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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Apr 22. 2021

일단 열자

초짜의 피아노 수리법

피아노 레슨을 앞두고 벼락치기로 피아노 연습을 몰아하던 딸이 다급하게 부른다. 건반 하나가 소리가 안 난다고 했다. 딸은 하필 시 플랫(Bb)이냐며, 지금 연습하는 캐리비안 해적 ost에서 시 플랫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그 건반이 안 되면 연습이 어렵다고 했다.



남편은 조율사를 부르라고 했다. 부를 때 부르더라도 무슨 문제인지는 알고 싶어서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피아노 전면 덮개를 열었다. 그게 열리는 거였어? 남편이 놀란다. 놀라긴! 피아노 조율할 때 봐두었다. 후레쉬를 비춰 들여다보니 해머를 움직여주는 캐처 부분의 우드가 빠져 있는 게 보였다. 피아노에 대해 잘 모르지만 다른 건반을 눌러보면서 작동원리를 관찰해보니 그 정도는 우리가 끼울 수 있을 거 같았다. 내가 후레쉬를 비춰주고 남편에게 해보라고 했다. 송곳을 동원해서 빠진 우드를 겨우 끼웠다. 하지만 건반을 누르니 다시 빠져버렸다. 다른 부품을 보니 우드 사이를 본드로 접착해놓은 게 보였다. 빨대에 본드를 묻혀서 우드에 묻힌 다음 접착시키고 본드가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반나절 만에 피아노 연습을 재개할 수 있었다. (피아노 고장 핑계로 딸은 연습 안 하고 싶었을텐데~ㅎ) 그거 하나 고쳐놓고는 의기양양해진 남편은 딸에게 아빠가 피아노도 고치는 사람이라고 으스댔고,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조율사 부르라고 할 때는 언제고!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 때 아빠가 자동차 바퀴를 혼자 갈아 끼우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카센터에 맡기면 된다고 했더니 아빠는 운전을 하면 간단한 정비도 할 줄 알아야 하고, 긴급 서비스를 부르거나 정비를 맡기더라도 알아야 여자라고 무시 당하거나 바가지 쓰지 않는다면서. 그렇게 배워서 실제로 펑크 났을 때 혼자서 자동차 바퀴를 갈아 끼운 적도 있다. 집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원리로 집을 짓는지 최대한 알아 두어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나마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피아노를 치면 피아노 조율까지는 아니더라도 피아노에 대해 알아두는 것이 여러가지로 유용하다. 하다 못해 뚜껑 여는 법이라도 봐두었더니 뭐가 문제인지 볼 수 있고, 뭐가 문제인지 알게 되니까 수리도 할 수 있었으니까. 다음 피아노 조율할 때는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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