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리 Jun 05. 2021

당신은 해선 안 될 부탁을 했어

프랑스에도 갑질이 있음을



다니엘의 상사는 영화에 나올  같은 부자 아저씨다.  제르망가에 살고,  딸은 각각 영국과 미국의 사립대학에 다니고 있으며 아들은 아직 어려 명문 이중언어 학교에 보내려 했지만 입학시험에서 울어버리는 바람에 아저씨의 꿈은 좌절되었다. 다니엘에게는 한없이 못됐지만 툴툴대면서 딸이 떠안긴 (대학) 숙제를 대신하거나 미국 사는 딸이 잠시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딸이 잠시 머무는 집에서 매일 저녁을 함께하는  그나마 인간적인 면모도 없지는 않다. 그래서  아저씨는 혼돈악일까? 그렇지는 않다. 나나 다니엘에게 있어서는 순수악에 한없이 가깝다. 나도 다니엘도 서민 가정 출신이라 가끔 상류층의 생활상을 전해 듣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그의 존재는 다니엘의 이직 고려 기준에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아저씨는 상당한 진상이다.

 파리에서 살기 시작한  1, 나는  프랑스식 직장 생활에 환상이 있었다.  나라에는 아무리 못된 상사도 넘지 않을 선이라는  있어 보였다. 그런데  취직한 다니엘이 상사의 만행을 하나씩 전해올수록 나는 어떤 면에서 너무나 친숙한  아저씨의 행동에 진상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달을  있었다. 자잘한  하나까지 쓰자면 너무 많지만 오천만 한국인을 격노하게 하려면 이만한 이야기가 없을 것이다.

 때는 작년, 나는 한국에 잠시 돌아가 있었다. 가족이 많이 보고 싶었고 매일 언제 국경이 닫힐지 몰라 아직 국경이 열려 있을  서둘러 돌아갔다. 다니엘이 일어나 출근하기 전에 시간이 났기 때문에 매일 그때쯤 통화를 했다. 어느 날은 다니엘이 불편한 기색으로 상사가 뭔가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다니엘 상사의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던지라 이번엔  어떤 무리한 부탁을 하려나 싶던  다니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마 프랑스 생활 10 차가 되어도 여전히 충격적일  같다. 기모노를 사다 달랜다. 한국인인 나한테 말이다. 정말 와우다. 다니엘은 이걸 전달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민망해서 견딜  없는  보였다.

'그런  부탁하시면 어떡해요,  여자친구는 일본 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이에요'

다니엘이 이렇게까지 말했지만 달라지는  없었다. 편의상  상사를 토마라고 부르겠다(실제 이름은 아니다). 토마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게 그거 아니겠냐면서  그랬듯이 억지를 썼다고 했다. 기모노를 대신 사다 주는 값은 청구해도 된다고 했고 선물로는-당연히 준다고 말한  없고- 젓가락을 받고 싶다고 했다. '아름다운' 젓가락을. 아마  상사였으면 인종차별이라고 고소해도 내가 이겼을  같다. 그래서 기모노 값은 받았냐고? 아니, 완전히 잊어버렸다고 했다. 다니엘이 얘기 꺼내기를 힘들어하는  같고 내가 다니엘 상황이었어도 비슷한 감정이었을 거라 생각해서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일이면 매몰차게 한마디 하고 짜르던지 말던지 쪼대로 하라면서 고소를 했을 텐데 인질이  남자친구인지라  어쩌겠나 싶었다. 미리 말하지만 토마는 여전히 다니엘의 보스로 일하는 중이며  얘기에 사이다는 없을 예정이다. 있다 해도 다니엘의 이직 정도 아니겠는가. 뭔가를 부탁하는 사람치고는 참으로 고자세인 토마가 내게 전달한 조건은 이랬다.  기모노는 금색 아니면 붉은색일 , 악마는 기모노를 입는다도 아니고. 당시 귀국까지 2주밖에 남지 않아서 조달하기도   시점이었다. 그래,  부탁하는 시점마저도  배려가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돈을  받을 가능성도 있어서 별로 품을 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도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토마가 원하는  기모노라면  찾아온  맞다. 나는 일본 악기를 잠시 배웠었고 예전에 선물 받은 기모노가 있었다. 마침 (아직 입은  없는)기모노 속옷   벌은 금색이었고 말이다.

 한복에 저고리와 치마가 있듯이 기모노  벌을 입으려면 기내용 트렁크   -부피 때문에- 부속품과 속옷이 필요하다. 우리가 기모노라고 부르는  보통 가장 겉에 입는 옷을 가리킨다. 하지만 토마가 원하는  오리엔탈리즘 영화에서 빠지면 서운한 나이트가운 같은 옷이었고 앞서 말한 '가장 겉에 입는 ' 두께도 살짝 있지만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가운으로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결국 나이트가운 용으로 가장 적합한  가장 아래 속옷과 가장 바깥  사이에 입는 주반이라는 속옷이다. 내가 가진  미혼 여성이 입는  소매의 후리소데 주반이었다. 구하기 힘든 색이라 아끼는 옷이기도 했지만 동성애자나 이민자나 여성에 대해 혐오적인 발언을 일삼는 토마가 정작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복장을 하고 잠든다니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잠옷의 실상은 미혼 여성용 속옷인데 말이다. 여자애들 속옷을 입은 50 아저씨라니, 이래서 오리엔탈리즘은 좋은 꼬라지를  본다니까. 끔찍한 노릇이었다.

 아무튼 나는  옷과 나전공예 젓가락을-사윗감을 인질로 잡힌 엄마는 아무 젓가락이나 사자는  의견을 반려했다- 사들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옛날에 품었던 많은 환상들이 아직 원래 형태를 유지한  남아있지만 직장 생활에 대한 환상만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사람들은 가끔 놀라울 만큼 뻔뻔해진다는 교훈만 남기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