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면 친정에 가서 일주일가량 머물다가 온다. 자연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마당에 작은 캠핑장을 꾸며준다. 아이는 눈만 뜨면 밖으로 나간다. 강아지 바리와 산책을 하고 잠자리채를 들고 무슨 곤충이든 잡아야 집으로 들어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남편은 마당에 그늘 막을 치고 풀장을 설치했다. 풀장에 물을 다 받기도 전에 아이는 그 안에 들어갔다. 지하수라 물이 차니 조금 따뜻해지면 들어가라고 타일러도 소용이 없다. 첨벙첨벙 아이가 튀기는 물이 찬데 아이는 잘도 논다.
우리 가족이 휴가를 왔다고 하니 작은집 숙모와 휴가 온 사촌들이 놀러 왔다. 놀러 왔다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집은 걸어서 2~3분 거리에 있고 자주 왕래를 하는 가족 같은 사이다. 숙모와 사촌 동생은 벌써 아침 일찍 들에서 일을 하고 온 모양이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고기를 구워 점심을 먹고, 더우면 풀장에 들어갔다가 추우면 나와서 햇볕을 쬐었다. 그것도 잠시 숙모와 사촌동생은 할 일이 있다고 하며, 저녁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서둘러 밭으로 갔다. 며칠 뒤에 고추를 딴다고 하더니 그 전에 다른 일들을 미리 해두려는 모양이었다.
농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할 일이 많다. 농사라는 것이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거둬들이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봄, 가을에 바쁜 것은 당연하고, 여름과 겨울이라고 마냥 할 일 없이 노는 것이 아니다. 작물마다 심는 시기와 거두는 시기가 달라,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파종 시기를 놓쳐 1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친정집은 농사라고 할 수준이 못 되고 텃밭 가꾸기 정도라 크게 바쁘지 않지만, 작은집들의 경우는 소도 키우고 농사도 지으니 삼촌과 숙모들이 늘 바쁘다.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고, 주중과 주말의 구분이 없으니 편할 거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는 것은 늘 일에 놓여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숙모들과 같은 농촌의 여성들은 바깥일과 함께 집안일에 대한 부담도 있다. 함께 들일을 갔다 와서 삼촌이 먼저 씻는 동안 부랴부랴 저녁을 차리고 있어도 칭찬은커녕, 배고프다고 빨리 준비하라는 성화에 서운하다는 말을 숙모들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내가 어릴 적에는 모내기 하거나 고추를 따는 날이면, 일하는 날이기도 했지만 마을 잔치 날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오늘은 이 집 고추 따는 날, 내일은 저 집 고추 따는 날, 돌아가며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모여 함께 일을 했다. 돈으로 노동을 사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노동으로 갚는 식이었다. 서로 날짜를 조율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먹고 마시며 일했다. 힘든 노동을 막걸리 한잔의 힘으로 버티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견뎌냈다. 나는 그때 생각을 하고 숙모의 수고를 덜어주고 싶어서, 고추 따는 날 일하는 사람들 밥을 준비해 주겠다고 했다.
“이제는 여기 모두 사람 사서 일해. 베트남 사람들이라 자기네들이 밥도 다 싸 오고. 우리도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니까 예전처럼 먹을 거 하는 부담은 없어.”
숙모는 이제 일하는 사람들 점심이며 참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농사일이 편해졌다고 했다. 세월이 흐른 만큼, 고향집 시골 풍경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국제결혼으로 이주해 온 결혼이주민들이 상당히 있고, 그들을 통해 모자라는 인력을 충당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농촌 인구가 줄고 젊은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는 추세다 보니 농촌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뉴스 기사 거리도 되지 않은 시대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아침에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밖에 나가보니, 친정집 옆의 논에 드론으로 약을 뿌리고 있었다. 이것 또한 뉴스에서나 보던 광경인데, 직접 눈으로 보니 농촌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구나 하고 실감했다.
그래도 나는 숙모네 고추 따는 날, 저녁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새벽에 일어나 일할 사람들을 태워 오고, 10시간 넘게 고추를 따야 하는데, 저녁밥까지 차려야하는 숙모의 수고를 덜어주고 싶었다. 함께 밭일하고 들어와도 농촌의 여자들은 씻고 편히 쉴 수 없다. 다시 가사노동을 해야 한다. 밥을 먹고 나서 뒷설거지도, 일복을 빨아야 하는 것도 모두 여자들의 몫이다. 물론 세상이 좋아져서 밥은 전기밥솥이,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지만 그것 또한 사람의 손이 가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저녁 준비를 대충 해 놓고, 거실에 앉아 잠시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니, 일하러 간 사람들이 돌아왔다. 삼촌은 소밥을 주고 숙모는 씻는 동안 나는 요리를 시작했다. 숙모는 일하고 와서 저녁을 차리지 않아도 되니 너무 좋다며, 내가 차린 밥상을 반갑게 받았다. 우리는 오삼불고기를 깻잎에 싸서 맛있게 먹고, 시원한 막걸리도 한 잔씩 했다. 너무 많이 바뀌어 버린 농촌의 풍경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가족들이 있고 친척들이 있어서 좋다. 숙모는 저녁을 해주어 고맙다며 설거지는 두고 가라고 했다. 막걸리 한잔의 취기가 돌아서일까, 숙모가 싸준 청계란과 호박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