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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Jul 30. 2020

인생, 우울과 우쭐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다

갈팡질팡해도 우리는 제 자리를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인 걸.


후배중 하나는 일의 상태에 따라서 기분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많은 사람들도 그렇지만 후배의 경우는 특히 심하다. 얼굴이 습자지와 같다. 자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비쳐 나오기에 숨길 수가 없다.


한없이 행복했다가 일순간 불행한 사람이 되어 버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결정할 때 늘 망설이고 헤맨다. 거기에 자책은 덤처럼 붙어 다닌다.


너만 그런거 아니라고 나도 그렇다고 얘기해 주지만 그런 말이 먹히는 날이 있고 아닌 날이 있다. 그럴 때는 초라한 몇마디라도 끄적끄적 적어 후배 J에게 띄운다. 그러고 나면 기분이 나아졌다는 문자가 온다. 다행이다. 그거면 됐다.





J에게


조지 버나드 쇼는 세익스피어 이래 최고의 극작가로 알려져 있어.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는 그가 묘비명에 직접 쓴 글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라고 하더라. 


워낙에 신랄한 풍자와 해학, 유머와 재치를 겸비한 사람이었기에 묘비명도 독특하게 썼다고 다들 생각한 모양이야. 그런데 오역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조지 버나드 쇼는 95세까지 장수를 는데 그 묘비명의 뜻은 '오래살았으니 이렇게 죽는 게 당연한 거지.' 로 해석하는 게 맞다고 해.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누군가는 그게 잘못된 번역이라 이야기 할지라도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 질때가 있어.  


또 이기호 작가의 책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제목을 들을 때도 저절로 수긍하게 되지. 인생을 한 문장 안에 함축적으로 담아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


뭔가 일이 잘 풀리는 날에는 '세상이 나를 위해 준비해 준 멋진 서프라이즈가 바로 이거였구나'하고 우쭐해 하다가도 일 하나 삐끗 틀어져 버리는 날에는 '세상 하직 날짜를 받아 놓은 사람이 바로 나였구나'하며 우울해지지. 그것도 순식간에 말야.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어떻게 인간이 저토록 급변할 수가 있냐?" 며 기함하겠지만 그렇게 맑았다 흐렸다 요동치는 감정체계를 가진 생명체가 바로 우리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감정의 파고를 넘나들며 울었다 웃었다 화냈다 화해했다 지지고 볶는게 인생이란 생각을 하곤 해.


늘 모범적이고 차분한 사람,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이성적으로 감정조절까지 완벽히 되는  사람은 현실에 있으면 안되지 않을까? 그런 자들은 교과서 속으로 들어가줘야 . 모범답안은 정답지에나 어울리는 것이지 우리가 사는 인생에서는 아닌것 같아.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나름의 답안지를 가지고 있지. 거기에 오답도 썼다가 정답도 썼다가 지웠다가 고쳐썼다가 하는 거야. 모범답안지를 놓고 그대로 베끼는 삶이란 없어. 모범답안지는 하나도 틀릴 수 없는 100퍼센트 완벽한 답안지잖아. 그런데 어느 누구의 인생이 100퍼센트 완벽할 수 있단 말이니?


또 그걸 베껴쓴다고 해서 모두가 완벽해질 수 있을까? 우리 앞에는 새로운 문제가 시시각각 펼쳐지는데 그때마다 모범답안을 누구로부터 가지고 올 거야? 옆에서 대기하고 있으면서 매번 모범답안을 전해줄 누군가를 알고 있긴 하고?



결국 내 안에서 꺼내 쓰는 수 밖에 없어. 틀리든 맞든 그냥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있는 그대로 기술해 나가는 수 밖에 없다. 나에게 맞는 내 답안지를 작성하다가 그 안에서 갈팡질팡, 우물쭈물하는 모든 순간들이 실은 나 스스로에게 가장 알맞은 답안을 찾아가는 과정인 거야.


그래서 인생이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일'이란 생각이 들어.


자랑하고 싶으면 자랑해. 창피해서 숨고 싶으면 숨어. 우울해지면 눈물 흘리고 우쭐해지면 웃으렴. 슬프면 목놓아 울기도 . 기쁘면 소리내어 좋아도 해야지. 공감의 박수도 열정적으로 치면 좋고. 그 모든 것을 우리 다 해보자.


성경에서는 돌아온 탕아도 살찐 송아지를 잡으며 환대해 준다고 이야기 했다던데 그렇다면 우리는 더 큰 환대도 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탕아처럼 말썽부리지도 않았잖아.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 우리의 인생을 살았을 뿐이잖아. 단지 우리가 한 것은 그것 뿐이었지. 그러니 우리 모두는 누구라도 더 큰 환대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더 큰 환대는 타인이 해주는 게 아니야. 더 큰 환대를 해 줄 타인을 찾다보니 늘 실망하고 낙담하며 돌아서게 되는 것 같아.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환대해 주면 된다. 헤매다니다가 끝내는 제자리에 온 스스로를 열렬히 지지해주고 따뜻하게 응원해주면 되는 거야.


결국 '나'를 끝까지 데리고 살 사람은 '나'이니까 인생의 우물쭈물도, 인생의 갈팡질팡도 인생의 가장 극적인 환대도 내가 나에게 해 주면 어떨까? 그 힘으로 우리는 끝까지 잘 살면 되는 거지. 우리 앞에 주어진 생의 길을 따라 또각또각 걸어가면 된다. 그러니까 힘을 내자. 천천히 다시 걸어 보자.



출처 :  CAW on Twitter"방황"  .  maggie chi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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