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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남조선의 학교

외딴 행성에 혼자 떨어졌다.

by 예담



아줌마는 휙 돌아서서 교문을 빠져나갔고 저만치 사라져 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학교로 들어섰다. 눈에 보이는 학교는 더욱 커 보여 자꾸만 위축되는듯한 기분이었다. 다행인지 본관 앞에는 2학년 6반과 7반이 옆으로 줄지어 있었다. 교복 끝자락을 붙잡고 주먹 쥔 손 사이사이에 맺힌 땀을 치맛자락에 닦았다. 생전 모르는 남조선 애들과 같이 학교를 다닌다니.


" 어? 안녕."


교실문을 열고 한 여자가 튀어나왔다. 엉거주춤 서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여자는 빙긋이 웃었다.


" 오늘 전학 온 류영애 맞지?"


”네. 맞습네다.“


마치 외딴 행성에 혼자 떨어져 있는 기분이라 내 몸은 고장 난 듯 뻣뻣했다.


"어서 들어와, 친구들이랑 인사해야지."


아이들이 내내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신기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수군거렸다. 은주가 꿈처럼 와서 날 구원해 주면 좋겠다. 예상은 했지만 이런 눈빛은 내게 너무 버거웠다. 고개를 숙인 채 자리로 걸어가 납작하게 엎드렸다.


아이들의 말소리가 아득해지며 희미해져 갈 때 한 목소리가 나를 흔들며 불렀다. 납작하게 축 처진 몸을 천천히 일으키고 내 앞에 서있는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안녕 나는 지수빈이야 "


또랑또랑하게 청아한 목소리가 내 앞에서 들린다. 설마 나에게 말을 건건가?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의 여자애는 내 얼굴을 길게 응시했다. 괜히 지기 싫어서 나도 눈을 쳐다보았다. 검은 눈동자와 하얀 피부가 대비되어 참 예쁜 아이였다.


"나 우리 반 반장이야. 앞으로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봐줘. "


"기래."


꽉 잠겨버린 목소리로 그 아이의 말에 순순히 답했다.


"너 어디에 살아?"


"왜 묻는 거이니?"


" 그냥 궁금해서."


"문화주택 같은 곳."


내가 며칠 동안 지냈던 곳을 기억해 내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집이 아니니 확실하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아줌마 아저씨의 집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나에게 그 어디보다 안정감과 평온함을 준다. 그나저나 아저씨와 아줌마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아 연립주택이 있는 골목 말하는구나. 나는 아파트가 모여있는 학교 앞 동네에 살아. 가는 길 비슷하네. 같이 갈래? 학원 다녀?"


웃음기 섞인 말투로 나를 재촉하는 아이가 불편하다. 게다가 내가 알지 못하는 단어 투성이라 제대로 된 답을 할 수도 없었다. 은주가 아닌 누군가와의 대화는 익숙하지가 않아서 불편하다. 누군가를 받아주면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같이 할 거리를 찾고 웃어야 하기에 은주가 아닌 다른 동무와 친해진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것을 꾹 참고 담담하게 쳐다보았다.


"북한은 눈이 많이 내리지?"


아무래도 이 아이는 나와 대화를 하려고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 같다. 저런 질문을 하다니. 눈이 펑펑 내리면 고아원 앞의 눈을 쓸어야 했던 시린 날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눈이 많이 안 오거든. 부럽다. 눈 오면 하얗고 예쁘잖아. "


”거 통일되면 가서 확인해 보라."


”응???"


나의 대답에 반장은 웃음을 터뜨렸다. 깔깔 웃으며 친근한 듯 나의 등을 쳤다. 웃기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직접 가보면 눈의 아름다움을 느낄 새도 없이 눈을 치우는 노동을 과제로 해야 해서 힘들다는 뜻이었는데, 역시 살아온 처지가 다르니 하나의 문장에서도 느끼는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반장, 그러니까 지수빈은 박장대소를 하더니 곧 어디를 가야 한다며 교실에서 나갔다. 나로선 잘된 일이었다. 다시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처음 말을 걸었던 지수빈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내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를 해주셨다. 영어 선생님은 두꺼운 영어사전까지 선물해 주시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러 오라고 하셨다.


내가 탈북민이라는 사실은 학교 전체에 퍼져 있다. 그 시선이 갈수록 따갑고 버거워졌다. 툭하면 내 이야기를 꺼내고 얼굴과 행동을 찬찬히 뜯어보는 아이들에게 나는 동물원의 원숭이였다. 그것이 싫어서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있던 나를 아무도 공감해보려 하지 않는다.


엎드려 있는 나에게 공부가 어려워서 힘드냐고 가르쳐주겠다고 잘난 척을 하는 아이들은 여럿 있었다. 그중 한 아이는 이번 달에 표창장을 받았다. 적응이 힘든 탈북민을 잘 도와줬다고 선생님이 추천했다고 한다. 나는 그 아이에게 받은 도움이 없다. 학교 밖에서 지수빈에게 받은 도움은 수도 없이 많지만 말이다. 내내 나에게 말을 걸었던 그 아이들의 특징은 항상 선생님이 교실에 있을 때만 와서 말을 거는 것이기에 구별하기 아주 쉬웠다. 탐욕이 섞인 친절은 와닿지 않을뿐더러 쉽게 정체가 탄로 나게 마련이다.


"지우야, 숙제 중에 모르는 거 있으면 꺼내봐. 내가 가르쳐 줄게. "


또 시작이다. 담임이 그런 광경을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나는 벌떡 상체를 세워 앉고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타의 모범이 된다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계속 엎드려 있을 줄 알고 몇 번 말을 걸다가 갈 작정으로 가벼운 걸음을 했는데 무거워져서 난처한 기색이다. 하지만 생긋 웃으며 큰소리로 다시 말을 건넨다.


"영애야, 너 숙제 못했지? 난 다했으니까 가르쳐줄게."


이 아이의 문제를 짚어주겠다.


첫 번째 말속에 늘 자신의 잘난 점을 끼워 넣는다.

두 번째 자기 맘대로 상대를 평가하며 낮춘다.

세 번째 선생님만 교실에 오면 부리나케 내 옆에 와서 도와준다고 난리다.

네 번째 무리 지어서 다니며 위화감을 조성한다.

다섯 번째 아이들이 먹지 않아서 미지근하고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흰 우유를 한데 모아서 내 자리에 가져다 놓고 유시은 무리와 함께 비웃으며 말한다. 북한에서 많이 못 먹었을 테니 실컷 먹으라고.


이제 대답을 해줘야겠다.


"숙제를 어케 가르쳐줄거인데?"


"수학이랑 영어 너 모르잖아. 내가 가르쳐줄게 난 다했어."


"모르면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되는 거이고 숙제를 하든 안 하든 고거이 내 자유 아니갔어? 내래 남조선학교는 자유로울지 알았는데 동무 덕분에 북조선보다 더 속 시끄럽다. 동무를 존중하는 법도 모르는 아한테 왜 상장을 주는지도 모르겄고 말이다. "


삽시간에 시끌벅적하던 쉬는 시간이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못 본척하며 서둘러 나가고 있다. 종이 울리며 과학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수업이 시작되자 김가을은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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