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만세

단술

by 연주

2023년 12월 3일


단술을 아는가? 나주에서 김장할 때 차가운 몸을 녹이라고 막걸리에 설탕을 넣고 끓여 마시는 따뜻한 막걸리. 진짜 단술은 이게 아니라지만, 난 단술이라고 부르겠다.


시댁에서 김장할 때 처음 맛보았다. 막걸리가 가득 담긴 주전자를 든 시어머니가 이것 좀 마시며 몸 좀 녹이라고 양은대접에 콸콸 따라 주셔서 마시게 되었는데... 내 목 안으로 단술이 넘어가자마자 내 혀는 쩝쩝댔고, 내 눈동자는 번쩍 트였다. 이것은 내 추억의 맛이었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기억 속 아른거렸던 막걸리 밥? 맛...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밥이 선반 위에 고루고루 퍼져 있었고, 내가 그것을 손으로 퍼먹었을 때 맛봤던 그 미묘한 달달하고 쌉쌉하고 깊이 있는 발효된 맛.

아무튼 그때부터 김장철만 되면 항상 단술을 또 마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마음이 급했다. 내가 집에서 만들어서 먹기로 한 것이다. 남편이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사 왔고 나는 냄비에 막사를 해 먹고 남은 막걸리와 설탕 약간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거품이 부글부글 거리고 막걸리 독한 향이 빠졌겠지 싶을 때 바로 불을 끄고 컵에 따랐다. 그리고 바로 뜨거운 김을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하지만 맛 재연 대실패. 시댁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막걸리의 쓰디쓴 맛은 여전하고, 설탕 덕분에 달았지만 맛의 깊이가 없었다. 장인을 흉내 냈지만 장인이 아님을 고스란히 드러낸 아마추어 맛이라고나 할까.

남편과 나는 이 맛에 실망했고 김장 때여서 맛있었나 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어제 나의 컨디션 저조로 시댁 김장에는 남편만 참여하게 됐고 절인 배추 나르기를 열심히 하고 집에 온 남편은 김장김치와 수육, 굴 등등 바리바리 싸 온 것을 풀어냈다.

그리고 나에게 내민 막걸리 병.

"네가 단술 단술 노래를 부르니까 엄마보고 우리 와이프 단술 못 먹었다고 운께 좀 주쇼 했다!"

웃음을 숨기지 않고 막걸리병을 냉큼 받아 든 나는 냄비에 단술을 콸콸 쏟아 부어 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짝 부글부글 끓을 때쯤 컵에 따라 후후 불어가며 한 모금 들이켰다. 오...막걸리 알코올 향이 거의 없는 달콤한 그 오래 묵은 발효 된 그 맛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남편에게 물었다.

"어머님이 사카린 넣은 거 아닐까? 뭔가 여기에 그 발효된 맛이 있는데... 왜 내가 한 것은 이 맛이 안 났지? 아니면... 아하! 엿기름! 엿기름 넣었나? 식혜에서 나는 그 맛! 그 맛이랑 좀 비슷해! 아니면 설탕을 듬뿍 넣어야 하나?"

남편은 나의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며 시어머니에게 당장 전화를 걸었고 그 맛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분명 시어머니 단술로 나처럼 막걸리에 설탕만 들어간 것이고 눈대중으로 대충 넣은 것이다. 하지만 내 단술과 시어머니 단술의 한 가지 차이가 있었으니...

"엄마가 바쁘니까 약한 불 켜둔 채로 내버려두었대. 설탕도 그냥 대충 넣고 약한 불에 놓고 신경 안 쓰고 딴일하고 와서 잠깐 보고... 또 딴일 하다가 잠깐 보고... 바글바글 끓이면 안 된대. 너는 끓이자마자 불 껐잖아. 약한 불에 5분 이상 둬야 한단다. 그러고 나면 막걸리 양이 살짝 줄어든대. 그 정도로 끓여야 된단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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