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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balloon May 24. 2016

커리? 카레?

인도에 카레라는 음식은 없다!

커리? 카레?
어디에선가 카레 냄새가 솔솔 풍겨오면 입안 가득 침이 고이면서 흰밥 위로 
노란 카레가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며 스며드는 모양을 상상하게 된다. 
아~ 이 노랗고 얼얼한 행복감이란…… 
그런데 ‘카레’와 ‘커리’라는 명칭을 두고, 혹은 종주국이 어디냐를 두고 종종 논란이 재연된다. 왜? 우리가 즐겨 먹는 중국 음식인 자장면이 정작 중국에는 없듯 
카레 하면 떠오르는 나라 인도에는 카레라는 음식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국적 불분명의 요리, 
카레가 걸어온 세계화 과정 속으로 들어가봤다.

Curry

인도에 카레라는 음식은 없다!

카레는 인도가 고향이자 인도의 전통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앞서 말했듯 인도에는 카레라는 음식이 없다. 카레의 정식명칭은 커리(Curry)이며, 커리란 혼합 향신료인 마살라(Masala)를 넣어 만든 요리를 총칭한다. 인도 사람들은 연중 뜨거운 날씨를 이기려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음식을 먹는다. 향신료는 맵고 따뜻한 성질이 있어 음식이 부패하는 것을 막고 위장 기능을 좋게 해 식중독이나 설사 같은 여름철 질병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인도의 향신료 중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마살라다. 힌두어로 ‘양념’을 뜻하는 마살라는 하나의 향신료가 아니라 각종 향신료를 섞어 만든 종합 양념이다. 인도인은 우리가 된장을 먹듯 마살라를 만들어 먹는데, 얼마나 즐겨 먹으면 인도 영화를 ‘마살라 영화’라고 부를 정도다.


인도의 된장 ‘마살라’가 카레의 원조

인도인에게 마살라는 사 먹는 제품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각각의 향신료를 구입해 만들어 먹는 양념이다. 재래시장에 가면 마살라를 만드는 데 쓰이는 강황, 월계수, 소두구, 정향, 고수씨 등 수십 종의 향신료를 파는 상점을 볼 수 있다. 마살라는 정해진 제조법이 없다. 지역에 따라 또는 집집마다 마살라 제조법이 모두 다르다. 마치 우리가 고춧가루와 메주를 사다 고추장을 만들고 된장을 담그는 것과 같다. 맛과 만드는 비법 또한 천차만별이다. 오죽하면 ‘인구 12억의 나라 인도에는 12억 가지 맛의 마살라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까. 인도에서 마살라는 단순히 커리 요리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인도 음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심지어 음료에도 타서 먹는다. 한국사람이 김치 없이 못산다고 하는 것처럼 인도에선 마살라를 빼고 음식을 논할 수 없다.


‘커리’라는 단어의 탄생은 건더기?

그렇다면 커리라는 단어의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설이 있지만 인도 남부 타밀어인 ‘음식의 건더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여기에는 하나의 사건이 등장한다. 16, 17세기 인도에 온 포르투갈인이 수프를 얹은 듯한 걸쭉한 밥을 먹는 남인도인을 보고 그 음식이 무엇이냐 묻자 인도 사람은 수프의 건더기인 ‘내용물’을 묻는다고 생각하고 ‘카리’라고 대답한 것. 이에 포르투갈인들은 ‘카리’가 요리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도 남부 지방에서는 채소와 고기를 기름에 볶은 매콤한 요리를 ‘카릴’ 또는 ‘카리’라고 불렀는데 ‘커리’는 이를 ‘카리’로 부른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서로 다른 언어의 이해가 새로운 음식 이름을 탄생시킨 셈이다.

커리 세계화의 시작은 영국

인도의 마살라가 커리가 되는 구체적인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인도의 교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인도는 지리적 위치 탓에 선사시대부터 많은 이주민과 침략자의 발길이 이어졌고, 그 결과 어느 지역보다 퓨전 요리가 발달할 수 있었다. 마살라가 세계적인 음식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서양과의 교역 역사의 영향이 크다. 과거 서양에서 ‘향신료’는 검은 진주로 불렸다. 육식이 주식인 서양에서 향신료는 고기의 저장, 냄새 제거 등에 꼭 필요한 재료였다. 당시 향신료는 의학적으로도 효험이 있었기에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높은 가치를 지녔다. 때문에 향신료는 교역에서 언제나 필수 품목 1순위로 꼽혔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이 향신료 때문이었다. 이후 인도 커리는 17세기 식민지 시절 동인도회사를 통해 영국으로 건너갔고 이때부터 점차 온화한 유럽풍 조리법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초기 영국 상류사회에서만 즐기던 커리는 18세기 말 영국에 커리 파우더를 만드는 회사가 생기면서 전 유럽으로 퍼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전 세계로 보급되었다. 즉 인도에서 출발한 커리는 식민제국이었던 영국을 통해 세계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피시앤칩스를 누른 국민음식, 치킨티카마살라

영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 무엇일까? 많은 이가 피시앤칩스로 알고 있겠지만 땡~! 현재 영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음식은 치킨티카마살라다. 과거 인도에서 먹던 커리 맛을 잊지 못한 영국인들은 귀국 후에도 커리를 즐겼고, 일정한 비율로 조합해 만든 커리 파우더가 생산되면서 일반 가정에까지 급속도로 커리가

퍼져나갔다. 치킨티카마살라는 1960년대 영국의 인도 식당에서 태어났다. 인도 음식인 치킨티카(Chicken Tikka)가 영국인이 먹기에 퍽퍽해 따로 커리 소스를 주문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맵고 향이 강한 커리를 잘 먹지 못하는 영국인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순화시킨 커리 소스에 인도 전통 화덕인 탄두르에서 구운 닭고기를 넣고 보글보글 한 번 더 끓여낸 것. 즉 인도와 영국의 식문화가 섞여 치킨티카마살라라는 훌륭한 요리가 완성된 것이다. 2001년 영국 외무장관이었던 로빈 쿡은 치킨티카마살라야말로 진정한 영국의 국민요리이며 영국이 외부 영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는지에 대한 가장 완벽한 예라고 언급했다. 이제 치킨티카마살라는 영국 이외에 유럽 다른 나라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인도 커리로 사랑 받는다.


일본 자위대의 짬밥은 카레이지 말입니다!

커리를 우리가 알고 있는 ‘카레’로 둔갑시킨 것은 옆나라 일본이다. 인도와 영국만큼이나 카레를 사랑하는 일본은 인도에 이은 향신료 소비량 2위 국가다. 일본이 커리를 받아들인 때는 메이지 시대다. 혼슈 가나가와 현의 요코스카 항에 정박한 영국함대의 해군들이 커리를 먹는 것을 보고 일본 해군도 커리를 들여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카레라이스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메이지 유신 시절 서양 강대국에 꿀리지 않는 강력한 해군으로 거듭나기 위해 일본 해군은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이었던 영국을 모델로 삼았다. 군함, 전술은 물론 당시 영국 해군의 모든 것을 모방했다. 여기서 넘어온 것이 영국 해군의 식단 중 하나였던 카레와 빵이다. 그런데 밥과 국에 익숙한 병사들에게 빵은 많은 불만을 일으켰고, 대책으로 등장한 것이 밥에 카레를 부어서 먹는 카레라이스였다. 당시 한 해군 조리병이 묽은 카레에 밀가루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뒤 밥과 함께 내놓았는데 그 궁합이 아주 좋았던 것이다. 이후 카레라이스는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해군 정식 식단에 채택되었다. 지금도 일본의 해상자위대에는 매주 금요일 점심에 카레라이스를 먹는 전통이 남아 있다. 또 군항도시 요코스카는 해마다 11월에 ‘카레 페스티벌’을 개최하며, 1982년 일본학교영양사협의회는 1월 22일을 ‘카레의 날’로 정했다.

커리? 카레? 뭐가 다른고 하니

커리와 카레 중 어떤 표현이 맞는 것일까? 답부터 말하면 둘 다 맞다. 두 음식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인도식은 커리, 일본식은 카레라고 볼 수 있다. 커리와 카레의 맛 차이는 향신료와 밀가루가 만든다. 인도식 커리는 공기를 순식간에 점령할 만큼 수십 가지의 강한 향을 풍기는 커리 가루가 맛의 기본이다. 지역에 따라 요구르트, 쌀가루, 코코넛밀크, 녹두 등을 섞기는 해도 밀가루는 넣지 않는다.

일본식 카레는 카레루가 베이스다. 여기서 루(Roux)는 소스 등을 걸쭉하게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버터에 볶아 만든 것을 말한다. 카레루란 이 루와 커리 가루가 합쳐진 것. 우리가 쉽게 사먹는 즉석카레는 이 카레루에 각종 맛내기 조미료를 첨가한 것이다. 밀가루를 섞게 된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밥 문화’때문이다. 카레를 밥에 얹어 먹으려면 어느 정도 농도가 있어야 맛있고, 밀가루 때문에 끈기가 생겨 걸쭉해진다. 즉 향신료가 주인공인 커리는 빵을 찍어 먹기 좋고, 밀가루를 넣어 걸쭉하게 만든 카레는 밥에 부어 먹기 안성맞춤이다.


한국식 카레는?

올해 초 종영한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첫 회에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메뉴가 등장한다.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냄비 가득 만들어 먹던 음식, 카레다. 1980년대의 카레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들어 동네 사람들과 나눠먹는 음식이었다. 물론 슈퍼마켓에서 파는 카레 가루를 사다 만들어 먹었다. 그렇다면 한국에 카레가 전해진 시기는 언제일까? “라이스카레라는 서양음식 중에 하나는 지금은 우리 조선에서도 시골 궁촌이 아니면 어지간히 보급되어 있습니다. 찬이 없어도 겨울에는 춥다고 라이스카레를 만들어 먹게 되었습니다." 1935년 5월 3일자 <동아일보> ‘라이스카레에 대한 인식 부족’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위와 같은 대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국내에 카레가 들어온 것은 20세기 초였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말 서울과 주요 개항장에는 일본인 거류지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1903년 이후 일본에서 만든 카레 가루가 이곳을 통해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한다. 당시 카레라이스는 근대의 상징으로 모던보이와 모던걸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1960년대에 국내 한 식품업체가 개발한 인스턴트 카레는 간편식의 대명사가 됐다.


방심하다 허를 찔린 인도

1999년 인도인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건이 있었다. 일본의 한 식품회사가 카레 특허권을 출원했는데, 특허신청서에 자신들을 ‘손쉽게 조리할 수 있는 카레 요리 창안자’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인도는 ‘종주국 지위에 대한 정면 도전일 뿐 아니라 카레 제조방법에 대한 간섭’으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인디펜던트> 등 영국 언론도 브리태니커 사전을 인용해서 ‘카레는 인도 통치 시절 영국인이 인도 전통음식을 혼합해 만들었다’면서 사태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두 나라의 격렬한 대응 탓인지 이후 카레 특허권에 관한 소식은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강황, 이렇게 맛있는 만병통치약을 봤나!

인도인의 치매 발생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65세 이상의 치매 발병률이 1%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의 10분의 1, 미국의 4분의 1 수준이다. 또 세계보건기구(WHO)는 2002년 인도인의 암 발병이 미국의 7분의 1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인도인이 이처럼 건강한 비결은 무엇일까? 많은 연구가들은 그 이유를 인도인이 즐겨 먹는 커리에서 찾는다. 커리의 주재료인 강황에는 커큐민(Curcumin)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커큐민 성분이 뇌세포를 활성화시켜 노인성 치매 즉 알츠하이머를 예방하기 때문이다. 또한 암이 발생하거나 증식하는 것을 억제하고 항산화 작용으로 노화를 예방하며 몸 속 지방조직이 늘어나 살이 찌는 것을 막아주므로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더불어 염증이나 피부질환에 효과가 있어 현재도 암·신장·혈관계·관절·당뇨 등에 미치는 커리의 특효에 관해서 백방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맛도 좋은데 효과까지 좋은 만병통치약이 아닐 수 없다.


: Yellow trip 카카오스토리

https://story.kakao.com/ch/yellowtrip

글 이현주(여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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