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간 오빠에게 첫 소포가 왔다. 사실 며칠 전에 왔는데, 부산에 간 엄마가 돌아와서 열어볼 것이므로 얌전히 집 한구석에 놔두었다. 아빠는 상자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엄마가 그 상자를 열어보면 많이 울 것 같다고 얘기했다. 정말 그럴까? 싶었는데, 어쨌든 나보단 아빠가 무엇이든 아는 게 많을 테니 그러려니 했다. 실제로 엄마는 오빠가 군대에 간다는 사실에 가끔 울적해 보이곤 했으니 말이다. (몇 달 전부터 군대 얘기만 들으면 오빠를 떠올렸다....) 누군가에게서 온 소포를 열면서 울어본 경험은 내 인생에서 없었던 일이기에, 만약 엄마가 운다면 그것이 어떤 감정으로부터 온 눈물일지 쉽사리 예측이 되지 않았다. 엄마가 울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오늘 엄마가 돌아왔다. 4시가 지난 시각이었다. 엄마는 돌아오자마자 짐을 풀기도 전부터 상자를 열었다. 엄마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뒤의 일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식탁에 앉아 엄마가 사 온 어묵이나 먹고 있던 나는 불현듯 들리는 엄마의 웃음소리에 그쪽을 볼 수밖에 없었다. 울기는커녕, 웃는다니. 엄마의 손에는 작은 글자가 새겨진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오빠가 쓴 편지였다. 편지를 쓸 시간을 주셔서 짧게 남긴다는 내용을 서두로, 정말 편지지의 반절도 되지 않는 편지가 적혀 있었다. 친근한 글씨체에서 새삼 '군대에 간 오빠가 부모님께 쓴 편지'라는 말이 와닿았다. 내용은 별게 없었다. 군대에서 선임에게 간택 받아 작은 직책? 을 맡게 되었다고, 이래저래 낯설긴 하지만 여하튼 잘 지내고 있다고, 군대에 가기 전에 말씀드렸던 것들(취미와 관련된 사항들이다.)을 부탁드린다고.... 그 흔하디흔한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호들갑은 일절도 없었다는 소리다. 오히려 그 점이 참 오빠답다고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는지, 편지를 읽는 내내 웃으셨다. 내가 편지를 다 읽고 자리를 벗어난 뒤에는 코를 훌쩍이는 듯한 소리가 조금 들렸는데, 그마저도 울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슬프지 않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웃긴 편지였다.
물론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오빠의 담담하고 정갈한 문체가 이에 큰 공헌을 한 것 같다. 그 편지만 보면... 그저 당연히 일어난 일들을 차분히 서술하는 것 같아서(오빠는 그냥 체념한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이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죽으러 간 것도 아니고, 성인이 된 오빠가 군대에 간 것이니 사실 크게 보면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라면 그게 언제이든 언젠가는 일어났을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을 테니....) 가식 하나 없는, 근황만이 담긴 솔직한 편지가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한결같음이 주는 위로란, 꿀 발린 입에서 나오는 100개의 문장들보다도 더 확실하고 효과가 좋다.
어렸을 적부터 그래왔지만, 나는 오빠의 성격이 참 부럽기도 하다. 나는 가지지 못한 것들이 오빠에게는 있다고 여겼다. 꼴에 적당한 자신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어느 정도의 넉살.... 내가 느끼기에 오빠는 무엇이든 항상 나보다 앞서 있었다. (실제로 나이 차이가 당연히 있긴 하지만, 오빠는 내 나이 때 지금의 나보다 더 성숙했다.) 특히 언변이 좋은 편이라 어린 나는 늘 그 점을 부러워했다. 그런 점에서 오빠를 동경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였다.
오빠가 고3이 되고, 입시생이 되었을 때도 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수능을 못 봐서, 성적이 안 돼서, 운이 안 좋아서, 하여튼 어떤 이유에서든 오빠의 입시가 잘 끝나지 않더라도, 나는 오빠가 어떻게든 잘 살아가리란 확신이 있었다. 꽤 강단 있고, 재능이 조금 있고, 아는 것도 많고, 자신을 확실하게 어필할 줄 아는 인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오빠는 어렸을 적 내 생각만큼 그렇게 대단한 인물은 아니다. 어딘가에 장점이 있으면 또 어딘가엔 허점이 있는 게 당연한 섭리이듯, 오빠보다 내가 나은 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오빠가 평균 이하로 못하는 분야도 분명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오빠의 담담함이 부럽다. 내 말 백 마디보다도 오빠의 한 마디가 남에게 주는 울림이 더 클 것이라 나는 자부한다. 오빠는 나보다 더 생각이 깊고, 분명 그 한 마디에 수많은 고민의 흔적이 묻어날 테니까. 그 점이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분명 오빠의 매력으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같은 가족으로써, 남매 사이에 작용하는 당연스런 혐오가 존재한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꼴 보기 싫었던 적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도 나는 오빠가 별로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빠는 어찌 되었든 자신의 인생을 잘 살고 있고, 어떤 환경에서든 스스로 적응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오빠를 가끔 동경하기도 했고, 또 사람 대 사람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군대에 간 뒤에 쓴 첫 편지에서 다시 한번 '아, 오빠가 이런 사람이었지'를 느끼게 될 줄은 몰랐으나.... 뭐, 그 점도 아주 쪼금 멋지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군대에 간 오빠가 무탈하게 잘 지내다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그 즈음이 되면 나는 입시에 허덕이고 있겠지.... (물론 지금도 그렇다....) 고등학교 2학년으로서 쏜살같이 지나갈 나의 1년만큼이나 우리 가족의 한 해가 빠르게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