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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 2

-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10

by 강산





꿈과 현실 2

-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10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살 때에는 어머니의 태반과 탯줄이 나의 목숨이었고 세상으로 문을 열고 막 나왔을 때에는 어머니의 손길과 어머니의 젖꼭지가 나의 목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반월산 아래 아버지와 나란히 누워계신다. 살아계실 때 나의 목숨이었던 한 쪽 짜리 어머니의 젖가슴은 저승에 누워서 비로소 온전한 젖가슴이 되셨다. 아버지와 나란히 누워야만 비로소 두 개의 젖가슴을 간직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잃어버린 젖가슴을 죽음이 비로소 되찾아주었다. 그렇게 어머니와 아버지는 반월산 아래서 두 개의 무덤 젖가슴으로 나에게 젖을 물려주고 있었다. 아, 나는 아직도 이렇게 돌아가신 부모님의 젖가슴을 빨아먹고 강처럼 흘러가고 있는 산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면 무덤 젖가슴에는 양쪽 다 내가 물고 빨아야 할 젖꼭지가 없다. 젖무덤은 있는데 젖꼭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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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그 때를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의 불알 속에서 살았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의 몸 속에서 빠져나와 어머니의 몸 속으로 건너가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들어가고 내가 다시 나왔던 바로 그 나의 첫번째 길, 어머니의 질 속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다. 울퉁불퉁한 질 속의 길을 지나 도너츠처럼 둥그런 자궁경부에서 만났던 점액질의 끈끈함도 기억하고 있다. 늪처럼 빠져나가기 힘들었던 아득함을 기억하고 있다. 어렵게 통과한 늪의 자궁경부를 지나 무시무시한 백혈구들의 삼지창도 기억하고 있다. 백혈구들의 무시무시한 식욕을 나는 아직도 악몽처럼 기억하고 있다. 장비같이 부리부리한 백혈구들의 눈총과 너무나 억세고 무서웠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나 쏜살같이 달려가던 헐떡거림도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내가 다시 돌아와 한동안 살게 될 자궁을 떠나면서 순간적으로 계시처럼 순발력을 발휘해서 선택해야만 했던 운명의 갈림길에서도 나는 머뭇거릴 시간적 여유도 없이, 내 몸과 마음이 직감적으로 시키는대로 무작정 달려야만 했던 그 속도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내가 가지 않은 또 다른 길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무작정 달려야만 했던 그 아찔하고 짜릿한 순간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1천번 이상 꼬리를 흔들어야 겨우 1Cm 전진할 수 있었던 나는 18Cm를 무사히 달려가 운명적인 만남을 겨우 가질 수 있었다. 나팔관에서 나팔소리를 들을 겨를도 없이 달려간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빛나는 난자를 만나면서 비로소 작은 나팔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온힘을 다하여 달려가 만났던 황금빛 난자를 나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태양처럼 빛나던 황금빛 난자를 기억하고 있다. 보름달처럼 빛나던 황금빛 님을 나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운명처럼 만난 우리들은 대화할 시간도 없었다. 연애할 시간도 없었다. 나는 침묵하는 그녀를 흔들어 깨우면서 힘차게 벽을 뚫고 들어가야만 했다. 그것만이 우리들의 사랑을 완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길 만이 우리들이 한 몸으로 부활할 수 있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의 미토콘드리아와 나의 꼬리는 힘차게 온 몸을 흔들며, 자신의 몸뚱아리를 불태우며 온 힘을 다하여 나의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힘차게 머리를 들이받으며 그 난자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하나 뿐인 내 운명이었다. 나의 운명이 그렇게 나를 무작정 밀고 들어가게 만들었다. 내가 그 난자 속으로 들어가니 난자는 이제 문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내가 난자의 벽을 뚫고 들어가는 순간, 난자가 스스로 오직 나 하나만을 가슴에 품고 모든 문을 벽으로 만들어 닫아버리는 순간, 모든 다른 길을 차단하고 오직 나와만 함께 길을 걸어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나는 비로소 꼬리를 잘라버릴 수 있었다. 나는 비로소 남은 연료마져 모두 버리고 우주의 진공상태 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미토콘드리아도 떼어버리고 머리카락과 두피도 모두 벗어던지고 오직 알몸의 뇌 하나로 남을 수 있었다. 나의 오랜 유전자를 간직한 DNA 하나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비로소 미꾸라지의 시절을 지났다. 그렇게 나는 비로소 뱀의 원죄의 시절을 지났다. 남은 것은 오직 진실 하나 뿐 이었다. 남은 것은 오직 순수 하나 뿐 이었다. 그렇게 나는 핵 하나가 되어 그녀를 만났다. 핵폭탄 같은 총알 같은 육탄이 되어 또 다른 육탄을 만났다. 그리하여 나는 비로소 그 난자 속에서 핵과 핵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미토콘드리아도 꼬리도 모두 잘라버리고 머리에서도 핵심만 남겨두고 모두 버리고 나서 비로소 만나 수 있었다. 모든 잡념을 버리고 화두 하나만 횃불처럼 들고 또 다른 촛불을 만났다. 빛나는 별 하나가 빛나는 또 다른 별 하나를 만났다. 오직 핵 하나만 남기고 모두 버렸을 때 나는 비로소 나를 기다려 준 난자의 핵과 한 몸으로 수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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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치열하게 출발했던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의 자궁을 잃어버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의 젖꼭지를 잃어버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머니의 포대기를 잃어버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머니의 손을 잃어버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을까? 어머니의 가슴을 잃어버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을까? 어머니의 손길과 발길을 잃어버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을까? 어머니의 그림자까지 잃어버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을까? 어머니의 젖줄을 잃어버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을까? 어머니의 노래를 잃어버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을까? 어머니의 길을 잃어버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의 강을 잃어버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의 산을 잃어버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제 어머니의 숨결 대신 우리들의 목숨이 되어버린 돈을 찾아서 은행들의 문이나 들락거리는 은행 앞의 은행나무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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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이란 무엇일까


돈은 국문 기록이 시작된 이래로 줄곧 ‘돈’이라고 표기되었고, 어형의 변화가 없었다. 방언에서도 다른 말을 쓰지 않는다. 다만 중부 방언에서는 돈을 둔이라고 발음한다. 돈의 어원은 짐작하기 어렵다. 돈은 ‘돈다’는 동사에서 유래하였고,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닌다는 뜻이라고 하기 일쑤이나, 민간 어원이라고 보아 마땅하다. 한자어로는 전(錢)이라고 한다. ≪훈몽자회 訓蒙字會≫에서부터 이 글자를 ‘돈 전’이라고 읽었다. ‘화폐(貨幣)’라는 말도 쓰인 내력이 오래된다. ‘금’이니 ‘황금’이니 하는 말도 돈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속담에서는 돈의 위력을 강조하여 일컬으면서 못마땅하게 여기는 반응을 나타낸다. ‘돈이 양반’, ‘돈이 장사’, ‘돈이 제갈량’이라고 하며 돈의 힘이 크다고 한다. ‘돈이 많으면 장사 잘 하고,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고 하여 사람의 능력이 오히려 중요하지 않게 된 사태를 지적한다.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고 하는 데서는 돈의 위력을 강조하느라고 불가능한 상상을 하며 돈 때문에 세상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은근히 나타낸다. 돈이 없을 때 돈에 대해 말을 많이 한다. ‘돈 없으면 적막강산이요, 돈 있으면 금수강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돈 벌기는 힘들어 ‘돈 한 푼 쥐면 손에서 땀이 난다.’고 하고, ‘돈 나는 모퉁이 죽을 모퉁이’라고 한다. ‘돈 놓고 돈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돈은 노력을 한다고 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밑천이 있어야 벌 수 있으며, 밑천을 굴려 돈을 버는 과정에서 온갖 비리를 저지를 수 있다. 그래서 ‘돈에 침 뱉을 놈 없다.’고 하지만, 돈 많은 사람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특히, 돈을 벌어 모으기만 하고 쓰지는 않는 구두쇠·자린고비·수전노 등은 비난과 풍자의 대상이 된다. 돈은 벌기보다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해서, ‘돈은 더럽게 벌어도 깨끗이 써라.’,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써라.’라고 한다. 돈에 집착하지 말아야 사람의 도리를 바르게 지킬 수 있다는 교훈도 여럿 있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교훈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최영(崔瑩)에게 남겼다 하여 널리 알려져 있다. 돈보다 사람이 소중하다는 경구는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라고 하는 것이다. ‘돈 모아 줄 생각 말고 자식 글 가르쳐라.’는 말도 한다. 돈이 생기는 운수를 ‘재수(財數)’라고 한다. 재수는 ‘있다’, ‘없다’라고 말한다. ‘재수가 물밀 듯하다.’, ‘재수가 불일 듯하다.’라는 말은 재수가 있다는 것이고, ‘재수가 옴 붙 듯하다.’, ‘재수에 옴 올랐다.’는 말은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재수가 있다는 것보다 없다는 것에 재미 있는 속담이 더 많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를 깬다.’고 한다. 이보다 더 길게 ‘재수가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고, 복 없는 봉사는 괘문(卦文)을 배워 놓아도 개좆부리 하는 놈도 없다.’고 하기도 한다.

재수는 운수라고 생각하여 점을 쳐서 알아내려고 하고, 신앙 행위를 통하여 얻으려고 한다. 무속의 굿에 재수굿이 있고, 불교에서도 재수발원이나 재수불공이 있다. 재수굿은 집안에서 하는 굿의 대표적인 형태의 하나이다. 병을 앓는 사람이 있다든가 누가 죽었다든가 하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서 하는 집안 굿은 대개 재수굿이다. 재수는 성주신이 관장한다고 믿어 집안의 신성한 장소인 대청에 모신 성주신을 위하는 재수굿을 정월 또는 시월에 한다. 근래에는 운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사고 나지 않게 해 달라고 흔히 이 굿을 한다. 굿상에 돼지머리를 놓고 재수를 상징하는 돈을 헌납하는 것이 이 굿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무당이 소다리 둘을 잡고 재복(財福)을 긁어 들이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무당이 굿을 하면 구경하는 사람들까지도 돈을 굿상에 얹고, 걸고, 무당 얼굴에 붙이기도 한다. 무당에게 보수를 지불하는 방식인데, 그렇게 해야 돈 내는 사람에게 재수가 있다고 믿는다. 무당은 신령의 현신 자격으로 그 돈을 거두어들인다. 저승차사가 오면 음식을 대접하고, 신발을 마련해 줄 뿐만 아니라 돈으로 인정을 쓰는 절차도 있다. 무당이 저승차사 노릇을 하며 저승길을 갈 때 등에 붙이는 문서에도 돈이 꽂혀 있다. 돈은 저승에서도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 것이 흥미롭다. 죽어 저승에 가는 사람도 노자나 용돈이 필요하다고 믿어, 그 경우에는 종이돈을 마련하여 불에 태워 저승에 보낸다. ≪삼국유사≫에서 월명사(月明師)가 죽은 누이를 제사지내면서 <제망매가 祭亡妹歌>를 지어 부르니 문득 광풍이 불어 종이돈을 서쪽으로 날아가게 하였다고 한다. 서쪽은 죽은 누이가 가는 곳인 서방정토를 뜻한다. 돈을 저승에 보내는 무속의례가 일찍부터 불교와 관련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재수를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재수에 관한 속신을 지킨다. 아침에 장사를 시작할 때 첫 손님이 물건을 사는 것을 마수라고 하고, 마수를 잘 해야 하루 동안 재수가 좋다고 한다. 첫 손님이 흥정을 하다가 만다든가 에누리를 하면 마수를 잘못한 것으로 여겨 불쾌하게 생각한다. 마수를 하여 받은 돈에는 침을 뱉는다. 돈이 더럽다고 하면서도 돈이 많이 벌리도록 기원하는 동작이다. 택시 운전사는 첫 손님이 남자라야 그날 재수가 좋다고 한다. 여자는 재수가 없고, 임산부는 더욱 못마땅하다고 여긴다. 이 밖에 사는 집이나 가게, 취급하는 물건 등에도 재수가 있다면서 길흉을 따지는 습속도 있다. 가난한 사람이 한꺼번에 돈을 많이 가지려면 뜻밖의 행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런 조건에 맞는 도깨비방망이 이야기를 지어냈다.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사람이 어디 궁벽한 곳에 갔다가 도깨비들이 가지고 노는 방망이를 얻었다. 그 방망이에서 돈이고 밥이고 옷이고 나오라는 것이 다 나와 큰 부자가 되었다.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은 형제 또는 이웃 사람이 도깨비를 만나러 갔다가 방망이를 얻지 못하고 봉변을 당하기만 하였다. 이렇게 해서 도깨비방망이를 얻는 행운이 선행에 대한 보상이므로 아무나 본뜰 수 없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재물은 형제의 의를 해친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어떤 백성 형제가 함께 가다가 아우가 황금 두 덩이를 주워 하나는 형에게 주었다. 배를 타고 나루를 건너는데, 아우가 갑자기 금덩이를 물에다 던졌다. 형이 이상하게 여겨 물으니 대답하기를, 금을 나누어 가지니 형을 시기하는 마음이 생겨 금이 상서롭지 못한 것인 줄 알고 물에다 던졌다고 하였다. 그 말이 맞다면서 형도 자기가 가진 금을 물에 던졌다고 한다.

재물을 지나치게 아끼는 구두쇠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인간성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굴비를 사다가 천장에 매달아 놓고 한 번씩 쳐다보고 반찬을 삼으면서 자식이 두 번 쳐다보니 그렇게 헤퍼서 되느냐고 나무랐다고 한다. 자린고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구두쇠 이야기가 흔히 그렇게 시작된다. 며느리도 그 수법을 배워 고기 장수가 오자 고기를 만지기만 하고 사지는 않으며, 그 손을 씻어 국을 끓이니 자린고비가 그렇게 헤퍼서 쓰겠느냐 하면서 그 손을 동네 우물에다 씻으면 온 동네 사람이 일 년 내내 고깃국을 먹을 것인데 하며 혀를 차더라는 것이다.

돈 한 푼 없이 아무나 만나는 사람을 속이고 어르고 해서 숙식을 해결하고 다니는 김선달 등의 건달은 피해를 끼치기는 해도 재물에 대한 집착을 깨기 때문에 도리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김선달이 대동강을 팔아먹은 것은 사기행각이지만, 대동강을 사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허욕에 사로잡힌 상대방에 잘못이 있기 때문에 조금도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김선달과 비슷한 인물인 경주의 정만서가 불효자 대신에 잡혀가 한 밑천 잡았다는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을 원님이 돈을 우려내려고 애매한 사람에게 불효죄를 씌워 잡아오라고 하는데, 정만서가 돈을 받아 분부를 거행하는 사령과 나누고 대신 잡혀갔다. 원님이 호령을 하자,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친에게 효도를 할 도리가 없다고 하였다. 모친을 데려다 확인해 보니 층계 아래에 꿇린 인물이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잡아떼더라는 것이다.

1097년(숙종 2)에 의천(義天)은 엽전을 만들어 쓰자고 왕에게 건의한 ≪화폐론≫을 지으면서 엽전의 생김새를 들어 긍정론의 근거로 삼았다. 엽전이 밖은 둥글고 안은 모난 것을 일컬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뜨고 모난 것은 땅을 본떴다고 하고, 만물을 하늘이 덮고 땅이 실어 없어지지 않게 하는 이치를 구현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 생김새를 한 돈은 어디든지 흘러다니고 상하 백성에게 두루 퍼져 날마다 써도 무뎌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내 최초의 엽전인 해동통보(海東通寶)가 만들어졌다.

고려 무신란 직후인 12세기 말에, 임춘(林椿)이 지은 가전체 작품으로 <공방전 孔方傳>이 있다. ‘공’은 둥글다는 뜻이고, ‘방’은 모나다는 뜻이다. 엽전 형태의 돈을 그렇게 일컬으면서 마치 사람인 것처럼 의인화하여 전(傳)을 짓고, 그 내력·행적 등을 흥미롭게 서술하였다. 공방은 겉으로는 둥그나 속이 모난 사람이라고 하였다. 엽전의 모습을 의천의 글에서와는 다르게 풀이하여 돈의 폐해를 논하는 서두로 삼았다. 공방이 벼슬을 하자 권세를 잡고 뇌물을 거두어들였다고 한다. 농사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장사치의 이익만 앞세워 나라를 좀먹고 백성에게 해를 끼쳤다고 나무랐다. 그러다가 벼슬자리에서 쫓겨났으면서도 뉘우치는 기색은 없이 도리어 자기가 나라의 재정을 풍족하게 한 공적이 있다고 자랑하니 그럴 수 있겠는가 하고 개탄하였다. 그래서 자손마저 세상에서 욕을 먹고, 죄를 지어 처형되기도 하였다고 덧붙였다.

돈으로 장사를 하는 데에만 힘쓰고 농업은 소홀히 하면,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백성을 해롭게 한다는 생각을 그렇게 나타냈다. 공방은 말하기를, “사람을 접하고 인물을 대함에도 어질고 어질지 않음을 묻지 않고, 비록 시정의 사람이라도 재물만 많으면 함께 사귀고 통하니 이른바 시정의 사귐이라는 것이다.”라고 하여, 돈으로 이익을 추구하느라고 유교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것을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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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서는 상평통보라는 엽전 이름을 풀이하였다. 떳떳이 평등하게 널리 통용된다는 뜻으로 상평통보라고 한 엽전이 실제로 어떤가 살폈다. 생긴 모양을 보면 구멍은 네모지고 사면은 둥글다고 하였다. 둥글기 때문에 어디로든지 굴러다닌다고 하였다. 구멍은 네모지다는 데 대한 풀이는 없으나 어디로든지 굴러다닌다고 해서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은 가운데 깨우친다. 굴러가는 곳마다 반기지만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조그마한 쇠붙이를 두고 머리가 터져 상처가 나도록 다툰다고 하였다. 돈을 벌기 위하여 악착스럽게 경쟁하는 세태를 풍자한 말이다. 이 노래가 이루어졌을 시기인 18세기쯤에는 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경쟁이 심해졌다. 그런데 노래를 지은 사람 자기는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릇된 세태에 대한 반감을 나타냈거나 아니면 속셈과는 다르게 슬쩍 눙쳐본 것이다. 이 노래에서는 돈은 어디로든지 돌고 누구나 반기므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아주 흥미롭게 나타냈다.


그런데 <치산가 治産歌>라는 이름으로 전하는 몇 가지 가사는 돈을 모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고, 그 방법을 일러주었다. 근검절약해서 지출을 줄이고 농사를 짓되 자가 소비가 아닌 상품생산에 힘을 쓰라고 하였다. 서울의 풍물을 노래한 가사 <한양가 漢陽歌>에서는 많은 물건을 모아 놓고 장사를 크게 하는 광경을 신이 나고 흥겹게 그려 화폐경제를 긍정하는 생각을 나타냈다.

화폐문제를 다룬 논설을 보더라도 폐해를 지적한 것이 더 많다. 이익(李瀷)은 ≪성호사설≫의 여러 대목에서 화폐 유통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였다. 장날이면 시골 사람들이 돈 꿰미를 차고 나가 술에 취하여 서로 붙들고 돌아오는데, 돈이 없으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상인이 곡식 값을 조작해서 이익을 독점하기 때문에 농민이 피해를 입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당시에 유통되던 상평통보를 회수하고 엽전 사용을 정지시켜야 질서가 회복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정규(禹禎圭)는 ≪경제야언 經濟野言≫에서 돈은 막힌 재화가 유통되고 쌓인 재화가 흩어지게 하며, 국내의 물가가 균등하게 되도록 조절하는 구실을 한다고 하였다. 돈이 있기 때문에 가격이 형성되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무겁고 부피가 큰 물건을 돈으로 바꾸어 운반할 수 있으니 일상생활에서 돈처럼 편리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소설은 돈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데 특별한 의의가 있다.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 자체가 돈에 관한 시비를 관심사로 해서 성장하고, 상품화되어 팔려 널리 읽혔다.

한편으로는 돈에 관한 설화를 받아들이고, 또 한편으로는 돈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논의를 이어서, 소설의 내용이 단순하지 않다. 오늘날에 와서는 소설이 돈벌이 수단이 되기도 하고, 상업주의 문학으로서 문제와 폐단을 지녔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한문으로 기록된 야담 가운데 소설에 근접한 작품은 돈문제를 즐겨 다루었다. <삼난 三難>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작품에서는 몰락한 양반집 둘째 아들이 갓 혼인한 처와 남모르게 도시로 나가 술장사를 하고, 오랜만에 찾아온 형에게 밥값을 받을 정도로 절약하며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비부 婢夫>라고 하는 것에는 재상가 비부가 된 인물이 처가 지닌 자금으로 장사를 하여 크게 성공한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 충청도 어느 고을에 가서 대추를 매점하고, 황해도에 가서 면화를 사들이는 등의 방식을 써서 돈을 남기고, 서울에서 헌 옷가지를 모아다가 함경도에 가서 인삼과 짐승가죽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번 돈을 굶주린 동포에게 다 나누어 주고 빈 손이 되었다가, 함경도 산속에서 산삼 무더기를 발견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박지원(朴趾源)의 한문소설은 이와 비슷한 야담을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다듬었다고 할 수 있으며, 돈문제를 취급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 <양반전 兩班傳>에서는 가난한 양반이 나라 곡식을 꾸어 먹고 갚을 수 없게 되자 아내가 “양반이란 한 푼 어치도 안 된다.”고 빈정댔다. 이웃의 부자가 곡식을 대신 갚고 양반을 사려고 하다가 양반 노릇을 하려면 부당한 횡포를 저질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허생전 許生傳>의 주인공 허생은 독서만 일삼는 선비 노릇을 하다가 아내가 보채는 것을 참지 못하고 집을 나선다. 장안의 갑부 변씨에게 1만 냥을 꾸어 전국 각처로 다니며 물자를 매점하는 방식으로 장사를 하고 외국 무역까지 해서 거금을 모았다.

너무 많은 돈은 바다에 빠뜨리고 변씨에게 줄 십만 냥만 가지고 가서 갚았다. 변씨가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자 만 냥을 잃지 않았는가 하고 염려하니 “만 냥이 어찌 도(道)를 살찌게 하리오.”라고 대답하였다. 돈을 버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그래서 생기는 폐해도 지적하였다. 물자를 매점하는 수단은 뒤의 사람이 다시 쓰면 나라를 병들게 하리라고 하였다.

<흥부전>은 돈문제를 중요시한 국문 고전소설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놀부와 흥부는 형제이지만 돈이 있고 없는 차이 때문에 처지가 아주 달라졌다. 가난한 흥부는 품팔이를 닥치는 대로 하다가 매 품팔이까지 하였다. 화폐경제시대에 빈민이 겪는 고난을 아주 선명하게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해결책은 없고, 도깨비방망이와 같은 구실을 하는 기적의 박씨 덕분에 흥부는 한 순간에 부자가 되었다. 놀부는 부자이고 구두쇠이다. 제사를 지내면서 제물을 차리지 않고 대전(代錢)으로 돈만 놓고, 상을 물리고 황초값 닷 푼은 거둘 길이 없다고 하는 위인이다. 갖가지로 열거한 심술은 모두 남의 손해가 곧 자기의 이익이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을 나타낸다. 흥부와 놀부가 사는 곳은 시골로 소개되었지만 고리대금이 성행하였다. 흥부가 매 품팔이 선금을 받아오자 아내는 “돈 말이 웬 말이오? 일수 돈을 얻어 왔소? 월수 파수변을 얻어 왔소? 오 푼 달변을 얻어 왔소?” 하면서 고리대방식을 셋이나 열거하였다. 흥부는 그래서 피해를 입기만 하고, 놀부는 돈을 놓고 돈을 먹는 원리를 잘 터득하고 실행하였다. 투자해도 이익이 나지 않으니 흥부는 도와 주지 않지만, 소는 먹이고 머슴은 부리고 일꾼도 샀다. 박을 탈 때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자작으로 농사를 크게 짓고 고리대도 하여 돈을 모으고,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라고 깊이 깨달은 위인이다.

현대소설에서는 돈에 관한 부정론과 긍정론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나타나 사회구조와 변화를 깊이 있게 그리는 구실을 하였다. 염상섭(廉想涉)의 장편소설 <삼대 三代>에서는 부자 가문의 3세대를 대조적으로 그려 돈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밝히고 있다. 할아버지는 돈을 모아 양반을 사고 족보를 꾸미는 데 열중하면서도 낭비는 억제하였다. 그런데 주인공의 아버지는 미국 유학을 하고 와서 기독교 교회사업을 한다면서 뒤로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재산을 탕진하려 하였다. 주인공은 할아버지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돈을 물려받아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이 없다. <삼대>의 속편 <무화과 無花果>에서는 같은 성격의 주인공이 나서서 기업을 경영하고 신문사를 운영하지만 능력이 부족하고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여 파멸한다. 사회주의운동에 적극 동조하지 않으면서 측면 지원을 하려는 것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시대의 민족 자본이 많은 기대를 모으면서도 사실은 무기력하다는 것을 그런 방식으로 나타냈다. 채만식(蔡萬植)은 <태평천하 太平天下>에서 대를 물려 온 악덕 지주 겸 고리대금업자를 통렬하게 풍자하고, 그 보수적인 성향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와 밀착되지 않을 수 없는 내막을 폭로하였다. 그러면서 그 위인에게 극단적인 구두쇠의 성격을 뚜렷하게 지니게 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탁류 濁流>에서는 일제의 자본 침투가 투기를 부추겨 허욕 때문에 파멸이 가중되는 세태를 통해 돈의 폐해를 극명하게 그리고, 그로 인해서 거듭 희생되는 여인의 기구한 생애를 다루었다.



* 인류 3대 발명품 중 하나인 화폐의 3대 기능 / 최병일 기자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품 3가지를 뽑기 위해 투표를 한다면 무엇이 선정될까? 많은 사람들이 불과 바퀴를 인류가 역사적인 도약을 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발명품으로 손꼽을 것이다. 불은 인간이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게 해줌으로써 고기나 곡물을 씹고 소화하는 데 써야 할 시간을 줄일 수 있게 해줬다. 음식물을 섭취하는 시간을 절약한 인간은 생존을 위한 1차원적인 활동과는 결이 다른 수준 높은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뿐만 아니라 불은 나약한 인간을 맹수로부터 보호해주고, 금속과 같은 도구를 개발하고 개량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바퀴는 인간이 엄청난 무게의 물자들을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인간에게 물리적인 거리와 중력을 극복해 건물을 만들고, 도시를 설계하는 데 큰 힘이 된 것이다.

문제는 인류 3대 발명품 가운데 불과 바퀴를 제외하고 남은 하나를 선정하는 과정인데 마지막 하나를 선정할 때는 자신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식과 문명이 전파되고 발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종이를 발명품으로 추천할 것이다. 젊은 세대들은 아마도 전기나 인터넷을 중요한 발명품으로 선정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 교수는 자신의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인류 3대 발명품의 남은 후보로 주저없이 화폐(중앙은행제도)라고 기술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돈`(화폐)이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화폐가 정말 앞에서 말한 불이나 바퀴와 같이 인류의 역사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킨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잘 알려진 화폐의 3대 기능인 `가치저장` `가치척도` `교환`을 기계적으로만 외우지 않고 실제적인 사례를 들어 되짚어 보고나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새뮤얼슨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화폐가 통용되는 시장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반대급부로 자기에게 필요한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를 받지 않고 돈을 대신 받는다. 내가 지금 다른 사람에게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은 화폐는 언제든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신뢰는 경제 발전에 큰 동력이 되었다. 과거 위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왕이나 부자들도 누릴 수 없었던 최첨단의 생활을 지금의 중산층은 누리고 있다. 사람들은 고속철도나 비행기를 이용해 반나절 만에 수백 ㎞ 이상 떨어진 지역을 쉽게 여행할 수 있다. 퇴근 후 텔레비전을 켜면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당대 최고의 연기자들과 가수들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이처럼 평범한 인류가 수준 높은 생활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은 고도로 전문화되고 분업화된 시장경제 덕분이다. 만일 인간이 자급자족하는 경제 제도를 고수해 왔다면 대부분의 인류는 정글에서 생활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처럼 생존과 직결된 절대적인 필요도 다 채우지 못해 매일 불안해하며 일상을 보냈을 것이다. 화폐는 많은 사람들이 고도로 분업화된 자신의 업무만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해 소득을 얻고, 그 소득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산물과 교환하는 경제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화폐는 모든 사람들이 그 가치를 잘 알고 있는 표준화된 `가치척도`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화폐`라는 공통된 단위(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직관적이고 쉽게 특정 사물이나 행동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래퍼들이 얼마나 음악을 잘하고 인기가 있는 가수인지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에게 설명하려면 많은 시간과 여러 정보를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아주 쉽게 젊은 래퍼들이 얼마나 인기 있고, 음악을 잘하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이들이 1년간 벌어들이는 수십억 원의 출연료나 저작권료를 알려주는 것이다. 엄청난 래퍼들의 수익을 듣고 나면 어르신들은 그들의 음악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이처럼 화폐의 가치 척도 기능은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생산하고 거래할 때 그것의 가치를 설명하는 수고와 자신의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비교하는데 의사결정 과정을 이주 간소하게 만들었다. 소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할 수 있는 가격이 현실에서 화폐라는 도구로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또 화폐의 가치저장 기능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더 집중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과거 자급자족을 하던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리 사냥을 잘해도,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자신이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양 이상은 생산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화폐가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산 활동 결과를 안정적으로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평생 다 쓰지 못한 양의 상품을 생산하고도 계속해서 더 많은 수량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생산할 유인을 갖게 된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화폐는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히 존재하는 물질이지만 공기나 햇볕처럼 그것이 없어지면 생존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 최근 정부의 재정 적자와 통화 정책의 실패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는 베네수엘라를 생각해보면 화폐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이 신뢰를 잃으면 통화 당국이 발행하는 법정 화폐는 말 그대로 종이 조각이 된다. 화폐 가치가 걷잡을 수 없이 폭락해 최근 살인적인 물가 상승을 경험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는 물건을 구할 수도 없고, 많은 국민들이 생존을 위해 이웃나라에 불법으로 취업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1차 대전 이후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마르크화가 화폐 기능을 상실하자 독일 경제는 파산했고, 냉정하고 지적이던 독인 국민들은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었다. 히틀러를 추종하고,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부끄러워하는 역사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이처럼 화폐는 현대의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고 인류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따라서 현대에 와서 국가의 역할은 위와 같은 화폐의 본질적인 기능이 훼손되지 않도록 유지 관리하는 것이고, 이것은 국방이나 복지 정책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이처럼 인류 경제 발전에 한 획을 그었던 화폐는 최근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새로운 도전을 맡고 있다. 물리적인 실체가 없는 전자화폐가 등장했고, 중앙은행이 아닌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가상화폐가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특히 가상화폐는 가격 변동성이 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고, 가격이 급락했을 때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비트코인이 처음 실물 거래에 사용된 사례는 피자를 재미 삼아 구매했던 일이다. 이때 비트코인 개발자가 피자 한 판을 구입하기 위해 지불했던 비트코인의 가치를 2017년 비트코인 가격이 가장 높았을 때로 환산하면 40억원이 넘는다. 2017년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던 시절,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투자 수단으로만 보유할 뿐 실거래에 사용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즉 가상화폐는 가격 변동성이 커 아직은 화폐로써 가치척도, 가치저장, 교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가상화폐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던 시절, 가상화폐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앞서 살펴본 화폐의 3대 기능을 근거로 가상화폐의 가치와 가능성을 평가했다면 투자로 발생할 부작용을 상당히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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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역사

돌고 돌며 가치를 만드는 돈


고대부터 인간은 필요한 물건을 모두 가질 수는 없었어. 그래서 교환이 시작되었어. 하지만 필요한 모든 것을 교환으로 얻을 수는 없었어. 교환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화폐는 5,000년 동안 진화해 왔어. 이제 우리는 시장에 가서 돈을 내고 물건을 사지 않아도, 집에 앉아서 신용 카드와 마일리지 혹은 사이버 머니를 이용해서 하는 세상에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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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멕시코 ② 에스파냐 ③ 이탈리아 ④ 이스라엘 ⑤ 이탈리아 ⑥ 중국 ⑦ 중국 ⑧ 미국 ⑨ 독일



① [멕시코] 최초의 위조 화폐 카카오 콩 - 아즈텍 문명
사람들은 언제부터 돈을 위조했을까? 돈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만들기 시작했으니 인류역사와 늘 함께 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 아즈텍 문명에서는 카카오 콩을 화폐로 사용했는데, 진흙을 섬세하게 빚어서 카카오 콩 같은 모양을 낸 가짜 돈이 만들어졌대. 속은 사람이 있었을까?

② [에스파냐] 세계 화폐가 된 에스파냐 동전
에스파냐는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금과 은으로 동전을 만들었어. 그리고 이 동전은 유럽 전체 지역으로 퍼져 나갔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금이 많아진 에스파냐 인들은 창틀, 거울 등 모든 것에 금을 사용했어. 아직 캐내지도 않은 금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쓰던 에스파냐의 왕들은 파산하고 말았어.

③ [이탈리아] 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 화폐
동서양에 걸친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로마 제국은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금화나 은화를 사용했어. 황제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세금을 거두거나 화폐를 만들어 방탕한 생활을 했어. 결국 과도한 세금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농지를 잃고 영주의 보호 아래 들어가면서 로마 제국은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후 1,000년 가까이 화폐가 필요 없는 자급 자족의 농촌 사회가 시작되었어.

④ [이스라엘] 성경에 나오는 1달란트는 얼마일까?
멀리 떠나는 주인이 종들을 불러 놓고 1달란트, 2달란트, 5달란트를 주었어. 그런데 1달란트를 받은 종은 돈을 땅에 묻었다가 나중에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주어 혼쭐이 났지.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야. 1달란트는 금 33kg을 뜻하는데, 오늘날의 가치로 바꾸면 자그마치 5억이나 되는 돈이야. 금화 1개가 5억이었다니 정말 대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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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이탈리아] 이탈리아에서 살아난 은행
14세기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는 긴 탁자를 놓고 돈을 빌려주거나, 맡아주는 사람들이 생겼어. 이 탁자를 반코(banco)라고 불렀는데, 이 말이 순식간에 퍼져나가서 은행을 뜻하는 뱅크(bank)가 되었어. 은행업자들도 파산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돈을 맡긴 사람이 너무 화가 나 탁자를 부숴버렸대. 부서진 탁자(banco rotto)에서 파산(bankruptcy)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어. 가장 유명한 은행가는 메디치 가문이야.


⑥ [중국] 최초의 여행자 수표
중국 원나라에서는 최초로 종이 화폐가 만들어졌어. 외국 상인이 중국으로 가지고 온 금이나 은을 황제의 직인이 찍힌 종이로 바꾸어서 사용하도록 했거든. 그리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때에는 다시 금이나 은으로 바꾸어 주었대. 이 종이 화폐를 믿을 수 있었을까? 물론이지. 원나라의 치안은 최고 수준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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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중국] 농기구를 닮은 돈
춘추 전국 시대에 중국은 철기가 처음 사용되면서 철로 만든 돈이 만들어졌어. 생긴 모양을 잘 보면, 칼 모양이나 농기구 모양으로 생겼지.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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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미국] 골짜기에서 만들어진 세계 화폐, 달러
달러가 왜 달러인줄 알아? 신성 로마 제국의 땅이었던 체코에서 만들어진 동전을 요아힘스탈러굴덴이라고 불렀는데, 독일인들이 발음하기에 너무 어렵고 길어서 ‘탈러’라고 불렀대. 바로 이것이 달러의 유래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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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독일] 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만든 히틀러
제1차 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서 연합국들은 독일에게 1,320억 마르크를 배상금으로 내도록 했어. 게다가 수출을 금지시켰지. 독일은 무분별하게 돈을 만들었고, 3개월 만에 물가가 35배 치솟았고, 1조 배까지 올랐지. 이제 돈은 쓸모가 없어졌고, 정부기업을 살리기 위해 497,000,000,000,000,000,000 마르크를 대출해 주었어. 이것을 ‘0의 충격’이라고 불러.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본 국민들은 히틀러의 집권을 인정하고 말았어.



돈의 여행


구석기 시대 : 물물 교환

신석기 시대 : 실물 화폐 → 소금, 조개, 쌀, 옷감 등

기원 전

8세기 : 금속 화폐 등장

→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에 칼 모양의 금속 화폐인 명도전 등장

7세기 : 지금의 터키 지역인 리디아에서 사자머리가 새겨진 귀금속 동전 제조

6세기 : 그리스 아테네에서 동전을 만들기 시작함

4세기 : 고조선에서 자모전이라는 돈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음

3세기 : 진의 시황제는 화폐를 통일함

기원 후
1세기 : 한나라, 다양한 종류의 화폐 발행

1483 : 원나라, 최초의 지폐 제작

1851 : 미국에서 지금과 같은 의미의 신용 카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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