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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Nov 05. 2023

어느 시인의 눈썹달과 별 하나

― 이어도공화국 07 당신에게 보냅니다 배진성 꿈삶글


이어도공화국 07

당신에게 보냅니다

배진성 꿈삶글



앞표지


1. 당신에게 보냅니다

2. 너에게 나를 보낸다

3. 정방폭포

4.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배진성 프로필

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다 왼쪽 가슴이 아팠다 남몰래 가슴을 안고 쓰러지는 들풀이었다 내려다보는 별들의 눈빛도 함께 붉어졌다 어머니는 보름달을 이고 징검다리 건너오셨고, 아버지는 평생 구들장만 짊어지셨다 달맞이꽃을 따라 가출을 하였다 선천성 심장병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나의 비밀은 첫 시집이 나오고서야 들통이 났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비후성 심근증, 선천성 심장병과 25년 만에 이별을 하였으나,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바다는 나를 이어도까지 실어다 주었다 30년 넘게 섬에서 이어도가 되어 홀로 깊이 살았다 나는 이제 겨우 돌아왔다 섬에서 꿈꾼 것들을 풀어놓는다 꿈속의 삶을 이 지상으로 옮겨놓는다 나에게는 꿈도 삶이고 삶도 꿈이다 <꿈삶글>은 하나다 덤으로 사는 인생 하나 당신에게 보냅니다




사과꽃망울


사과꽃망울



득음을 위한 독공이 한창이다

     
사과나무속에서
고려청자 굽는 소리 들린다
조선백자 깨뜨리는 소리 들린다
수없이 많은 사금파리들이 쌓인다
     
사과나무속에서
사과를 미리 빚어보고 구워보고 깎아본다
     
벚꽃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성질 급한 봄꽃들이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와도
사과나무는
진득하니 사과나무속에서 사과만을 만들고 있다
     
울컥, 울혈을 토해내고 있다




제1부 너에게 나를 보낸다


강아지 배추 뜯어먹는 소리


강아지 배추 뜯어먹는 소리



사람들은 가끔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가 배추를 뜯어먹는 소리가 좋다 내가 밭에서 일을 하면 강아지는 열심히 배추를 뜯어먹고 풀도 뜯어먹는다 때로는 꽃밭에서 놀다가 꽃에 콧구멍을 들이대고 향기에 취하기도 한다 또한 예쁜 꽃을 입으로 따서 다른 강아지에게 건네주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소나무재선충 때문에 소나무가 많이 죽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속으로 웃기도 한다 주로 산의 주인들이 많이 웃는다 뿐만 아니라 겨우 남아 있는 멀쩡한 소나무까지 마구 베어낸다 알고 보니 산에 소나무가 없으면 밭으로 개간하기가 쉽다고 한다 소나무가 많은 숲은 밭으로 만들기도 어렵고 주택지로 용도를 변경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땅값을 올리기 위해서는 산에 소나무가 없어져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달리 비싼 밭에 소나무를 심는다 비싼 밭을 싼 숲으로 만들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아픈 몸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아픈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아픈 사람들의 보폭은 건강한 사람들의 보폭과 다르다 나란히 손 잡고 걸을 수 없다 함께 같은 속도로 걷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나의 속도에 맞추어서 산다 나의 시는 나의 삶이어서 마침표가 없다 나의 시의 마침표는 나의 무덤이 될 것이다 또한 나의 시에는 숨표가 많다 나의 쉼표는 나의 헐떡이는 숨이다 숨이 차기 때문에 자주 쉬어 주어야만 한다 시는 시인의 발걸음을 닮아야만 한다 시는 시인의 숨결이 느껴져야만 한다


나는 평생 숲을 가꾸는 것이 꿈인데, 숲이 아직은 나를 품어주지 못한다 참나무가 많은 정읍의 종석산이  좋아서 가려고 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종석산에서 산양삼을 재배하는 친구가 있다 그곳으로 가려고 작은 임야를 구하고 교육을 받아서 임업후계자가 되었다 하지만 함께할 친구는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 듯하다 나는 참나무 숲을 가꾸고 많은 사람들이 참나무로 부활하기를 꿈꾸는데, 친구는 참나무를 베어내고 산양삼을 대규모로 재배하여 큰 소득을 올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물론, 약초 재배에 좋은 여건이니 어느 정도의 재배는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숲이 목적이 아니고 돈이 목적이라면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숲을 원한다


나는 5년 전에 이미 평생 써야 할 시의  원고료를 선불로 받았다 나의 심장 속 대동맥 판막을 뜯어내고 금속판막으로 교체하였다 깨어나보니 나의 통장에 거금이 입금되어 있었다 내가 수술을 받기 전날 입금을 하고 기도를 하였던 것이다 내가 깨어날 때까지 그는 쉬지 않고 기도를 하였을 것이다 "꼭 살아 돌아와 좋은 시를 써 주세요 응원합니다" 이 응원 메시지와 그의 기도가 나를 부활시킨 것이었다 수술을 받는 동안에 꾸었던 꿈속의 천사가 나를 살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간절한 기도에 보답하기 위하여 지난 5년 동안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출사표를 던지고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어도공화국이 들어설 아름다운 숲을 구하지 못하여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를 먼저 쳤다 그곳에 나는 서천꽃밭을 만들고 있다 아름다운 숲에 만들 이어도공화국을 미리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 나와 인연이 닿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나무를 심고 가꾼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직은 함께 살 수 없지만 그들의 나무를 보며 날마다 생각한다 그들의 나무를 가꾸며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서 함께 숨을 쉰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꿈은 그렇게 천천히 자라고 시나브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서천꽃밭에 자란(紫蘭)이 피어나고 은방울꽃이 피어난다 자란(蘭)의 꽃말은 "서로 잊지 않다" 은방울꽃의 꽃말은 "틀림없이 행복해진다"라고 한다




고구마 꽃



고구마 꽃



고구마꽃이 피었다

고구마꽃이 젖을 물리고 있다

꼬리박각시나방이 젖을 빨고 있다

고구마가 땅 속에서 젖을 준다

땅 속에서 어머니는

아직도 나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어느 시인의 눈썹달과 별 하나


어느 시인의 눈썹달과 별 하나



나는 날마다 바다를 본다 나는 날마다 같은 바다를 본다 같은 바다이지만 날마다 다른 표정의 바다를 본다 삼십 년 넘게 같은 바다를 본다 마라도와 가파도와 형제섬과 송악산이 보인다 그 너머로 이어도가 보인다 나는 그 이어도에서 삼십 년 넘게 살았다 이제 이어도에서 나와 세상 속으로 걸어갈 준비를 한다


화순항에서 서귀포항으로 간다 정방폭포로 간다 나의 삶은 이제 정방폭포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용 한 마리, 저 빛나는 정방폭포를 지나면, 저 빛나는 허공의 길을 밟으면, 바다가 될 것만 같다 해룡이 될 것만 같다 나도 이제는 하늘로 가는 해룡 한 마리로 부활을 할 것이다


발전소에서 야간근무 하면서 두 시인을 만났다 별빛을 만들면서 시인을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보고 들었다

<대구문학관에서 문학, 꽃피다> 뒤늦게 유튜브로 만나, 보았다 문태준 시인과 김민정 시인을 연속해서 듣고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이병률 시인과 나희덕 시인에 이어서 두 시인이 내 가슴속으로 걸어서 들어왔다 그런데 아, 김민정 시인이 그만 느닷없이 가슴속에 들어앉고 말았다 


얼핏 잠이 들었는데 꿈속까지 따라서 들어오고 말았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아침은 오고, 발전소의 하늘에 달이 떠 있다 시인의 눈썹 한쪽이 걸려 있다 벌써 아침인데 달은 절반도 가지 못했다 이제 막 월라봉을 벗어나, 산방산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바다의 방에도, 산의 방에도 가려면 서둘러야만 하겠다 화순항에는 아침에도 등대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눈썹달 오른쪽 아래에는 별 하나 깜박인다 별이 글쎄 아침부터 윙크를 하고 있다


오늘은 아무래도 아침 퇴근길에 한라산 아래 첫 동네로 가야겠다 한라산아래 첫 마을영농조합법인이 만들어놓은 넓은 메밀밭으로 가야겠다 그 메밀밭 백비에 달빛이 새겨놓은 비문을 읽어야만 하겠다






앞표지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제5부
제6부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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