고, 주어진 발달과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성숙해가는 존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퇴직을 재취업의 전단계, 일시적 실직, 여가생활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은 삶이 단조로운 직선 위에 놓여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시각이라면 인생은 ‘졸업-취업-재취업’의 연속과정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생각만 해도 우울해지는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의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퇴직 나이가 52.6세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의 52.6세는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처지에 놓여져 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52.6세는 ‘주변인’과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익숙한 세상의 끝에 밀려나 있고, 낯선 세상의 문턱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가장 편안한 집에서도 이들의 위치는 바뀌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이방인’이기까지 합니다. 이들은 부모세대가 갖는 고루한 신념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이들의 자녀들과도 공유하는 문화가 별반 없으니까요.
이렇게 장황하게 말하는 이유는 이런 시기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평온할 리 없고, 상처가 없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중년의 위기라는 막장드라마의 제목같은 말이 회자되는 이유도 그렇고, 심리학에서 이때를 삶의 전환기, 중간항로, 제2성인기라고 명명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퇴직 전후에는 이처럼 복잡한 상황과 감정이 교차하는 시기, 삶이 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그대는 아직 젊다고요?
그래서 퇴직은 미래의 문제이니 우선 현재를 즐기면서 차근차근 준비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그대들은 지금 세대보다 더 심한 퇴직 멀미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삶의 본질적인 의미는 바뀌지 않는데 반해, 더 오래 살아야 하는 그대들에게 더 많은 변화가 더 깊게 더 빠르게 덮칠 테니까요.
퇴직이 5년이나 10년 후에 다가오든 상관없이 삶의 성숙 과정을 살피고 준비하는 시간을 미리미리 챙겨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리고 퇴직이 눈앞에 다가왔다면, 섬세하게 변하는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감상하듯이 그 감정들에 충분히 반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내 감정을 외면하면 나는 외톨이처럼 쓸쓸해지니까요.
또한 이런 노력을 통해 얻게 되는 자기 치유와 회복력은 퇴직 후의 성숙한 삶, 인생 2모작이나 3모작을 설계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