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of One's Own 좋은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2023년 쓴 글입니다
런던에서 석사를 마치고 다시 직장을 찾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직? 취준? 의 늪에 갇혀있는 와중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집 문제가 터져 몇 달 후 홈리스가 될 위기까지 겹쳤고, 외에도 비자문제 등등 말 못 할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터지며 혼란의 연속이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에 등 떠밀려 한국행을 결정했고 유학을 마무리하며 이전부터 한 번쯤 가고 싶었던 스위스 여행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나는 런던의 굴레와 속박을 잠시 벗어던지고 스위스로 훌쩍 떠나버리기로 했다!
원래는 스위스 취리히에 일하는 홍콩에서 함께 교환학생을 했던 독일 친구 L을 볼 겸 짧은 3박 4일 정도로 계획을 했었는데, 막상 처음으로 가는 스위스니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알프스 산맥의 자연경관들도 보고 대자연을 맘껏 느끼고 싶어 취리히 이외에 어디를 갈까 앞뒤로 일정을 맞추고 관광에 필요한 시간을 이래저래 계산하니 어째 저째 8박 9일 여행이 되어버렸다.
나 혼자 여행 4박 + 그리고 친구와의 여행 4박. 그러고 나서는 알프스 산맥을 볼 수 있는 그린델발트에서 4박을 먼저 하고 친구가 있는 취리히에서 4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스위스 여행 계획
DAY1. 스위스 도착 → 그린델발트로 이동
DAY2 - 4. 그린델발트 숙박 및 혼자 여행
DAY5. 그린델발트 → 취리히 이동해 친구 만나기
DAY 6-8. 취리히 관광 및 친구 집 숙박
DAY 9. 취리히 → 런던 컴백
취리히에서는 친구집에서 신세를 질 예정이기 때문에 대충 계획이 정해지자 L에게 연락해 내 스위스 여행 일정을 통보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전하자마자 친구는 스위스행 비행기 티켓을 사주는 쿨함을 보여줬다! 2021년 연말에 친구는 나를 보러 런던행 티켓을 끊었다가 당시 영국의 심각한 오미크론 상황 때문에 티켓을 취소했는데 그때 환불대신 받은 200유로 상당의 영국 항공 바우처를 나 쓰라며 선뜻 내준 거다.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너가 영국 갈 때 써도 되잖아!” 하니까
“난 너 없으면 영국에 갈 이유가 없는걸?”
하는 이 김보성 뺨치는 의리를 어쩜 좋을까. 감동이었다. 나중에 취리히에서 재회한 후 친구의 연봉을 듣고 나니 이건 넘치는 연봉에서 나오는 여유였나 싶긴했지만 (2년 차 직장인인 친구의 연봉은 1억이 훌쩍 넘었다) 역시 돈 잘 버는 의리 좋은 친구 최고. 친구 덕분에 비행기 값을 세이브하며 여유롭고 더 기분 좋게 여행 계획 짜기를 착착 진행할 수 있었다.
런던에서 스위스까지 직항으로 갈 수 있는 도시는 바젤, 취리히, 제네바 (Genf) 이렇게 세 곳이다. 취리히는 어차피 마지막에 친구 보러 마지막에 갈 도시이니 제외하고, 제네바와 바젤 중에 어디에서 여행을 시작할지 고민하다가 바젤로 결정했다. 스위스 여행 첫날 숙소가 있는 그린델발트를 가는데 제네바와 바젤 둘 다 거의 비슷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린델발트를 가기 전에 잠깐이라도 관광하고 싶은 도시로 제네바보다는 바젤이 더 끌렸기 때문이다. 관광지로서는 바젤보단 제네바가 몇 수 위겠지만 바젤은 그 유명한 세계 최대 아트페어 “아트 바젤 (Art Basel)”이 열리는 상업 미술의 중심지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궁금한 곳이었고, 바젤에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갤러리가 하나 있어서 이번 기회에 한번 가보자 싶어 바젤로 결정했다. 하지만 바젤행 티켓을 끊은 후 유럽 여행 카페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젤엔 볼 게 없다, 바젤은 굳이 안 가도 된다고 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ㅜㅜㅜ 그 뒤엔 마음이 많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아 그냥 바젤 말고 제네바를 갈걸 그랬나'하는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끊어버린 티켓을 바꿀 순 없는 노릇이고, 당장 여행이 코앞이었기 때문에 후회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순 없었다. 출발 당일 아침 7시 비행기라 밤을 꼴딱 새고 새벽에 출발했다. 피카딜리 노선을 타고 런던 히쓰로 공항으로 가는데 텅 빈 새벽 지하철 안에서 피곤하지만 스위스를 간다는 설렘 때문에 졸리지는 않고, 동시에 긴장감이 주는 약간의 복통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짧은 비행 끝에 바젤에 도착!
2015년 이후 독일어권을 여행한 적 없어서 정말 오랜만에 독일어 표지판을 보면서 내가 스위스에 왔다는 걸 실감했다. 어쩐지 알프스의 정기받아 그런가 공항 밖에서부터 공기가 굉장히 좋은 느낌. 첫날 계획은 아침에 바젤 시내에 도착한 뒤 짐을 맡기고, 바젤에 온 목적인 바이엘러 파운데이션 (Foundation Beyeler) 미술관만 갔다가, 오후 2-3시쯤 그린델발트로 가는 기차를 타는 거였다.
스위스 여행 DAY 1 계획
아침 바젤 도착
기차역 근처에 짐 맡기기
바이엘러 파운데이션 미술관 구경
오후 2-3시쯤 그린델발트행 기차 타기
그래서 원래는 기차역에 짐을 맡기려고 했는데 기차역 근처에 쿤스트뮤지엄(Kunstmuseum)이라는 큰 미술관이 있길래 미술관 공짜 락커에 짐을 맡겼다. 그런데 짐만 맡기러 간 미술관이 규모도 굉장히 크고 바젤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에, 소장품도 화려하길래 원래 가려던 갤러리를 가지 않고, 이 미술관을 구경할까 잠시 고민했다. 내가 바젤에 온 목적인 갤러리는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이긴 했지만 그곳은 기차역까지 트램으로 왕복 1시간이 걸리고, 난 짐도 많고, 왔다 갔다 하면 그린델발트로 가는 시간도 빠듯할 것 같아 가는 게 갑자기 귀찮아졌다…………. ‘아니 쿤스트 뮤지엄이 제일 유명한 미술관이고, 기차역이랑도 가깝고, 여기만 구경하면 여유롭게 바젤 구경하다가 기차역으로 갈 수 있는데 굳이 먼 갤러리까지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여행지에서 한순간의 게으름과 귀찮음으로 내가 포기했던 곳들이 무엇이었는지, 그래서 집에 돌아온 후 포기했던 곳이 생각나서 어떤 후회를 했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귀찮음을 접어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니 역시 원래 가려던 곳을 가는 게 정답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게 뻔했다. 그래서 발걸음을 옮겨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으로 향했고, 이건 정말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었다!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으로 가는 30분 간의 트램 여행은 바젤에서의 짧은 일정을 보완해 주는 듯이 큰 창을 통해 도시의 아름다움을 이곳저곳 보여줘서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은 내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인기 있는 관광지인지 시내 곳곳에 특별전시 포스터가 붙어있었고 갤러리 앞 트램 정류장에서 내리는 사람도 많았다.
입장료가 약 3만 원 정도인데 티켓을 구매하려고 하니 만 25세 이하 공짜 티켓을 받았다!
비록 만 25세가 지난 지 몇 년 됐지만.... 비록 동안은 아니지만... 창피해서 해외 여행할 때만 하는 한정판 헤어스타일, 양갈래 땋기 머리를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짜 티켓을 주길래 냉큼 받았다. 역시나 유럽 사람들 눈엔 아시아인은 대부분 17살로 보인단 게 맞다. 늙어 보이는 게 고민이라면 유럽에 오시라. 자존감 한껏 높이고 갈 수 있다.
공짜로 들어온 게 황송할 정도로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은 공간이 참 멋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 본 미술관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공간이 아름다운 미술관이었다. 주변 환경과 자연과 내부 외부가 잘 어우러져있었다. 이걸 언제 다 보지? 싶을 정도로 넓지도, 아쉬울 정도로 작지도 않은 규모의 바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섬세한 취향의 미술관. 첫인상이 좋았다.
그리고 다인종이 섞여 지내는 런던과는 다르게 완전히 백인 관람객밖에 없어서 신기했다. 어딜 가나 다양한 인종들을 볼 수 있는 런던에서 살아서 아시아인으로서 소수자라는 자각을 잘 못하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 문화권에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지면서 갑자기 조금 신기해졌다. 동시에 런던이 아닌 이런 곳에서 살았다면 외로울 일이 많겠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이 사진 속엔 자코메티와 모네의 작품이 한 공간에 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정답은 2천억 원이 눈앞에 있다는 뜻이다.
대작을 앞에 두고 가격표만 생각한다니 너무 교양 없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이천억 원은 너무 많은 돈이었다. 자코메티와 모네라니 가격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게 얼마야….
사실 둘 다 존재감이 엄청 난 작품인데 각각의 작품이 주는 고유의 매력을 감상하기엔 둘이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서 그 배치는 좀 아쉬웠다.
미술관 한쪽에서 하던 웨인 티보 (Wayne Thiebaud)의 특별전. 이름만 듣고 처음 보는 작가인 줄 알았는데 작품을 보니 언제 한번 핀터레스트에서 보고 마음에 들어 저장해 놨던 작가였다. 색감이나 선택한 오브제들이 트렌디한데 놀랍게도 대부분 70년대 그려진 작품들이었다.
나도 알아볼 수 있는 유명한 작가 작품들이 줄줄이 있었다. 이 미술관은 창립자 에른스트 바이엘러 (Ernst Beyeler) 개인이 모으던 소장품으로 시작했다고 하는데 개인이 이 많은 컬렉션을 모았다는 사실이 경이로웠... 아니 그냥 부러웠다. 저도 빌리어네어가 되어 좋아하는 미술 작품 모아서 내 이름으로 된 미술관 하나 개관하는 게 어릴 적부터 꿈꿔온 소박한 꿈이거든요...
멋진 컬렉션이 가득 채워져있는 멋진 공간이라니 내가 꿈 꾸는 로망 그 자체였다.
그러다 분리된 공간으로 된 곳을 발견했다.
이 공간으로 들어가자 정말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물이 나와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콜롬비아 비주얼 아티스트 도리스 살세도 (Doris Salcedo)의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보는데 처음엔 바닥에서 아주 천천히 글자를 만들고, 지우면서 움직이는 물 때문에 마냥 신기하고 재밌기만 했다. 공간도 넓고 바닥에서 나오는 물을 관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도 흥미로웠고,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웠다. 배수관을 어디에 어떻게 설치했길래 글자를 만들면서 나오는 건지 그 원리와 기술이 궁금했다.
그러다 작품 제목과 설명을 읽었는데,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팔림프세스트 (Palimpsest)는 "기록되어 있던 원 문자 등을 갈아내거나 씻어낸 뒤에 새로운 글이나 다른 내용이 그 위에 덮여 기록된 오래된 문서나 양피지 사본"이다.
작품 설명은 이렇게 쓰여있었다.
“이 작품을 지난 20년 동안 유럽에서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지중해나 대서양을 횡단하는 위험한 여행을 시도하다가 사망한 난민과 이민자들에게 바칩니다. 고대의 팔림프세스트처럼, 작품은 겹쳐진 대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석판에 상감된 익사자의 이름은 위로 솟구쳐 스며드는 물방울에 의해 형성된 다른 이름으로 덮어씁니다. "울어가는 대지"의 이 이미지는 죽음이 그들을 망각에 맡길 위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산 사람들의 슬픔과 슬픔에 대한 시간을 초월한 문화 간 헌사를 제공합니다."
바로 유럽 대륙으로 오기 위해 바다를 횡단하다 죽은 난민들을 기리는 작품이었다.
시리아 내전, 리비아 내전 등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지속적인 충돌로 많은 난민들이 고향을 떠나 안전을 위해 도망치고 있고, 많은 난민들은 안전하게 유럽으로 도달하기 위한 합법적인 경로나 수단이 부족한 상황에서 비행기 대신 불법으로 바다를 건너는 보트를 이용하게 된다. 많은 난민들은 불법 브로커에 의존해 유럽으로 이동하고, 브로커들은 위험한 조건에서 많은 사람들을 작은 보트에 적재시키고 바다를 건너게 해 높은 사망률을 초래하며 많게는 수천 명이 바다에 수장되는 사건을 낳았다.
내가 좋아하는 영국 드라마 <Years and years>에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영국인 주인공이 난민인 자신의 연인과 함께 영국에 밀입국하기 위해 도버해협을 작은 고무보트로 건너는 장면. 작은 고무보트에 올라선 십 수 명의 난민들이 불안정한 모습으로 바다를 건너다 밤이 되고, 파도가 치고 보트에 물이 차고 그러다 결국 보트는 전복되고 물에 빠져 익사하게 되는 이야기. 익사의 과정이 묘사되어 있는 그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트라우마처럼 내 무의식 속에 늘 박혀있는 장면인데 팔림프세스트의 작품 설명을 보는 순간 다시 한번 떠올랐다.
https://www.youtube.com/watch?v=uly-37XtuiY
이렇게 탈출 중 사망한 일부 사람들의 이름은 팔림프세스트 작품 속에서 수력 공학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 석판에 물방울로 일시적이고 나타났다 또 다른 이름으로 덮인다. 그렇게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은 또 다른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덮이며 사건은 반복되고 잊힌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은 하나의 '사건' 중 하나로 통일되어 기록되고, 반복되는 사건들에 의해 잊히고 묻히겠지만 그 개개인을 예술 작품으로 끌어와 이름 하나하나를 조명하고 추모하는 이 작품. 이 작품을 보는데 '아 내가 바젤에 온 이유가 이거구나' 느꼈다. 공간이 주는 압도감과 시각적인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먼저 사로잡고, 작품이 주는 의미로 마음에 오래 남게 되는 작품. 런던에 살면서 수많은 갤러리와 미술관을 다녔는데 이렇게까지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미슐랭은 레스토랑을 별 3개로 평가하는데 각 별마다 평가 기준이 명확하다. 미슐랭 1 스타는 요리가 훌륭한 식당, 2 스타는 멀리서 찾아갈만한 식당, 3 스타는 이 식당을 가기 위해 여행을 떠날만한 식당이란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미술 작품에 미슐랭 스타 기준을 들이대보자면 도리스 살세도의 팔림프세스트는 나에게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아 마땅한 작품이었다! 이곳에서 이 작품을 봤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다른 도시를 제치고 바젤에 온 이유가 모두 설명됐다.
넓고 넓은 미술관에서 내 마음을 움직인 작품 하나만 있다면 그 미술관에 올 가치는 충분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 있는 미술관을 가기 위해서 그 도시를 여행하는 건 그 여행을 충분히 가치 있게 해 준다. 스위스 여행에서 제네바 대신 바젤을 선택해 잠시 후회했던 게 무색하게 그린델발트를 가기 위한 경유지로 생각했던 바젤에서 예상치 못했던 큰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이 날의 경험으로 역시나 여행지에서 갈까 말까 하는 곳은 가라!
이 말은 진리임을 깨달았다. 여행지에서 잠깐의 귀찮음을 이긴다면 기대했던, 혹은 예상하지 못했더라도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앞으로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들 의견만 따르거나, 유명한 곳만 가기보다는 조금은 덜 유명할지라도 내 마음과 호기심이 동하는 곳을 가는 게 최고의 여행이 된다는 점 또한 느끼게 됐다.
이렇게 스위스 여행의 첫 시작을 너무 보람차게 시작해 행복한 마음을 안고, 바젤을 떠나 스위스 여행의 목적이자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알프스 산맥이 있는 그린델발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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