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1분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3)

by 박성진

내가 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는 작은 쉼터같이 만들어둔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공간에만 유일하게 만화책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비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애매할 때면 그곳으로 가서 쉬곤 했다. 그때 마침 눈에 들어온 게 슬램덩크 만화책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쯤으로 기억하는데, 이 순간만큼은 나이를 꽤나 먹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앉은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책장을 넘겼다. 슛도 못하는 농구 초짜 강백호가 최강의 팀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는 그 순간까지, 나의 몇 시간과 그들의 4개월은 동시에 흘렀다.

전율이라는 걸 경험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온몸에 돋는 소름을 절제할 수 없었다. 전류가 흐르는 기분이었다.

말 그대로 청춘 그 자체였다. 수 없이 등장만 명장면과 명대사는 그 시절 고등학생을 혼미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농구가 대세 스포츠가 되진 못했지만, 농구공을 주워와 혼자서 정대만을 따라 하기도 했고, 서태웅을 따라 하기도 했다. 그런 추억이 가득 담긴 만화가, 특히 가장 하이라이트인 산왕전을 메인으로 한 극장판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길래 주저할 새도 없이 바로 달려갔다.


그 시절의 영웅들.



명불허전이었다. 세월이 지나도 명작이 주는 감동은 변하지 않았다. 하나 변한 게 있다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눈물이 많아졌다는 것 정도. 사실 고등학생 때 본 이후로 슬램덩크 관련 내용은 거의 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앉은자리에서 읽었던 만화책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내가 알던 것과 다른 점들도 있었지만, 그런 부분들은 또 새로운 감정으로 보게 되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원작에서 가장 비중이 낮았던 송태섭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가장 고생했던 캐릭터 중 하나인데 그만한 대접을 너무 못 받은 것 같아서 안타까웠지만 작가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이번 극장판에선 제대로 푸시해 줬다. 과거사로 틈틈이 쌓은 빌드업을 최고의 명장면으로 터트렸다. 그 장면의 카타르시스는 지금 떠올려도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멋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최고의 장면은 마지막 1분이었다. 1분이 10분처럼 지나갔다. 내 심장 소리를 제외한 다른 소리는 일절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찰나에 북산의 절박함과 끈기, 그리고 절대 놓지 않는 희망이 보였다. 소리가 없이 이미지만으로 이런 클라이맥스를 만들어 낸 것에 참아왔던 눈물이 흐를 정도였다. 이 장면을 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이 1분은 극장 안에 있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볼 정도로 긴박했고,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들 정도였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짜릿한 경험은 얼마 없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2시간짜리 추억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나는 약간 사소한 것에 의미를 두는 걸 즐기는 스타일인데 올해 첫 영화를 이 영화로 보기 위해 다른 건 전혀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영화였다. 그리고 난 이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북산은 최강을 상대로도 포기하지 않고 모든 걸 쏟아부었다. 1분이 남든 10초가 남든 그들은 이길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경기에 임했다. 나도 앞으로의 나날들에 어떤 길이 펼쳐져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처럼 포기하지 않는 근성으로 헤쳐나가다 보면 나의 영웅이었던 그들처럼 짜릿한 함성을 들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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