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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Feb 28. 2021

첫 에세이를 출간했습니다.


저의 첫 에세이가 나왔습니다. 작년 가을 무렵 나올 예정이었으나 동화 작업과 맞물리면서 원고 마무리를 짓지 못해 해를 넘기고 말았네요.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하면서 능력 부족으로 헤맨 탓도 있습니다.


어쩌다 한 편씩 동화를 쓴 적은 있어도 에세이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힘들 때마다 기운 좀 내보자고 그저 블로그와 브런치에 한 편씩 써서 올렸던 글들을 수차례 수정하였더니 운 좋게도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깊은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당시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고 마음도 차츰 안정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1년 반 동안 글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 브런치가, 저는 참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구독자 여러분들 그리고 함께 글을 쓰며 댓글로 공감을 주고받은, 존경하는 브런치 작가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이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이 있다.>


프롤로그- 더 이상 내가 밉지 않다.


내가 미운 날이 많았다. 그때의 나는 몹시 불안했고 힘들고 지쳐 있었다. 보잘것없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수록 내가 점점 미워져서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조금 더 열심히 살았어야지.... 조금 더 노력해서 분명한 성과를 냈어야지....’

다그치기만 하던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그 견고해진 덩어리들이 오히려 나를 무겁게 짓눌러서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동안 나는 누워서만 지냈다.


기를 쓰고 다시 일어나 보자고 다짐도 했다. 하지만 다짐은 다짐일 뿐 꿈꾸던 인생들은 나에게 쉽게 미리 보기를 허락해 주지 않았다. 어렴풋한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숱한 다짐이 실현되기는커녕 한꺼번에 끝나고 마는 순간들이 눈앞에서 휙휙 지나갔다. 크고 작은 인생의 고비들이 내 삶을 휘청거리게 만들었고 그때마다 나는 온갖 변명을 둘러댔다.


우울했고 무기력했고 슬펐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심하게 마음 앓이를 했다. 글쓰기가 싫었고 나중에는 쓸 수조차 없게 되었다. 나는 나를 위해 준비했던 시간을 내 삶에서 가장 먼저 도려냈다. ‘나, 보살피기’를 그만둬 버렸다. 나를 둘러싼 상황과 대상을 원망하며 ‘나 자신’을 구석으로 쫓아 벌세워 버렸던 어리석은 순간들이 많았다. 이루지 못한 일들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껴안은 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수많은 시간들을 뭉텅뭉텅 소비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미운 나를 괴롭혔다.


그러는 사이 친한 후배를 만난 적이 있었다. 저녁 식사 후 헤어지기 바로 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후배가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의 손에 용돈을 쥐여주었다. 돌아와서 그 모습을 본 내가, 애한테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주냐고 손사래를 쳤다.


그때 후배가 “언니도 나한테 줬었잖아.”라고 말하며 서둘러 사라졌다. 후배가 딸아이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 일부러 지어낸 이야기일 거라고 여기면서 넘겼다. 그 후 시간이 지나 낡은 책갈피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20년 전, 딸아이도 세상에 없던 젊은 날의 내가 그 속에 있었다. 사진을 보다가 그제야 불현듯 기억이 떠올랐다.


해외여행 일정 도중 유학 간 후배와 조우했던 그 순간이 말이다. 라면은 질려서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며 힘들게 공부하고 있던 후배를 만난 날. 우리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길거리에서 부둥켜안았다. 그녀를 여행 코스에 합류하게 해서 함께 온전히 하루를 즐겼던 그날, 헤어지면서 나는 그녀의 가방에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찔러 넣었다. 세월을 견뎌 낸 그 용돈은 돌고 돌아 내 딸아이의 손에 다시 쥐어졌다.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충만했던 20년 전의 기억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미움을 멈출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제 더 이상 멋진 결과물을 내어 놓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될 수 있는 한 나와 불화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나를 누구보다 많이 아끼고 좋아해 주고 싶다. 내 자신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우연찮게 발견하는 날이면 나는, 내가 유난히 좋아지기도 한다. 이 책을 펼친 모든 이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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