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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Y Sep 08. 2020

[예능]1박 2일 시즌4

-순한맛 아니고 '감칠맛'

[예능]

14.1박 2일 시즌4

-순한맛 아니고 '감칠맛'

'1박 2일' 시즌4 방송화면 캡처

KBS 2TV '1박 2일'은 추억 속 예능이었다. MBC '무한도전'과 같이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학창시절 추억을 장악했다는 데서 오는 추억. 사실 '1박 2일'이나 '무한도전'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몸개그도, 서로를 비하하는 농담도, 노인과 여성을 희화하는 유머코드도 내겐 재미있지 않았다. 그냥 그런 프로그램을 안 보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학창시절 분위기 때문에 봤었다. 그마저도 '무한도전'에 한정됐다. 뭔가 세련되고 시의적인 프로그램으로 일컬어지던 학창시절 우리에게 '무한도전'은 종교 그 자체였다. 그러나 '1박 2일'은 다소 올드한 이미지로 전국민에게 사랑받는,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닌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1박 2일'식, 그리고 '무한도전'식 예능이 이어졌다. 그때부터였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지 않은 게. 그 다음은 힐링&관찰 예능이 유행했다. 이런 데도 관심 없던 나는 점점 예능 프로그램에 관심을 잃어갔다. 온라인 유머코드를 잘 살린 '신서유기' 시리즈를 그나마 나갈 준비할 때, 밥 먹을 때 틀어놓을 정도였다. tvN '플레이어'도 조금 봤다. 그러나 점점 심해지는 1차원적 개그에 금방 그만뒀다. tvN '대탈출'은 그나마 내 취향이었지만 무서운 장면이 자꾸 나와 마지막 쯤 하차했다. 연예뉴스 면접을 보며 "예능 프로그램은 뭘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어 "요즘 유행하는 건 다 본다"고 거짓말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1박 2일 시즌4'가 재밌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미있어봐야 '1박 2일'인데 국뽕 차오르게 하는 연출과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는 촌스러운 갈등 구조만 있겠지 싶었다. 그러던 중 '1박 2일 시즌4'의 화면을 딴 움짤을 여러개 보게 됐고, 점점 흥미가 생겼다.분명 '1박 2일 시즌4' 제작진의 홍보라고 생각하고 홍보라고 생각하면 괘씸해 절대 보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예능을 좀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무엇보다 바뀐 출연진들이 호기심을 자아냈다. 옛날 '1박 2일' 방식을 할 것 같지는 않은 출연진들.


예상은 적중했다. '1박 2일 시즌4'는 예전과 달랐다. 국뽕을 만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보편 정서를 자극하고 우리나라를 홍보하는 '1박 2일'의 정체성이라고 본다) 서로를 깎아내리려는 행동을 하지 않는 출연진들, 이런 출연진들을 과도하게 쪼지 않는 제작진들은 보는 내게 불편함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정도 협상하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연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복불복 후에도 매번 음식을 나눠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1박 2일 시즌4'는 '1박 2일' 시리즈와 같이 복불복이 메인이지만 음식을 나눠먹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옆에 친구가 있으면 한 입 주기 마련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을 '1박 2일' 기존 시리즈는 부자연스럽게 연출해왔다. 물론 다 나눠먹으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 복불복 게임을 해서 얻어낸다는 의미 말이다. 그러나 어차피 줘도 한 입이고, 상대는 그 한 입을 먹으며 더욱 괴로워하는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할 수도 있다.


'1박 2일 시즌4'에 변화를 준 것은 출연진의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흔히 '1박 2일 시즌4' 순한맛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순하게 행동하는 멤버들에 있다. 그리고 순한맛 분위기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문세윤이다.


#문세윤

'1박 2일 시즌4' 멤버 중 가장 파워 예능인은 문세윤이다. 김종민이 '1박 2일'의 터줏대감이기는 하지만 MC능력은 부족해 분위기를 이끌어가기 보다는 띄우는 역할을 한다. 예능 초보 연정훈과 예능 뽀시래기 김선호, 막내라인 딘딘과 라비 사이에서 '1박 2일'의 예능 포인트를 짚을 사람은 문세윤인 것이다. 2001년 데뷔라는 경력과 39살, 서열 3위를 자리하는 나이는 문세윤을 단연 '1박 2일 시즌4'의 리더로 만들었다.


문세윤의 특징은 강압적으로 굴지 않는 것, 그리고 대결구도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게임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1박 2일'에서 큰 키와 거대한 몸집은 단연 장점이다. 그러나 문세윤은 힘으로 멤버들을 제압하지 않는다. 오히려 힘 겨루기에서 지는 모습을 보이며 웃음을 자아낸다. 문세윤이 진정으로 힘을 쓸 때는 멤버들을 위할 때다.


'1박 2일' 시즌4 16화 방송화면 캡처

문세윤은 지난 3월 22일 방영된 16화 '무인도 즐기기'편에서 침낭을 마련하기 위해 제작진들과 팔씨름을 벌였다. 어마무시한 제작진들을 모두 이겨낸 문세윤은 멤버들을 위해 침낭을 얻었다.


대결구도를 만들지 않는 것 또한 특징이다. 우리나라 예능은 서로를 공격하고 비하하며 이뤄져왔다. 갈등과 대결구도를 만들어 웃음을 유발하는 것. 그러나 문세윤은 콩트나 상황 묘사 등으로 재미를 만든다. 문세윤이 대결 구도를 만들 때는 자신에게 장난을 거는 딘딘을 받아줄 때, 혹은 제작진들과 협상할 때 정도다. 그 때도 상대를 누르려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ㅇ화에서 멤버들은 제작진과 협상할 때 "왜요?"라고 묻기로 약속했다. 이를 잊은 멤버들은 방글이PD와 협상하며 그냥 수용하고 말았다. 라비가 문세윤에게 "왜요?"라고 하라고 부추기자 문세윤은 덤볐다. 그러나 맥락에 맞지 않은 대사에 문세윤은 "지금 할 상황이 아니잖아"라며 민망한 시늉을 했고 이때도 현장에서는 큰 웃음이 터져나왔다.


'1박 2일' 시즌4 35화 방송화면 캡처

그러면서도 웃음은 놓치지 않는다. 뻔한 농담도 문세윤식으로 받아치는 것. 지난 8월 2일 방영된 35화 '부족 캠프'편에서 '클라이밍을 하며 가축 깃발 뽑아오기' 게임을 할 때였다. 각 멤버들은 무작위로 가축을 배정 받았고 문세윤은 돼지를 뽑았다. 이를 본 멤버들은 "세윤이 돼지네", "세윤이형 돼지야?"라며 장난을 쳤다. 이때 문세윤은 화를 내기보다는 우는 척을 하며 강하지 않지만 재치있게 넘겼다. '1박 2일'에서 주도적으로 나서는 문세윤이 어떤 분위기를 형성하는지 돋보이는 부분이다.


#연정훈

문세윤이 순한맛 리더라면 연정훈은 순한맛 맏형이다. 연정훈이 아무리 예능 초보라도 나이상 가장 형이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남자들 사이에서 나이로 인한 서열은 가볍지 않다. 그러나 연정훈은 늘 만만한 형으로, 그러면서도 여유있는 모습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멤버들에게 배우인, 그리고 예능을 거의 하지 않은 연정훈은 어려운 상대일 수 있다. 그러나 연정훈은 멤버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갔다. 중요한 점은 만만하게 다가가지 않았다는 것. 만능 재주꾼 연정훈은 운전이면 운전, 배 운전이면 운전, 패러글라이딩이면 패러글라이딩 등 언제나 완벽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막내 라비와의 다리 싸움에서도 이기며 신체적인 능력 또한 보여줬다(이후 코끼리 코 돌기 등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으나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으니  패스). 연정훈의 높은 능력치는 만만함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연정훈이 만만하지 않은 두 번째 이유, 늘 여유있는 모습이다. 멤버들의 깐족거림에 지는 게 아니라 '받아주는' 자세를 보인 것. 이러한 연정훈의 태도는 멤버들의 장난이 무시처럼 보이지는 않게 했다. 순하지만 강한 맏형으로서 전체 분위기를 유하게 만들었다.


#김종민

기존 '1박 2일' 멤버 중 가장 순한맛이 남았다는 것도 한 몫한다. 김종민의 가장 큰 캐릭터는 '바보'다. 그리고 흔히 '바보'캐릭터는 순하다. 남들을 놀리기보다는 놀림을 받고, 웃음을 유발도 본인의 무식과 능력치 부족을 뽐내는 방식으로 한다. 13년 차라며 게임 팁을 전할 때도 으스대기 보다는 설명하듯 하고 멤버들은 "종민이형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다"며 신기해한다. 서로를 헐뜯는 예능 시대를 보내면서도 시청자들에게 불쾌함을 선사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종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김종민이 있어 '1박 2일'로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텃세를 부리지 않고 유한 성격으로 새로운 멤버들과 잘 어울린다.


#김선호

수많은 사람들의 일요남친에 등극한 김선호. 호감형 얼굴과 뛰어난 피지컬, 그 자체만으로 좋지만 김선호의 '선함'이 순한맛을 완성하는 데 한 몫했다.


김선호는 '예능 뽀시래기, 예뽀'라는 별명으로 사랑받고 있다. 김선호는 뽀시래기답게 자기 역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가끔 김선호가 하는 말과 행동이 인위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런 것들이 김선호 본인 이미지가 아니라 예능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여 더욱 응원하게 된다. 연정훈이 여유로운 성격으로 순한맛에 일조했다면, 김선호는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최선을 다하며 순한맛에 한 걸음 다가가게 했다. 프로그램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순한 마음이 느껴진 것.


'1박 2일' 시즌4 30화 방송화면 캡처

때때로 보이는 선한 심성 역시 순한맛을 만든다. 지난 6월 28일 방영된 30화 '강원도 영월, 여름맞이 '체력증진프로젝트''편에서 '재료 이름 외우고 순서대로 꼬치에 꽂아오기' 게임을 할 때였다. 개인전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서로가 경쟁자였다. 딘딘은 헷갈려하며 멤버들에게 답을 물었다. 다들 웃으며 대답하지 않을 때 김선호는 본능적으로 답을 했다.


'1박 2일' 시즌4 28화 방송화면 캡처

지난 6월 14일 방영된 28화 '당일 퇴근, "퇴근합시다"'편에서 팀을 나눠 스피드 퀴즈를 할 때도 그랬다. 이번 게임에서 지면 당일 퇴근이 아닌 땅끝마을 해남행이 될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에도, 김선호는 다른 팀을 도와줘 자기 팀의 원성을 샀다. 물론 잘 한 건 아니지만 김선호의 본성이 보이는 순간이며, 김선호가 1박 2일에서 하는 행동들의 기반에 있는 성향이라는 게 보이는 시점이었다.


#딘딘

'그래도 이런 캐릭터가 있어야 재미있지 않을까'하는 딘딘. 김선호가 열심히 자기 역할을 하려 한다면 딘딘은 열심히 시비를 걸고 열심히 반칙을 하며 프로그램 자체에 최선을 다했다.


'1박 2일' 시즌4 1화에서 딘딘이 3번 연속 까나리카노를 골랐다

첫 화에서 차를 고르며 까나리카노 복불복을 할 때 이런 모습이 드러났다. 이동할 차를 고르기 위한 게임으로 까나리카노 고르기가 시작됐다. 아메리카노를 고르거나 까나리카노를 골라도 참으면 상금 2000원, 거기서 멈추면 그대로지만 한 잔 더 고르면 2배 적립되는 룰이었다. 5만원 이상 적립하면 고급 스타렉스를 탈 수 있었다. 아메리카노와 까나리카노는 50:50 비율로 놓여있었다. 딘딘은 입만 대도 뿜는다는 극강의 짠맛 까나리카노를 세 잔이나 연속으로 마셨다.


딘딘은 이후 인터뷰에서 "처음이니까 잘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마셨다"고 말했다. 이후 모닝엔젤로 출연한 딘딘 어머니는 "비위가 약한데 먹는 걸 보고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딘딘의 모습은 멤버들뿐 아니라 제작진들의 사기도 끌어올렸다.


사실 '1박 2일'의 인기는 줄어들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고 있었다. 시청률과 무관하게 화제성은 점점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딘딘의 패기 넘치는 행동에 한 카메라 감독은 "이번 멤버들은 뭔가를 하려는 게 보기가 좋다"고 평가했다.


지나친 승부욕과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에 가끔은 왜저러나 싶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딘딘이 빠진다면 순하다 못해 싱거워지지 않을까 싶다.


#라비

'1박 2일 시즌4'를 젊게 만든 1등 공신이 라비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내게 '1박 2일'은 올드하고 전형적인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전국 팔도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주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그걸 보며 출연진들은 인위적인 리액션을 쏟아내고 자막에는 어디서 본듯한 말이 깔려왔다. 웃음을 자아내는 코드 역시 대부분 몸개그였다.


그러나 라비는 '젊은 유머'를 보여줬다. 라비의 웃음 유발 방식은 말 장난이다. 나서서 상황을 만들지도 않는다. 하나의 장면이 마무리될 때 한 마디씩 툭 던지며 해당 장면을 극대화한다. 배를 타고 이동하던 중 라비가 딘딘에게 했던 말이 그 예다(이 장면 너무 웃겨서 5번 돌려봤다).


딘딘은 김선화와 '딘선'라인을 만들어 아웅다웅해왔고, 계속되는 딘딘의 시비에 결국 김선호는 "너랑 말 안 해"라고 고개를 돌렸다. 앞서 문세윤 역시 딘딘의 깐족거림에 지쳐 대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고 이에 라비는 "딘딘형, 얘기할 수 있는 사람 우리 셋뿐이야"라고 덧붙였다. 갈등 상황을 유도하는 기존 예능 같았으면 "난 딘딘형 편", 혹은 "난 선호형 편"이라는 말이 나왔을 테지만 라비는 그러지 않았다.

'1박 2일' 시즌4 17화 방송화면 캡처

이 외에도 지난 3월 29일 방영됐던 17화 '두루가볼 전국일주'편에서 라비가 녹차와 고삼차 중 녹차를 고르려 고심할 때, 딘딘든 "3번이야. 형 말 들어서 안 좋았던 적 있어?"라고 물었다. 이때 라비는 "형 말 들은 적이 없었어"라고 답했다. 실제로 라비는 딘딘의 조언을 듣고 복불복에 임했던 적이 없었다. 웃기려고 한 말이 아니라 진짜 그랬던 거라 더욱 재밌게 다가왔던 대사였다.


지난 8월 16일 방영됐던 37화 '캠핑 특집 '수려한 휴가''에서 이수근은 라비에게 이승기 역할을 해야한다고 했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이승기는 어리지만 그 패기로 형들에게 맞섰다. 그러나 라비는 형들에게 맞서기보다는 능글능글하게 상황에 융화된다. 라비가 막내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막내를 자처하기보다는 동등한 입장에서 재치있는 말을 하는 것.


힙한 걸로 치면 같이 힙합을 하는 딘딘도 있고, 어린 걸로 치면 이승기도 있었다. 그러나 라비는 꾸밈새나 나이가 아닌 라비만의 유머 코드로, 전형적일 수 있는 '1박 2일'을 트렌디하게 만들었다. 1020에 인기를 끈다면 라비 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1박 2일 시즌4'는 순해서 자극 없는 맛이 아니다. 맵지 않지만 계속 입맛이 당기는 '감칠맛'이다. 자극적인 말이나 극으로 치닫는 갈등은 없지만 멤버 각각이 역할을 해내며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현재 '1박 2일 시즌4'의 시청률은 10% 초반대로, 20% 중후반을 달성하던 이전 시즌보다 떨어진다. 그러나 점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OTT 서비스로 시청률로만 따지면 안 된다는 점, 이미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고 생각한 '1박 2일'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 주목하면 괄목할 성장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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