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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y 01. 2021

세한도

-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2





세한도

-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2




마포대교


누군가는 저 다리를 건너

역사를 바꾸었고

누군가는 저 다리를 건너

도화낭자를 만났고

누군가는 저 다리를 건너가다

다 건너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자꾸만

다리 난간에 있는

거울 속 사내를 들여다 본다



눈사람


나는 하늘에서 온 사람

나는 하늘로 돌아갈 사람


나는 이제 곧 강이 될 사람

나는 다시 바다가 될 사람


나는 아지랑이로 피어오를 사람

나는 또다시 구름으로 떠돌 사람


그래도 나는 영원히

그대 손길을 잊지 못하는 사람



수선화


꽃이 너무 많다

잔이 너무 많다

독이 너무 많다


독을 마시기에 딱 좋은 금잔옥대

벌써 비워져 있다



달과 소나무


심장내과 복도에는 어둠이 쌓여있다

나의 하느님이신 원장님께서 문을 열고 불을 켠다

잠시 후에 천사들이 들어오며 출근 체크를 한다

피를 뽑아 검사를 하는 동안 나는 세한도를 본다

늙은 한 그루는 소나무가 분명한데

젊은 세 그루는 소나무일까 잣나무일까

나무들보다 둥그런 문이 더 궁금하다

보름달 안에서 반달이 보인다

초승달과 그믐달도 보인다

그 문에서 나의 반월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대동맥판막 반월문에서 시계소리가 들린다

반월산에 나란히 누워계신 반달 두 개도 보인다

엎어놓은 반달의 잔디 위에도 눈이 쌓여 있으리라

아직은 나의 반달문이 잘 열리고 잘 닫히고 있으리라

금속으로 만든 반월 문짝이 빠지는 일도 있으리라

문짝이 칼이 되어 대동맥을 갈라버릴 수도 있으리라

문을 지나가는 피가 떡이 되어 핏줄을 막아버릴 수도 있으리라

혈전이 뇌로 가서 뇌졸중을 일으킬 수도 있으리라

비트코인처럼 빛나던 문이 악귀의 입처럼 변할 수도 있으리라

아, 나는 이제 심장에서 나가는 문이 가장 무섭다

아, 나는 이제 세상으로 나가는 달이 가장 무섭다

나는 나의 하느님에게 십계명을 받아들고 나온다

세한도 밖으로 폭설은 멈출 줄 모르는데

늙은 소나무 한 그루 아직은 잘 살아가고 있다

장무상망(長毋相忘), 나의 묽은 피로 붉은 낙관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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