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건 마음을 선명하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소중한 것을 제때, 얼마나 귀한지 알게 해준다. 스쳐 지나간 찰나를 글 속에 녹여내다 대상을 얼마나 아끼는지, 또는 상대로부터 얼마나 아낌 받고 있는지 깨닫는 순간이 쌓이며 글은 일상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렇기에 글의 재료인 글감을 고르는 건 무의식적으로 대상을 뚜렷하게 남기겠다는 의지이자, 동시에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초창기의 글감은 가족이었다. 휴학하고 고향에 머무르던 시기였는데, 글을 쓴다기보다 기록을 남긴다는 게 더 적절한 묘사일 것이다. 눈을 뜨면 들려오는 엄마의 장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경상도 사투리로 싸우듯 주고받는 애정, 생강차를 마셔보라는 꾸짖음 속에 자리한 챙김, 베란다 밖으로 떨어진 손녀 양말 한 짝을 가지러 가는 할머니의 번거로움을 빼곡히 담았다.
복학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사회 초년생이 되고, 한 번의 이직을 하는 동안 멀어졌던 글과 가까워진 건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활동을 하면서였다. 사진과 글을 통해 소통하게 되었고, 혼란스러웠던 이십 대 후반이었기에 글의 재료는 꽤 자주 슬픔이 되었다. 털어놓을 곳이 없어 뱉어내듯 담아내곤 했다.
그리고 지금은 마음이 가는 도처의 모든 것들을 담는다. 생화를 가꾸다 가시에 베인 이야기, 특별한 것 없던 날 살랑거리는 소라색 원피스를 입고 다니다 느낀 점, 동네 호수 앞에 돗자리를 펴고 노을을 볼 때 모르는 강아지가 한참 머물렀던 일처럼 아주 일상적인 것들이다. 소소하지만 나를 감탄하게 만들던 순간,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알려주던 농도 짙은 시공간을 글에 녹여낸다.
아무도 시키지 않지만 사소한 것도 구태여 기록을 지속할 수 있는 건 오히려 무엇을 가져다줄지 지금은 잘 몰라서다. 휴학생 때의 글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먼 곳으로 보내드린 후에도 기록 속에서 두 분을 생생하게 마주하게 해주었다. 있는 그대로 슬픔을 담았던 글 아래에는 낯선 분들의 위로가 빼곡히 쌓여 그때의 힘듦을 어루만졌다. 쓰는 순간에 기대한 적 없는 선물이 돌아왔기에, 오늘도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재료로 삼아 알맞은 표현을 골라 글 속에 익히고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