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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Dec 27. 2022

커리어 대전환 4년의 회고

목적이 이끄는 삶과 커리어

2019년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을 맞이한 해에 나는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았다. 수년간 추구하던 연구자의 길을 포기하고, 스타트업 씬에 들어왔다. 당시 나의 선택에 큰 영향을 줬던 수업이 오르&프로젝트의 '아이덴티티 워크숍'이었다. 인생과 커리어에 대해 관점의 전환을 안겨준 그 수업 이후 내 삶은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3년이 좀 더 지난 2022년 12월, 나는 그 수업의 수강생들을 청중으로 하는 토크쇼에 초대되어 내가 밟아온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날 토크쇼의 문답을 아래 글로 정리해 본다.






“어려운 선택”: 라연주 편


Q. 이번에 이야기할 분은 유독 어려운 선택만을 한 분인데요. 현재는 한 스타트업의 C레벨이 된 분이에요. 멋지죠? 먼저 수업을 들을 당시의 상황을 짧게 알려주시겠어요?


A. 처음 이 수업을 들었을 때 저의 상황을 한 문장으로 말해보면 '선택했던 길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경제 쪽 국책연구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연구원이 커리어적으로 승진하려면 박사 학위가 필요해서 박사유학을 계획 중이었어요. 미국의 돈 많은 한 주립대학에 이미 합격한 상황이었고, 회사를 천천히 정리하고 출국 준비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근데 '내가 박사 유학을 정말 가고 싶은가?', '가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마음속에서 계속 스멀스멀 올라왔어요. 1년 간 달려온 목표를 이뤘으니 기뻐야 하는데 별로 기쁘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입학허가를 받은 상황에서도 여기저기 다른 이직처를 힐끔 보다가, 한 VC의 회사설명회에 갔는데, 거기서 한 심사역님이 '아이덴티티 워크숍' 수업을 추천하더라고요. 그 수업을 듣고 전직을 결심해 여기에 오게 되었다고요. 그래서 이 수업을 듣게 됐어요.



Q. 수업 직후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결국 미국 모 주립대학에 경영학 박사과정에 장학금을 받고 합격을 했지만, 결국 가지 않기로 했어요. 그 결정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시겠어요?


A. 박사 유학을 결심했던 이유가 ‘연구가 정말 너무 하고 싶어서’가 하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성공하려면 박사 학위가 필요해서’였어요. 연구소에 있었기 때문에 상급자들은 전부 박사들이었고, 비박사들은 계급적으로 차별받는 곳이었기에, 사실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준비를 시작했어요. 합격할 때까지는 앞만 보고 달렸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입학할 학교가 결정되고 나니 숨을 고르고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죠. 그 과정에서 수업을 들었던 것이에요. 수업을 통해 나 스스로를 많이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제가 ‘연구’나 ‘배움’이라는 활동 자체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평생 연구만 하면서 학자로 살고 싶은가에 대해 질문해 보니 답이 아니었어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공을 원했던 거죠.

당시 제 관심사가 스타트업, ESG, CSR, 환경, 채식 이런 쪽이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박사를 가면 유사한 분야로 스타트업, 혁신, 기업가정신 분야를 연구하려고는 했었기에 분야는 맞았어요. 그런데 그 관심분야에서 내가 직접 발로 뛰고 싶은 것인지, 한 걸음 떨어져 연구자로서 관찰하고 분석하고 싶은지를 고민해보면 전자였어요. 그리고 직접 경험도 없이, 실제 현장에 필요한 제대로 된 연구가 될까 하는 의문도 있었고요. 그래서 직접 그 씬에 들어가서 뛰어보자 결심했어요. 감사하게도 아이덴티티 수업을 같이 들었던 분이 제가 가진 환경과 채식이라는 관심사에 딱 맞는 회사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바로 지원했고, 면접 보고 합격해서 학교는 미련 없이 Bye 했죠.



Q. 환경 분야의 작은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현재는 배양육을 만드는 회사의 CSO로 재직하고 있는데요. 환경 분야의 관심을 어떻게 커리어로 키워갔나요?


A. 환경에는 오랫동안 관심이 많아서 분리수거, 텀블러, 손수건, 다회용기 사용 이런 것들은 항상 일상생활에서 열심히 실천했어요. 그러다가 2016년 스위스 WHO 본부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Cowspiracy: The Sustainability Secret>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어요. 축산업과 기후변화의 관계를 추적하는 다큐인데,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기 러버로서 엄청난 충격이었죠. 제가 좋아하는 고기 먹는 행위가 제가 사랑하는 지구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에요. 바로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고기를 줄여보자 했어요. 주변에 비건과 베지테리언들도 꽤 있는 제네바라는 국제적인 도시였기에 그 과정이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2017년 한국에 돌아오니 다시 고기를 엄청 많이 먹게 되었어요. 회사 구내식당에는 항상 고기 메뉴만 나오고, 회식은 항상 고깃집이었으니까요. 타의에 의해 고기를 다시 많이 먹게 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트리거가 된 사건이 있었어요. 제가 다니던 연구원에 부속으로 국제정책대학원이 있었고, 그곳에 재학 중이던 무슬림 학생과 친구가 되었어요. 어느 날 그 친구와 저녁에 구내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로 했는데, 식당에 그 친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하나도 없었어요.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어요. 글로벌과 세계화를 외치는 조직이, 본인들이 장학금 줘서 데려온 국제학생들의 기본적인 먹을 권리조차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유럽에 살았을 때를 돌이켜보면, 카페테리아의 선택권은 언제나 meat, fish, veggie였는데요. 한국에서는 소, 돼지, 닭 밖에 선택권이 없어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할 수 있는 먹는 것에서 다양성이 너무 결여된 국내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

그 후로 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고 주변 사람과 회사에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고기 섭취를 다시 현저히 줄여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2019년 '채식문화를 확산하여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여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미션을 가진 '채식한끼' 팀에 입사하게 됩니다. 제가 고기를 줄이고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와 너무나 맞아떨어지는 미션을 가진 팀이라 마음이 잘 맞았고 보람차게 일할 수 있었어요.

5명도 되지 않던 작은 팀에 들어갔으니 정말 많은 일들을 하게 됐어요. 콘텐츠 기획으로 시작하여 데이터 분석, 마케팅, 행사 기획, MD, 운영, 상품 관리, UX/UI 기획 등 '개발과 디자인 빼고 다 해봤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정도로 많은 직무를 경험할 수 있었죠.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리더의 자리에 올랐고, 해보고 싶던 실험들을 실컷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3년 정도 일을 해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 같은데 내가 원하는 만큼 임팩트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축산업이 기후변화를 가속화시키니 고기 소비를 줄이자는 게 회사의 방향성이었지만, 저처럼 환경을 너무 사랑해서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현실을 깨달았죠. 지금까지는 고기 '수요'를 바꾸는 일을 했다면, '공급'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했어요. 사람들이 원하는 고기를 먹게 하되,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고기를 생산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요. 그때 '배양육' 기술을 주목했어요. 몇 년 전부터 알고 있던 기술이긴 했지만 패티 1장이 수천만 원이 될 정도로 요원한 기술이었는데, 몇 년간 기술이 많이 발전해 생산 비용을 많이 낮췄다는 소식을 접했죠. 그리고 한국에도 이러한 기술을 개발 중인 스타트업들이 몇 곳 있고, 초기 투자를 받을 정도로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시장 조사를 하고, 몇 개 기업을 만나보고, 저와 가장 핏이 맞는 회사를 선택해 이직했습니다.



Q. 아마도 이게 오늘 토크의 키포인트일 텐데요. 연주님의 삶을 돌아보면, 유독 타인에 눈에 보기에는 ‘어렵게 보이는 길’을 선택했어요. 친구들은 대기업과 공기업에 가고, 연주님도 어떻게 생각해보면 타인에 눈에 보이기에 높고 돈 많이 주는 곳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그것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어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A.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저는 어릴 때부터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불행하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일인가가 가장 중요했고, 연봉이나 사회적 인식은  뒤였어요.

고등학교 때 우연히 서점에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읽었어요. 세상에 식량은 충분히 생산되는데 굶어 죽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에 화가 났죠. 공급량이 부족한 게 아니라, 분배 시스템이 잘못되어서 그렇다는 점을 바꾸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바라던 외교관이라는 장래희망을 바꿔서 국제기구에서 기아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기간 동안에는 항상 빈곤, 불평등, 개도국 문제를 고민했어요. 대학 때 경제학을 전공하며 경제 시스템과 부의 분배에 대한 이해를 키웠고, 대학원에서는 경제학을 넘어 다양한 학문적 접근을 통해 빈곤과 불평등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가서 국제개발학을 공부했어요. 대학원 졸업 후에는 사회정책과 경제정책 쪽 연구를 약 3년 간 했어요. 돌이켜보면 저는 항상 구조적으로,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해결하고 싶은 거였어요. 주제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했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본질은 계속 이어져 온 것을 발견하게 됐어요. 저는 그러한 일을 할 때 보람과 의미를 느끼고, 재미있고 행복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려워 보이는 길이었을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끌리는 쪽으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길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관료주의가 심한 대기업, 공기업에서 오래 버티는 게 저에게는 훨씬 어려운 일이었을 거예요.

2019년부터는 초기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이 또한 남들에게는 '사서 고생한다'라고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몇 백 명, 몇 천 명이 있는 조직에서도 일해 봤지만, 그곳에서 느낄 수 없는 자유도와 영향력을 실감하거든요. 작은 조직이기 때문에 나 한 명의 시간과 노력이 너무 중요하고, 내가 이 조직의 성장과 성과에 큰 영향을 미쳐요. 내 의지에 따라 책임지는 범위도 크게 달라지고, 실력과 욕심만 있다면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하고 승진할 수 있어요. 저에게는 오히려 가능성의 레버리지가 아주 높은 곳이에요. 

이번에 배양육 산업으로 이직할 때에도 '시장이 아직 열리지도 않았는데 너무 빨리 가는 게 아니냐?'는 걱정어린 질문을 받았어요. 저는 시장이 올까, 안 올까 '베팅'을 하기 위해 이 길을 선택한 게 아니에요. 제가 선택한 이 일이 되는 시장이 되도록 만들 '각오'를 하고 들어왔어요. 미래를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미래를 만들어 나가려고 해요.



Q. 마지막으로, 혹시나 남들이 많이 가는 쉬운 길과 나만의 어려운 길 앞에서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한마디를 해주신다면?


A. 쉬운 길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남들이 많이 가는 길을 선택하면 보통 끝이 어떨지 예상되잖아요. 대기업 들어가면 50대 초반에 퇴직해서 요식업 같은 창업을 하고.. 결말이 뻔히 보이는 드라마가 재미없듯이 저에게는 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결말을 예측할 수 없고, 오히려 내가 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게 훨씬 매력적이에요.



Q. 마지막으로 질문드릴게요. 시작이란 단어는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시작해야만 하는 이유를 한 마디씩 해주신다면요?


A. 저는 오히려 시작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상황이 가장 힘들었어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결정이 너무 어려운 순간에는 정말 제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기분이 들어요. 그런데 어떤 선택이든 결정하고서 시작의 한 걸음을 내딛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이제 선택의 고민은 끝이 났고, 나의 선택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면 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시작은 오히려 두려움을 끝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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