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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쓰는 이다솜 Nov 12. 2020

자발적 전업주부가 되다


1989년 밀레니얼 세대로 태어나 정치학을 전공했다. 지적 허영이 많아 동아리, 스터디 등에서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영화는 1천 편을 넘게 본 ‘덕후’ 수준이다. 뉴미디어 회사에서 7년 간 에디터로 근무했다. 여러 매체에 글을 실었다. 국내외로 장단기 여행을 다녔다.


지금은 집에서 홀로 10개월 아기를 돌보는 전업주부다. ‘어쩔 수 없구나’, ‘안타깝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전업주부를 택했다. 사회생활이나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았냐고? 전혀. 즐겁게 일했다.


자녀가 성장할 때까지 몇 년 간 전업주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20대 초반부터 했다. 인간 심리에 대한 관심으로 관련 교양, 다큐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여러 편 보면서 영유아기가 생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됐다. 아이를 낳으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할 지라도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충분한 사랑을 주고 올바르게 훈육하고 싶었다. 또, 사랑하는 배우자, 자녀와 따뜻한 가정을 꾸리는 일이 가치 있게 여겨졌다. 다행히 10년 연애 끝에 결혼한 남편도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어 이런 생각을 적극 지지해 주었다.




엄마가 된 지 10개월, 녹록지 않다. 육아가 고되냐고? 가장 힘들던 시기의 회사 생활보다 어렵게 느껴지긴 한다. 그런데 예상보다 더 재밌고 보람차다. 이렇게 힘들지 몰랐던 것처럼, 이렇게 행복할지도 몰랐다.


정말 힘든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사회 또는 스스로가 전업주부의 삶을 가치 절하하고 무시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남편에게 기생해 애나 보는 주제에”, “육아만큼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왜 불평이냐” 따위의 글이 넘쳐 난다. 더 화가 나는 댓글은 “전업주부로 살려고 힘들게 공부했냐, 한심하다”라거나 “애나 보면서 살 바엔 비혼 한다”는 내용이다. 전업주부의 삶과 육아의 가치가 가혹하리만치 후려쳐진다. 이런 사회에서 살다 보면 가끔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전업주부를 택한 일이 잘한 일인가’ 혼란스러워진다.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됐는지 알고 있다. 사회적, 물질적 성공이 최고라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명예롭지도 돈이 되지도 않는, 주로 여성이 가정에서 맡아 온 육아와 가사는 줄곧 무시됐다. 다른 한편으로, 밀레니얼 세대는 자녀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한 부모, 조부모 세대를 보고 자라면서 개인적 자립과 여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에만 집중하게 됐다. 과정이 고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 자녀와 함께 할 때만 만들어 갈 수 있는 행복에 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게 됐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결혼해 아기를 낳고 기르는 일, 심지어 자녀의 양육에 집중하는 삶이 존중될 리 없다. 고생을 자처하는 바보처럼 여겨지게 됐다.


당연히 결혼과 출산을 꼭 해야 한다거나 아이를 키우며 사는 인생이 정답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다만, 이러한 삶의 방식이 가치 없고 하찮게 여겨지는 현실이 씁쓸했다.



     

몇 년간 전업주부로 살려고 했던 이유를 되짚어 봤다.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진정 바라는 인생에 대한 충분한 고민 끝에 원하는 삶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육아와 가사를 책임지는 역할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밀레니얼 세대의 어떤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긴 숙고 끝에 능동적으로 이 삶을 선택했다. 남녀 모두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했고, 여성은 무조건 집에서 아이를 길러야 했던 과거와 현재는 다르기 때문이다.


전업주부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나아지게 될까? 잘 모르겠다. 그저 이 삶을 선택했기에 후회가 적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정한 과정처럼 이전 세대와 비슷한 듯 다른, 밀레니얼 엄마의 요즘 육아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육아를 하는 동시에 내 삶을 살뜰히 꾸려가기 위한 고군분투 라이프스타일을 잘 담아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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