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경계의 철학

by 연월랑

햇빛이 부서지자, 강이 잠시 눈을 감았다.
바람은 물 위의 결을 따라 미세하게 흔들렸다.
물결 아래에서는 흙냄새가 피어오르고,
그 냄새 속에 오래된 숨결이 스며 있었다.
물은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파문이 햇살을 반사하며
무언의 대화를 이어갈 뿐이다.

누군가는 이 강을
남과 북을 가르는 선이라 말했지만,
물은 그런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흐를 뿐,
빛이 가리키는 쪽으로 천천히 몸을 맡긴다.

철조망의 그림자 아래에서도
물풀은 잎을 흔들며 속삭인다.
그 잎사귀가 닿을 때마다
잔잔한 물소리가 피어오른다.
풀잎 끝에서 맺힌 물방울이 햇살에 녹듯,
사람의 마음도 느리게 흔들렸다.
그 순간만큼은 경계가 사라진다.
세상이 하나의 호흡처럼 이어지는 듯했다.

밤이면 안개가 피어나
남쪽으로, 또 북쪽으로 흘러간다.
어디선가 새가 울고,
그 울음이 물결에 실려 멀리 번져간다.
경계는 사람의 머릿속에만 있고,
강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끝이 어디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나는 오늘도 물가에 앉아
흐름을 본다.
달빛이 철조망을 스치면
물 위의 그림자들이 천천히 흔들린다.
그때마다 마음속에도 미세한 물결이 일었다.
그 물결은 말없이 묻는다.
“너는 어디의 사람인가,
아니면 그저 흐름의 일부인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가슴 한편이 느리게 저려왔다.
물소리가 대신 흘렀고,
그 속에는 오래된 울음 같은 온기가 섞여 있었다.

입술 끝에 닿은 습기,
짠맛도 단맛도 아닌
경계가 녹은 맛이었다.
그 맛은 바람의 기억이었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풀벌레 울음이 그 뒤를 이었다.
그 맛 속에서 나는 잠시,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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