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 문학관 9
닭을 먹는데
닭 모가지가
탁
내 목에 걸렸다
내 몸속에서
자꾸만
닭이 울었다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애가 탔다
애가 끓었다
애가 끊어졌다
나는 힘껏
기침을 하였다
닭 모가지가
튀어나오고
이어서
창자가 끌려 나왔다
긴 창자가
끝없이 끌려 나왔다
구절양장이었다
구곡간장이었다
나는 비로소
속이 개운해졌다
그런데
나의 가슴속에
나의 창자 속에
누구의 창자가
들어 있었을까
끌려 나온 창자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아직도
남아있는 창자는
또한 누구의 것일까
미안해 - 20130614.hwp
미안해 / 배진성
나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나의 모든 문장에는 마침표가 없다
수국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어머니 파마머리 같은 수국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장마가 끝날 때까지 수국 꽃은 계속 피어날 것이다 장마가 끝나는 날 수국 꽃은 비로소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말라죽을 것이다 길게 늘어선 수국 길을 걸어간다 담쟁이들이 손을 잡고 검은 제주 현무암 담을 넘고 있다 담쟁이들이 전봇대 끝까지 올라가 전봇대를 완전히 덮어버리고 있다 담쟁이 기둥 위에 걸쳐져 있는 전깃줄에 까치들이 앉아있다 까치들이 울고 있다 어머니 파마머리 같은 까치둥지는 보이지 않는다 옛날에는 까치가 울면 기쁜 소식이 있을 것이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이제는 까치들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제주도에는 원래 까치가 없었다 아시아나항공이 취항하면서 그 회사 상징인 까치를 들여와 방사했다고 한다 천적이 없는 까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이제는 골칫거리가 되었다 특히 농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새가 되었다
계절도 모르고 일찍 핀 코스모스와 봉숭아와 채송화 길을 지나 화순 항까지 내려왔다 늘 아침마다 걸어가는 산책길이다 산책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책이다 나는 늘 살아있는 책을 읽는다 산책은 또한 씻김굿이다 내 발로 내 눈을 스스로 씻어주는 씻음 굿이다 나는 이렇게 내 눈과 내 영혼을 씻으며 산책을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화순 항이 심상치 않다 벌써 일 년이 넘도록 케이슨을 만들고 있다 해군기지를 만들고 있는 강정으로 실어갈 케이슨을 만들고 있다 거대한 아파트만 한 케이슨을 밤낮없이 만들고 있다 하루에 이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달라붙어 보름 정도 일하면 한 개의 케이슨이 완성된다 주로 외국인 근로자들이 만드는데 그들은 대부분 공사장 곁에 만들어진 합숙소에서 지내며 일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근래에는 해병대원들이 떼로 몰려와 소금막 모래밭 해변에서 훈련을 하고, 해양경찰 조직이 확대되고 부두까지 만들겠다고 하여, 화순은 이미 군사기지 같은 느낌이 든다 길 가에 보일 듯 말 듯 작게 있었던 해양경찰 건물은 이미 화순 항 정문에 으리으리하게 지어져 떡 버티고 있다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화순 항과는 이미 많이 달라져 버렸다 특히 케이슨 공사를 하기 위해 밀어버린 갈대밭이 나는 가장 아쉽다 나는 그 갈대밭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그리고 그 갈대밭에서 나는 시도 썼었다
서귀포 화순 해수욕장에는 섬을 꿀꺽 삼켜버린
커다란 보아뱀 두 마리 살고 있다
산방산을 삼키고 부처의 고뇌를 삼켜버린 보아뱀
보아뱀 두 마리 오늘도 바다로 기어가고 있다
추사의 세한도를 삼켜버린 용머리 보아뱀
횟집과 민박집을 삼키고 부른 배로 기어가는 보아뱀
보아뱀 두 마리 화산처럼 부글거리며
이어도로 가고 있다
나는 그 보아뱀이 삼켜버린 많은 전설을 알고 있다
갈대숲의 새와 검은 쥐들과 취객이 토해 놓은
어둠과 욕망의 내력들을 다 알고 있다
보아뱀 뱃속에 좌선하는 부처님과 추사가 코끼리 꼬리에 대하여
한담을 나누고 있다
가끔은 무지개의 뿌리 쪽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보아뱀
바람이 거세어 배들이 피항하는 화순항
바람이 거세질수록 화순 앞바다를
기어가는 뜨거운 보아뱀 두 마리
지금 막 빠져나가고 있다
이어도로 가고 있다
— 배진성 「보아뱀」
전설과 신화와 신들의 땅 제주도가 이제는 완전히 인간들의 땅이 되고 말았다 4·3이 발발 한 지 벌써 65년이 지났는데 제주 4·3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은밀하고 무자비한 4·3이 진행되고 있다 현기영 선생님의 「순이삼촌」이 발표된 지 35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는 화순에 들어설 예정이었다 화순 항은 자연적으로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는 요새다 양쪽에 있는 월라봉과 송악산이 바람과 파도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수심이 깊어서 항공모함이나 큰 배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적합지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화순 주민들의 끈질기고 치열한 반대 데모가 있었기에 무산되고 말았다 정부와 해군 당국의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에도 끝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화순 항 방파제는 벌써 수년 전부터 해군기지를 염두에 두고 미리 만들었음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끝끝내 화순 해군기지 조성을 성사시키지 못한 정부 당국은 막판에 시간에 쫓겨 부랴부랴 강정을 기습적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강정으로 결정되기 전에 한 때 위미가 유력한 두 번째 적격지로 거론되었으나 위미 주민들의 단결된 반대 데모에 막혀 성사시키지 못했다 위미 유치까지 물거품이 되자 정부 당국과 해군 당국은 꼼수를 써서 기습적으로 강정을 점령하다시피 한 것이었다 당시 마을 회장 등 몇몇 호의적인 사람들을 꼬드겨 절반도 안 되는 몇몇 사람들만 모여 해군기기 유치를 적극 찬성하는 쪽으로 몰고 갔던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안 대다수의 마을 주민들이 전 회장을 몰아내고 새로운 마을 집행부를 꾸려 반대운동을 펼치기 시작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것이었다 불법이 합법이 되고 합법이 불법으로 취급되면서 더욱 꼬여갔던 것이다 크든 작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계기는 마련되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쉽게 주워 담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아니 앞으로도 어쩌면 강정 문제는 자꾸만 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촉발된 강정 문제는 마을 주민들을 둘로 나누었고 제주도 전체를 둘로 나누었고 대한민국 전체를 둘로 나누고 말았다
또한 정부 당국과 해군 당국은 아직도 강정뿐만 아니라 화순 항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천혜의 요새 지역인 화순 항을 그냥 내버려 둘 리가 만무하다 그리하여 한 편에서는 화순 사람들을 바보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보상금은 강정 사람들이 다 챙겨가고 실질적인 해군기지는 화순 항이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옛날부터 화순 항은 큰 배들의 피항 항구로 유명하다 중국 배들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 배들이 피항하는 항구로 유명하다 큰 파도가 일거나 태풍이 오면 큰 배들이 안전한 화순 항에 정박해 무사히 바람이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곳이다 그래서 큰 바람이 부는 날에는 오히려 화순 항이 장관이다 이렇게 좋은 곳을 해군과 정부 그리고 미국은 그냥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화순항의 미래가 염려스럽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화순 항 주변에 송악의 푸른 손이 뻗어나가고 방풍 꽃이 피어나고 숨비기 꽃이 힘차게 피어나고 있다 나는 그런 화순 항 부근에 아직도 머물고 있다 나의 꿈은 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이어도 공화국을 만드는 것인데, 아직은 본격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이어도 공화국 베이스캠프를 치고 철저히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아마도 자살 전문가가 될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살 방지 전문가가 될 것이다 요즘에 멘붕이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멘털 붕괴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마음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20년 전부터 직접 온몸으로 겪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나는 어쩔 수 없이 전문가가 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미 자살 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은 이제 전쟁보다도 더 무서운 자실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이 되어버렸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오죽했으면 전직 대통령까지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리고 말았을까 내가 만들고 있는 이어도 공화국은 나의 작은 꿈 하나에서 출발한 것이다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나는 아름다운 산을 하나 가꾸고 싶다
그 산에 나무를 심고 나무를 가꾸며
나무처럼 살고 싶다
그 숲 속에 조촐한 집을 하나 짓고 싶다
삶에 지친 영혼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고 싶다
그 쉼터에는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가끔 찾아오면 좋겠다
절망이 너무 깊어서
스스로 죽고 싶은 사람들이
아주 가끔 찾아오면 좋겠다
아무런 부담 없이
누구라도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러면 나는 그들과 함께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들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세상에 대하여
너무나 분노한 사람들과
한 때의 실수 때문에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나는 그들과 함께
그들의 나무를 심어주고 싶다
산에 나무를 함께 심으면서
그들의 아픈 가슴에도
또 다른 희망의 나무를 심고
사랑의 씨앗을 뿌려주고 싶다
산 혹은 자연의 큰 거울 앞에서
희망을 되찾은 그들이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나는
그들과 내가 함께 심었던
그들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안부 편지와 함께 가끔 보내주고 싶다
세상으로 돌아간 그들은
언제라도
자신의 자라나는 나무를
보기 위하여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직접 올 수 없더라도
늘 가슴속에서 함께 자라나는
자신의 나무 때문에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가 끝끝내
함께 가야 할 길
겨울이 깊을수록
더 잘 보이는 길
실패한 사람을
함께 이끌어주고
넘어진 사람을
함께 일으켜 세워주고
억울한 사람의 억울함을
우리들이 함께 풀어주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나는 정말 좋겠다
— 배진성 「꿈」
인천에서 전화가 왔다 인천은 나에게 인천(仁川)이 아니라 인천(人川)이다 인천은 나에게 어진 개천 즉 어진내가 아니라 그냥 인간들의 개천 일 뿐이다 나는 인천에서 인간의 가장 밑바닥까지 다 보고 말았다 그리고 나 또한 인간으로서 갈 수 있는 가장 아래 밑바닥까지 가고 말았다 나는 어쩌면 남들처럼 인천에서 가정을 꾸리고 가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인천의 가정동 오거리에서 사랑이 사기로 판명되고야 마는 어이없는 일을 겪고 말았다 나의 인간에 모든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뼈저린 경험이었다 그 후로 나는 사랑도 잃고 사람도 잃고 빚더미만 잔뜩 짊어지고 인간의 세상에서 떠나버렸다
그런 인천에서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였다 그렇게 정정하시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잘 살았던 분이 갑자기 자살을 하셨다는 것이다 아니, 또 자살이라니! 자살하리라고는 전혀 꿈에도 생각 못했던 분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도 궁금했지만 자살이라는 그 단어에 그만 먹먹해지고 말았다 소위 자살 전문가라는 내가, 자살 방지 전문가라는 내가 글쎄 정작 가까운 사람들의 자살에는 속수무책이었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다 자살하기로 결심한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정작 내가 구해야 할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이었다니 이러고도 내가 전문가라 말할 수 있을까
어머니의 자살에서 나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또다시 일가친척이 자살을 하다니 나는 더 이상 산책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집에 있는 관 뚜껑을 열고 관에 한 번 누워보았다 관 안은 따뜻하였지만 관 안에 가득 쌓여있는 어머니의 신음소리 위에 작은 아버지의 비명소리까지 쌓여 관 뚜껑이 더욱 무거워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공항에 왔다
제주공항 활주로에는 제주 4·3 희생자들이 아직도 많이 묻혀 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관광객들은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웃으면서 그들의 영혼을 신나게 짓밟고 다닌다
거대한 시조새들이 아스팔트 아래 땅 속에 묻혀있는 영혼들을 깨우며 활주로를 돌고 있다 나는 그 거대한 쇳덩이, 시조새의 내장 속으로 걸어서 들어간다 까치를 닮은 바퀴 달린 무시무시한 시조새 한 마리가 내 영혼의 운동장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대가리를 살짝 들어 올리더니 힘차게 아스팔트를 박차고 날아오른다
너무 오랫동안 한라산만 바라보고 살았던 나는 너무 오랫동안 제주바다만 바라보고 살았던 나는 오랜만에 한라산 위에서 한라산을 내려다본다 아주 오랜만에 하늘에서 제주바다를 내려다본다 바다에는 아직도 내가 오랫동안 갇혀 살았던 멍텅구리배가 떠 있다
무거운 시조새는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라 축축한 구름을 뚫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아름답다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사는 신의 눈에는 더욱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아옹다옹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도 마음이 넓은 신들의 눈에는 귀엽게만 보일 것이다
나와 나의 마음을 가두었던 수평선도 어느새 사라지고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아름다운 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 보이는 해안선도 이제는 경계가 사라지고 계곡들의 경계선들도 이제는 큰 산의 품 속으로 안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이제는 바뀌어야만 할 것 같다 이제는 이렇게 바뀌어야만 할 듯싶다 시작은 반이 아니라 반 이상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작고 아름답다 더 높은 하늘에서 지그시 내려다보는 신의 눈에는 이 지상이 얼마나 작게 보일 것인가 저 작은 땅에서 아옹다옹 땅따먹기 놀이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귀엽게 보일 것인가 그런데 인간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잠시 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하늘의 시간, 하늘에서는 나도 잠시 신을 닮아보고 싶다 언제까지나 하늘에서 살고 싶은데 나는 곧 착륙을 준비해야만 한다 나의 삶도 이제는 곧 착륙을 준비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륙하지 못했는데 나는 아직도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나는 벌써 떠날 준비를 해야만 한다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착륙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이륙보다 착륙이 더 위험하고 더욱 중요하다 다시 안전벨트를 꽉 조여 매고 앞 의자의 등받이에 손을 얹고 버티며 착륙에 대비하기 시작한다
나와 나의 문학은 아직도 출발선 부근에 있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엉겁결에 출발선에 섰다가 땅! 출발 신호를 알리는 총소리에 놀라 나는 그만 제대로 출발하지도 못하고 출발선 부근에 있는 숲 속으로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너무 겁이 나서 그랬던 갓일까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헤매다가 나는 이제 겨우 다시 출발선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나는 아직도 너무 먹먹하여 인천으로 가지 못하고 서울로 갔다
너무 오랜만에 서울에 오니 갈 곳이 없다 두두는 늦은 세 시에 문을 연다고 한다 길은 공사 중이고 두두 안에는 작은 의자들이 천장에 매달려있다 마로니에 공원 공사용 간이 담장에는 연극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오래된 은행나무 그늘에는 사람들이 앉아있고 비둘기들은 부지런히 탁발수행을 하고 있다 오른발에 큰 상처가 있는 비둘기도 열심히 아스팔트를 쪼아대고 있다 간간히 참새들도 틈을 놓치지 않는다
갑자기 혜화역 2번 출구가 짹짹거린다 안산에서 단체로 왔다는 사백 명의 중학교 일 학년 학생들과 인솔교사들이 시끄럽다 비둘기들이 움직일 때마다 여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날아오른다 시크릿 공연을 단체로 함께 보러 왔다는 건강하고 예쁜 아이들을 보니 나는 도저히 웃을 수 없다 길 건너편 은행나무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서울대학병원 담장 가득 눈물이 얼룩 진다
1990년 여름 나는 극적으로 저 서울대학병원 흉부외과 중환자실에서 부활할 수 있었다
내가 두두에 다시 다녀오는 동안 안산에서 온 중학생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두두에서 동생을 만나 작은아버지의 자살 경위를 들어보고 싶었다 도저히 그냥 바로 작은아버지를 만날 자신이 없었다
대학로에서 사주를 보고 있는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번에는 남양주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왔다는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안산 중학생들과 달리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학생들이었다 내 옆에 앉은 여학생이 설문지를 들여다보며 한숨을 크게 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설문을 조사하기 위해 남양주에서 대학로까지 대학생들을 찾아 원정을 나온 것이었다
그 여학생을 보자 나의 성북 학생회 시절이 떠올랐다 성북 학생회는 고학생들이 학비를 벌기 위해 합숙 생활을 하며 철 지난 주간지 잡지책을 팔아 돈을 버는 단체였다 어떻게 보면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아니라 앵벌이 단체였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여 학비를 벌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이미 대학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의 마음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단 한 장의 설문지도 받아내지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잡지책 한 권도 팔지 못하고 밤하늘 별들을 바라보고 한숨짓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자처해서 설문지를 작성해 주었다 졸업 후 가장 고민거리를 묻는 설문에서 나는 망설임 없이 "취업"이라고 체크했다 나는 잠시 시인이 아니라 대학생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귀여운 여학생에게 설문지를 잘 받을 수 있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성북 학생회 시절에 배운 노하우를 전수해주었다 그렇게 한 장의 설문지 받는 일에 성공한 그 여학생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용기를 얻은 여학생은 조금 전의 난감한 표정에서 완전히 벗어나 적극적으로 설문지를 받기 시작했고 심지어 다른 친구들도 그 여학생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병원 후문에는 오늘도 여전히 환자들의 쾌유를 빌며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이 계셨다
내가 1990년 6월에 부활한 서울대학 병원에 갔다 오늘은 환자가 아니라 추억을 찾아서 왔다 나무들이 참 많이 자라 있었다 병원에는 여전히 아픈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알리지도 않았었는데 오규원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알고 이 못난 제자를 찾아오셨을까 그리고 그때 오규원 교수님과 함께 나를 찾아왔던 후배는 누구였을까 꽃다발을 전해주고 갔던 그때 그 후배 이름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도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흰색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린다 길 하나 사이에 두고 서울대학병원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 있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있다 오늘도 많은 연극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혼을 불사르고 있다
낙타의 등을 닮았다는 낙산에 올라갔다 낙산 정에서 귀엽게 사랑을 속삭이는 어린 학생들이 있다 서로의 머리에 꽃을 꽂아주며 서로의 귀에 꽃을 꽂아주고 착 달라붙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나는 왜 저만한 나이에 저런 사랑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었을까
두두에서 드디어 동생을 만났다 동생의 말에 의하면 작은아버지는 다단계판매 때문에 자살한 것이라고 했다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던 작은아버지였는데 시집간 딸이 먼저 시작한 다단계판매 때문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냥 딸을 도와주기 위해 가족들이 조금씩 도와주는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다단계라는 것이 참으로 희한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가면 갈수록 자꾸만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온 집안이 다단계에 목숨을 걸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끝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자살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두두에서 만난 타자기가 너무 반가웠다 나도 아마 타자기가 없었더라면 너무 악필인 나는 어쩌면 아직도 등단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방에도 내가 처음 샀던 마라톤 타자기가 있다
나는 다음날도 인천으로 가지 못했다 왜 자꾸만 나의 발걸음을 붙잡는 것일까 왜 자꾸만 나의 인천행을 막는 것일까 나의 발걸음을 붙잡는 것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용산과 서울역과 남대문과 남대문 시장과 명동은 오늘도 여전히 잘 있었다 내가 하숙했던 남산동 그 낡은 집은 헐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 큰 건물이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퍼시픽호텔 맞은편에 공사용 벽이 세워져 있었다 그 좁고 낡은 집에서 나는 대학 1학년을 보냈다 그리고 2학년 때에는 백마역 부근에서 자취를 했다 그때는 그 백마역이 참 인기가 많았었다
나는 내가 다녔던 학교에도 가 보았다 드라마센터에서, 푸르른 날에 공연 마지막 날이었다 강의실은 이미 레스토랑이 되어 있었고 도서관과 매점은 없어져 버렸다
교실이 좁아서 야외수업을 자주 하던 남산으로 갔다 그때의 그 목소리들이 다시 들리는 듯했다 특히 나는 학교 때나 지금이나 와룡정이 좋다 와룡묘가 좋다 오늘은 안에 들어가 참배까지 하고 나왔다 특히 나는 입구의 계단이 좋다 오늘은 공사 중이었다 공사 중 이어도 나는 좋다 나는 이 계단에 특히 자주 와서 혼자 놀았었다 심장병 환자였던 내가, 내가 계단을 가장 무서워하던 시절에도 나는 이 계단만은 자주 왔었다
어쩌면 조금 불편한 것들이 나는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나의 길도 이 계단과 같을 것이다 안내문을 오늘 자세히 읽으니 와룡묘라고 적혀 있다 나는 와룡정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와룡정이면 어떻고 와룡묘이면 어떠랴 어차피 같은 말 아니더냐
남산 순환로에 꽃도 많고 사람들도 많다
나는 밤마다 이 남산 순환로를 따라 남산타워까지 홀로 걸어서 올라 다녔다 남산동에 살았던 나는 순전히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날마다 홀로 쓰러져야만 했던 나는 나의 심장병을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나는 참 독한 놈이었다
선천성 심장병 환자였던 나는 가족들에게 들킬까 봐 중학교만 졸업하고 서울까지 멀리 가출을 하였고 서울로의 고등학교 진학은 순전히 합법적인 나의 가출이었다
나는 내가 아파 쓰러지는 것보다 나의 병이 들통 나 부모님들이 걱정하는 것이 더욱 두려웠던 것이다 우리 집안 형편에 도저히 심장병 수술은 엄두를 못 내는 것이었고 아픈 자식을 수술시키지 못하는 부모님의 안타깝게 흐느끼고 계실 부모님의 모습이 너무나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순환로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때는 주로 밤에 남산을 올랐다 지금은 길이 더 좋아져 있다 올라 다니는 사람들도 더 많아졌다
우리들의 서울은 오늘도 안녕하다 그런데 정말로 안녕한 것일까? 정말로 안녕하면 좋겠다 와, 이제는 전기버스도 보인다 서울투어 버스도 보인다
장미와 카네이션이 나란히 있다 참 아름답다 꽃도 예쁘고 사람들도 참 예쁘다 그런데 서둘러 내려가지 않으면 약속 시간에 늦겠다 남산타워는 오늘도 여전히 잘 발기되어 있다 하늘과 땅은 오늘도 이렇게 사랑을 잘 나누고 있다 정자에도 역시 사람들이 많다 나뭇가지가 때로는 거웃처럼 보인다 벌써 단풍이 든 반역자들도 보인다
남산 한옥 마을 쪽으로 내려와 동국대학도 잠시 들러보았다 잘 타고 올라가던 나의 꿈이 멈추어버린 곳이다 인천에서 만난 그 붉은여우 한 마리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충무로에서 지하철을 탔다 안국동이 참 가깝다 너무 일찍 도착하여 인사동 거리에서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먹은 청국장이 참 좋았다 청국장 맛이 그야말로 어머니 맛이었다
오늘은 꼭 인천에 가야 한다 오늘 가지 않으면 영영 가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쉽게 인천에 갈 수 없을 것만 같다 인천행 전철에 몸을 실었다 인천에 계시는 형에게 전화까지 했다 주안역에서 내려 인하대 후문 가는 버스를 타고 성광교회 앞에서 내리면 된다고 했다
왜 자꾸만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철이 용산역에서 서고 말았다
어떻게 뛰어들었는지 어떤 청년이 전철에 치어 자살을 한 것이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나의 마음은 갑자기 어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나의 가장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어머니의 자살은 나의 가장 크고 헤어나기 힘든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전철은 다시 출발하였다 나는 이미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인천으로 가야만 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용산역에서 전라산을 타고 있었다 전라선을 타고 어머니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영등포역에 도착하자 나도 모르게 전철에서 몸이 빠져나와 있었다 나는 곧바로 전라선으로 갈아타고 말았다 마음이 먼저 타고 있던 전라선 열차에 몸까지 타고 말았다 곡성행 마지막 열차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길을 간다
두엄자리 곁에 세워진 아버지의
낡은 지게를 지고 저물녘을 간다
참깨 베러 가신 어머니의 산밭으로
늦은 마중을 간다 오랜만에
바람을 비껴 여름 한쪽 끝으로
산길을 오른다
노을이 차마 곱게 익는다
일찍부터 외항선을 탄 만수
뱃사람이 된 만수네가 새로 장만한
논을 바라보며 들길을 간다
일곱 번씩이나 떨어지고도 다시
행정고시공부를 시작했다는 현길이,
이미 기울어 버린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팔아넘긴 논배미를 지나
쓸쓸하게 걸어간다 새를 쫓는 깡통소리와
반짝이는 반짝이의 마음들이 노을 속으로
새를 날려 보내며 또 내일을 염려하는 가슴을
가다듬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허수아비는
쓰러지지 않고 동그랗게 질린 비닐 얼굴들이
하늘까지 닿으려는 마음으로 솟아오르곤 했다
콩밭으로 바람이 기어들어가고 밤은
들쥐처럼 숨어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와 산길을 내려온다 가끔
고개 치켜드는 벼 포기 사이로 추억들이
발소리를 숨죽이며 기어 나왔다 나는 참깨를 지고
어머니는 토란대를 이고 오셨다 가슴 조인
달빛이 풀어지고 우리는 하염없이 걸어 내려온다
― 어머니, 저 이제 시인이 되었어요
― 그래, 시인이 뭣 허는 것이다냐
― 예, 지금까지 제가 되고 싶었던 것이에요
밤낮을 밤으로만 지내면서 말이에요
― 그러냐, 그럼 이제 취직이 됐단 말이냐
― 아니에요 어머니 그런 것이 아니에요
― 그럼, 시인이 뭣한 것인지 그러냐
오랜만에 네가 웃기까지 하고 말이여
― 예, 앞으로
우리들의 고향을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노래? 그럼 인재 텔레비전에도 나온다냐
― 아니에요 어머니, 그런 게 아니에요
― 그러면, 시인 한 달 월급이 월마나 된다냐
먹고살 만한 직업이다냐
요즘 시상에는 돈이 최고더라
봐라, 만수는 돈 있승께 다들 걱정하는
장애도 쉽게 간다더라
돈 많은 이쁜 색시가 낼 모래 온다더라
― 어머니, 하지만 저는 그렇지를 못해요
앞으로 어머니를 팔지도 몰라요
앞으로 고향을 팔아먹을지도 몰라요
시인은 가난한 직업이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요
마음을 갈고닦아 영혼을 맑게 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더욱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우리들의 이야기가 들판 가득 출렁일 때 달빛은 우리가 걸어온 들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어머니, 저는 시가 무엇인지 모르는 어머니와 고향을 위하여 우리들의 생활을 팔아먹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땅의 눈물 같은 시 한 편으로 살고 싶습니다
― 배진성 「시인의 월급은 얼마나 된다냐」
전남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957번지
제가 중학생 시절까지 살았던 집이 있는 곳입니다
바로 집 앞에 삼기천(섬진강으로 이어짐)이 있고
징검다리가 있고
호남고속도로가 있고
제가 태어난 월경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오랫동안 이곳에 가지 못했습니다
도저히 갈 수 없었습니다
2013년 6월 3일
이제야 겨우 용기를 내어 갈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저를 가장 슬프게 하는 글입니다
이 글은 어머니의 마지막 글입니다
아마도 병원을 몰래 빠져나오셔서
고향집에서 농약을 마시고
그 농약이 온몸으로 퍼지는 순간에 쓰셨을 것입니다
신음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수건을 입에 물고
치아가 다 으스러지도록 입을 앙다물고 쓰신 듯합니다
자식인 저는 평생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사망 진단서 대신
시체 검안서를 읽으며 온 몸으로 울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2006년 2월 26일 20시 54분
2007년 04월분 전기요금 고지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께서 떠난 이후에도 전기는 한동안 들어왔나 봅니다
어머니는 머리카락이 엉덩이까지 내려왔었다고 하셨습니다
오빠와 언니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은 막내딸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딸막이라고 하셨습니다
맨 앞에 보이는 슬라브 건물은 오랫동안 구멍가게였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집도 없어서
빨랫비누, 세숫비누, 바늘, 동정, 검은 고무줄, 애기 고무 즐, 이태리 타울, 비누곽 등등
커다란 미원 박스에 생활용품들을 담아 이고 다니시며 팔아야만 했던
도붓장수 였습니다
그러다가 새마을운동 일환으로 마을 회관에 함께 지었던 구판장을 하다가
구판장을 못하게 되자
화장실 자리에 슬래브 집을 짓고 구멍가게를 하시다가
바로 그 가게 방에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집을 비워 방치해 두었더니
대문은 멀쩡한데
집 안의 물건들은 누군가 다 털어가 버렸습니다
빈 집에도 이렇게 새 이름표가 붙어 있습니다
옆집도 다 헐리고
쭈욱 늘어선 정자나무 무성한 놀이터였던 자리에
정자나무는 늙고 새로운 정자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정자에는 텔레비전까지 갖추어져 있습니다
가게 건물 옆
아래채 벽이 위험해 보입니다
아래채 옆
창고 벽은 이미 무너져 있습니다
빨리 정리를 해야 할 듯합니다
슬래브집 지붕에서 본 본채 지붕입니다
집터가 워낙 좁아서
마당이 너무 좁고
텃밭 없는 것이 흠입니다
슬래브집 지붕에서 본 정자 지붕입니다
구멍가게 지붕과 정자 지붕이 닿을 듯 가깝습니다
가게 건물 내부 모습입니다
앞에 보이는 작은 탁자는
가게방 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는 술상입니다
주 안주는 김치와 기름소금이었습니다
주로 아버님께서 술을 마시던 술상입니다
저물녘이면 늘
아버님의 얼굴로 붉은 해가 떠올랐습니다
다행히 술상은 돈이 되지 않았는지
고물 장수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가게 바닥에 전기요금 고지서가 있었습니다
형제들도 저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1년 넘게 전기 들어오다가 지쳐서 끊겼나 봅니다
광주에 살고 계신 누나와 함께 집을 둘러보고 알아본 결과
아직도 집은 어머니 앞으로 있었습니다
누나와 형님들과 동생에게 연락하니 나에게 관리를 하라고 합니다
그냥 아무 조건 없이 내 앞으로 상속을 하고 내 마음대로 쓰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큰 형님 앞으로 가야 할 것 같아 큰 형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냥 저에게 쓰라고 합니다
그래서 형제들 모임 총무인 막내와 의논한 결과
부모님을 위한 형제들 모임 통장으로 5백만 원 입금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형님들과 누나들은 돈 받는 것을 극구 사양하시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저도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것 같습니다
곡성군청에 갔습니다
곡성군 기차마을에서 장미축제가 있었습니다
22세기 약속의 땅 곡성군
기차마을이 있는 곡성군
심청이 마을과 섬진강이 있는 곡성군
여기에서 저는 다시 문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너무 멀리 돌아서 온 것 같습니다
곡성군청이 정겹게 느껴집니다
등기소까지 들러 왔습니다
서류 정리는 천천히 해도 된다고 합니다
아마도 저번 태풍에 창고 담장이 무너진 것 같습니다
집터는 좁아도 최대한 활용한 집이기 때문에
안쪽 내부는 상당히 넓습니다
방이 4개 이상 나올 것입니다
천천히 수리할 생각입니다
가게방은 심야전기 난방설비가 잘 되어 있어
전기공급만 재개되면 바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방을 먼저 정리하고 도배해서 사용하면서
나머지도 고치면서 글을 쓸 생각입니다
아마도 저는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창작 작업실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빌려줄 생각입니다
또 누가 압니까
이 작은 창작 작업실에서 세계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지......,
주위 여건으로 보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좋은 인연을 꿈꾸어 봅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정자도 잘만 활용하면 좋을 듯합니다
저 뒤에 보이는 분들은 누나와 매형입니다
정자 바로 앞으로 삼기천이 흐르고
옛날에는 흐르는 물도 많아서 징검다리가 있었습니다
징검다리 건너
뚝 너머에 우리 집이 있었습니다
뚝을 넘으면 월경리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어릴 때부터 오리를 많이 길렀습니다
제 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징검다리의 주요 배경이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뚝이 넘쳐 회관으로 피난을 가야만 했습니다
불가피하게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다음에 혹시 사용하시고 싶은 분들은 저에게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비밀번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곡성 창작실 상머슴 배진성 연락처 : 010-2693-5597
대학로
서울대학병원
낙산
남산동
남산
동국대학
한옥마을
용산역
용산역 자살
영등포역
곡성역
압록
고향
나는 그동안 세상에 없었다
나는 참 오랫동안 잘도 죽어 있었구나
나는 참 오랫동안 죽음을 잘도 살았구나
시 쓰는 나무를 알고 있다
전생에 방랑시인이었다는
그는
이번 생에는
딱 한 편만 쓰겠다고
어느 깊은 밤 나에게 말했다
봄부터 부지런히 시를 쓰다가
깊은 가슴속에
해마다
딱 한 줄씩만 남기고
아낌없이
낙엽으로
멀리 날려서 보낸다고 했다
사람들은 '제주 왕따 나무'라고 말한다. '나 홀로 나무'라고 말한다. '독야청청 나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시 쓰는 나무'라고 말한다. 내가 아는 시인들 중에 홀로 사는 시인들이 있다. 그들은 참 아름다운 시인들이 많다. 그 대표적인 시인을 나는 알고 있다. 이병률 시인, 박남준 시인, 김주대 시인을 알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인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내가 아직 모르고 있는 더 많은 시인들이 있을 것이다. 황인숙 시인 등의 여성 시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자기 관리를 참으로 잘하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이 부럽다. 그들의 순수함과 치열함이 부럽다. 시를 향한 순수한 사랑이 한없이 부러울 때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가 있다. 평화로 중간쯤에 있다. 나는 제주시와 화순을 왕래하며 자주 그 나무를 찾아간다. 주로 제주시에서 화순 가는 길에 들러보곤 한다. 새별오름 들렀다가 만나러 가는 경우가 많다. 제주시에서 화순으로 가는 평화로 오른쪽에 있다. 그리스 신화 박물관과 트릭아이 미술관 입구에서 우회전하여 광산로를 따라가면 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반대쪽, 평화로 왼쪽에는 금악휴게소와 제주 악어 타운이 있다) 따로 간판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나도 잘 찾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산 쪽이 아니라 바다 쪽으로 가야만 한다. 성이시돌목장 비육사가 있는 초지 안에 있다. 새별오름과 이달 오름을 배경으로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시선을 주면서 가야만 보일 것이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기 때문에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를 보고 쉽게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곳은 사유지이며 사료용 풀을 키우는 초지여서, 옛날에는 가시철망을 쳐서 출입을 막았으나 사람들이 워낙 많이 찾아오는 바람에 요즘에는 개방한 상태여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알려지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요즘에는 그 나무가 많이 시달리고 있다. 워낙 많은 발자국들 때문에 흙이 파여서 뿌리가 많이 드러나서 내 마음이 많이 아프다. 그래도 어쩌랴. 좋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막을 수도 없지 않겠는가? 요즘에는 웨딩촬영뿐만 아니라 드론을 활용한 항공촬영도 많이 하고 있어서 귀까지 따가울 정도가 되었다. 사람들은 무엇 하나라도 그냥 놔두지 않는다. 유명인사가 된 시인들도 어쩌면 저 시 쓰는 나무처럼 이제는 인간들이 귀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늘 조심스럽다.
시 쓰는 이 나무는 머귀나무다. 이달 오름과 새별오름을 배경으로 거느릴 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나는 겨울나무를 좋아한다. 활엽수인 이 나무는 겨울에 몸을 크게 한 번 바꾼다. 모래시계처럼 제 자신을 크게 한 번 뒤집는다. 그렇게 뿌리를 하늘에 내린다. 하늘의 별빛과 달빛을 빨아들여 땅 속에 피어 있을 잎들에게 젖을 물린다. 가을에 땅 속으로 이사를 간 잎들은 별빛과 달빛을 빨아먹으며 새로운 봄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귀 기울여 자세히 들어보면 잎들이 땅속에서 잠꼬대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젖을 빨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린 어린것들이 젖꼭지를 빨다가 손가락을 빨다가 꿈속에서도 우물우물하면서 잠꼬대인지 숨결소리인지 모르게 낮게 낮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잎은 가죽나무처럼 작은 잎이 여럿 모인 겹잎이며 잎의 크기가 큰 편에 속한다. 육지에서 어머니의 장례 때 오동나무로 상장대를 사용한 것과 달리 제주에서는 오동나무가 귀해서 머귀나무로 대신 사용했다고 한다. 장례 때 쓰는 지팡이를 육지에서는 상장대라고 하지만 제주에서는 이름도 방장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옛 문헌에 따르면 머귀나무는 오동나무의 옛 이름으로 기록되면서 머귀나무를 사용한 것도 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머귀나무에는 굵은 가시가 박혀 있는데 이런 가시의 고통을 느끼며 어머니를 생각하라는 의미가 있다고도 말한다.
8월이면 머귀나무도 꽃이 핀다. 황백색 꽃이 원뿔 모양으로 자잘하게 모여서 핀다. 잎자루와 줄기에 난 가시는 자라면서 가시의 날카로움은 없어지고 코르크 부분만 남아있게 된다. 가을이 되면 까만 씨가 익어가는데 산초나무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향기를 가지고 있다. 머귀나무 잎은 감기와 말라리아 처방약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나는 오늘 이병률 시인의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을 다시 읽으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 신춘문예에 대하여 생각하고, 문학은 우열을 가리는 운동경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하여 생각하고, 반동(反動)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성장에 대하여 생각하고...., "보통의 사람은 남이 만든 파도에 몸을 싣지만, 특별한 사람은 내가 만든 파도에 다른 많은 사람들을 태운다."라고 말하는 이병률 시인과 그의 문장들을 생각하며 김주대 시인의 방송을 시청한다. 나는 김주대 시인의 시와 문인화를 좋아한다.
나는 평생 좋은 아들이 되지 못했다
나는 평생 좋은 아버지 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나는 집을 떠나 길이 된다
너는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서
감옥 속에서 영원히 사는구나
이 세상은 그저 춤추는 바람
이 세상은 그저 구름의 허공
바람은 바람처럼 살아라 하고
허공은 허공처럼 살아라 하네
마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그렇다
어제는 아들 때문에 지옥이더니
오늘은 아들 때문에 천국이구나
사람들은 나를 왕따 나무라고 합니다
나는 오늘도 나의 고도를 기다립니다
나의 소망은 발자국 소리가 아닙니다
* 홀로 서 있는 저 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든든한 배경으로 앉아 있는 이달오름과 새별오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 이달오름과 새별오름이 흉물들로 가려질 것만 같다. 지금 한창 이달오름과 새별오름 앞으로 대규모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내가 기다리는 고도는 오지 않고 .....,
* 이달오름은 두 개의 산(이=2, 달=높다, 산의 고어)이라는 뜻이다. 이달오름은 두 개의 봉우리를 아우르는 오름이다. 두 개의 봉우리 중 남쪽에 있는 봉우리를 이달봉, 북쪽에 있는 봉우리를 이달이촛대봉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홀로 서 있는 나무에서 보면 하나로 보인다.
오늘도 나는 바람 속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를 쓰는 나무를 알고 있다
전생에 방랑시인이었다는 그는
이번 생에는
딱 한 편만 쓰겠다고
어느 깊은 밤 나에게 말했다
봄부터 부지런히 시를 썼다가
깊은 가슴속에
해마다 딱 한 줄씩만 남기고
아낌없이 모두
낙엽으로 날려서 보낸다고 하였다
새별오름은 참 앞과 뒤가 다르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참 많이 다르다. 그리고 나는 솔직하게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잘 모른다. 검게 탄 부분이 앞인지, 불길이 아직 닿지 않은 잡목 숲이 앞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한라산이 보면 검은 얼굴이 앞이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푸른 바람이 보면 검은 얼굴이 뒤가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살아서 나란히 눕는 것보다 죽어서 나란히 눕기 위하여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어서 한 번 나란히 누우면 쉽게 일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자꾸만 묘지들이 눈에 잘 들어온다. 좋은 집 보다 좋은 명당자리가 더 눈에 잘 들어온다. 그리고 며칠 전에 보았던 불길이 내 몸을 덮친다. 화면 가득 타올랐던 들불이 내 마음속까지 옮겨붙는다. 나도 한 번쯤 그렇게 뜨겁게 타오를 수 있을까?
우리들은 잘 눕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꼭 뜨겁게 잘 타올라야만 하리라. 죽어서 더욱 오래도록 나란히 눕기 위하여 더욱 뜨겁게 사랑해야만 하리라. 살아서 사랑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나란히 누울 수 없으리라. 우리들의 가장 긴 잠을 외롭게 홀로 잠들게 할 수는 없으리라.
새별오름에는 앞과 뒤의 경계에 소화전들이 설치되어 있다. 정상 부근의 소화전함은 바람 때문에 아예 누워 있지만 그래도 뜨거우면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으리라. 축제 초기에는 등에 지고 사용하는 수동 분무기를 사용하더니 축제가 정착되면서 정상까지 아예 소화전을 설치하였다. 오름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떨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화재 예방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닐까?
나는 새별오름에 자주 온다. 평화로 중간쯤에 있어서 오며 가며 자주 들르는 나의 휴게소 역할을 한다. 올 때마다 참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자꾸만 곁에 있는 이달오름과 나 홀로 나무에 눈길이 가기 시작한다. 새별오름은 부드러운 곡선이 아름다운데 이달오름은 뾰족한 직선이 위태롭게 아름답다. 더구나 푸른 초원에 홀로 서 있는 고도를 기다리는 나무의 배경이 되어주는 이 두 오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달오름과 새별오름은 어쩌면 우리들의 두 가슴일 것이다. 어쩌면 죽어서도 나란히 눕고 싶은 쌍봉일 것이다. 나란히 누워서 가끔 손이라도 잡아보는 그런 사이일 것이다. 그 마주 잡은 손에서 태어난 나무라니! 어찌 이 외로운 나무와 오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 목장 주인의 마음은 어떨까? 출입금지 표지가 자꾸만 떨어지고 푸른 초원에 알 수 없는 발자국들이 길을 만드는 것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며 지켜보고 있을까?
시 쓰는 나무 만나는 동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