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이예나 Feb 12. 2020

3. 가운데 손가락이 모두 나를 향할 때

뉴질랜드에서 운전하다 욕먹은 썰 풉니다


한국에서 운전대 잡은 기억이 열 손가락 안에 꼽는 사람이 뉴질랜드에서 캠핑카로 5일 동안 1156km를 달렸다. 크라이스트 처치 캠핑카 픽업 사무실에서 만난 한국인 직원이 겁먹은 나를 달래주면서 했던 말을 기억한다. 내가 예약한 차는 4인용 캠핑카라 ‘캠핑카 치고 비교적 작은 차’이니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고, ‘사람이 많지 않은 뉴질랜드 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은 아마 ‘최고의 경험’이 될 것이라고. 그 직원의 말은 정말이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뉴질랜드에서 운전하는 것은 정말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멋진 경험이었다. 그러나 뉴질랜드 도로는 돌이켜보면 참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내게 너무나 잔혹했다.

그것도 모르고 마냥 신나서 들뜬 나

뉴질랜드의 대부분의 도로는 도시를 벗어나면 모두 1차선이다. 중앙선이 점선으로 이어져 추월이 가능한 1차선이라, 90km/h가 최대 규정속도인 캠퍼밴은 언제나 추월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느린 차로 인해 도로가 막히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추월차선이 종종 있었고, 나는 2차선이 나올 때마다 부지런히 빠져주어 나름대로 욕먹지 않는 운전을 했다고 자부하며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푸카키 호수에서 와나카로 가는 도로에는 추월차선이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거기에다 맞은편 1차선 도로에서 계속 차가 나오고 있어 내 뒤에 차들이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기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내 뒤에 승용차가 10대 넘게 따라오고 있는데 내가 이 자동차들 맨 앞에서 90km/h로 천천히 운전하고 있는 아주 민망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잠깐 빠져줄 만한 비포장 도로도 안 보이고,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마치 성난  눈으로 보였다. 식은땀이 흘렀다. 조금 빨리 달려보려고 해도, 차체가 커서 95km/h만 돼도 차체가 덜덜덜 흔들린다. 그래서 한참을 그렇게 운전하다 반대편 차가 사라진 순간 뒤따라오던 승용차들이 매섭게 클락션을 울리면서 무섭게 나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푸카키호수에서 이어지는 도로


빡빡머리를 한 백인 남성 4명이 차창을 열고
나를 바라보며 8개의 벅-큐를 날려준다.
그래… 나 때문에 많이 화가 났구나.
너희들 마음은 잘 알겠다…
근데 나도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단다…?
뉴질랜드 도로가 1차선인 게, 캠퍼밴 규정속도가 90km/h인 게 내 탓은 아니잖니…?
그리고 사람이 말이야… 이해심을 키워야지…
너네 그렇게 거칠게 운전하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싶냐…?

구구절절한 마음의 소리는 그들에게 닿지 못했고, 운전대를 잡은 나의 멘탈은 바사삭 부서졌다. 심장이 벌렁벌렁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옆자리에서 운전 보조를 해주던 아빠의 혈압도 동시에 올라갔다. 우리는 곧바로 뉴질랜드 국민성을 정의했으며, 아빠와 나는 와나카에 도착해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우리에게 욕한 사람들을 찾아내 어떻게 욕을 퍼부어줄지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아빠와 내가 한마음으로 그렇게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우리는 그때 보기 좋은 한쌍의 -스러운 콤비였다.

눈물나게 맛있는 파타고니아 아이스크림

그날 이후에도 3번 더 그런 상황이 있었고, 벅-큐도 한번 먹는 게 어렵지 4번째는 그다지 상처도 안되었다. 그래, 내가 운전실력이 미숙해서 그런 거지 뭐. 우리나라에서도 보복운전이 얼마나 많은데, 세상 사람들 사는 거 다 비슷한 거지. 하고 스스로 위로를 해보아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차별이나 혐오의 기억이 하나만 있어도, 여행 전체의 기억이 부정적이게 남는다는  새삼 실감했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들과 멋진 풍경, 맛있는 음식이 하나의 부정적인 기억으로 도루묵이 된다 생각하면 너무 아쉬운 거다.

다행히도 남섬 여행 막바지에 만난 뉴질랜드 토박이 할아버지와의 대화로 서운한 마음은 사르르 녹아버렸다. 할아버지에게 도로에서 욕먹은 썰을 실컷 풀며, 욕을 먹고 너무 속상했다 말했더니 그들이 얼마나 무례한지에 대해 핏대 세워 함께 욕해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절대 Kiwi(뉴질랜드 사람) 일리 없으며, 뉴질랜드 도로 상황과 운전규정을 모르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위로해주었다. 나는  말을 믿기로 결정했고, 무례한 사람들이  여행을 망치지 않도록 남은 시간 동안 더욱 열심히 뉴질랜드의 아름다움을 눈과 마음에 담아 가기로 다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2. 아빠, 계란은 집에서도 많이 드시잖아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