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 버그와의 추억

예루살렘에서의 첫 번째 만남

by 춤추는여름



베드 버그와의 첫 번째 만남




내가 이스라엘에 간 이유는 키부츠와 예루살렘 때문이었다. 키부츠(Kibbutz)는 이스라엘의 집단 농경 공동체로 외국인도 숙식을 제공받고 일 할 수 있다. 결과만 얘기하자면 나는 키부츠에 들어가는 건 실패했는데 생각보다 키부츠가 인기가 많아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의 첫 번째 목적을 잃은 내가 키부츠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린 곳은 예루살렘이었다. 그러나 현대적이지만 성스럽고 아름다운 그곳에서 뜻밖에 마주하게 된 악랄한 생명체 때문에 새롭고 신기하고 고생스러운 소중한 첫 번째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당시 나는 론니플래닛 한 권 덜렁 들고 여행을 다녔는데 그때가 애플에서 아이폰이 나오고 몇 년 후였던 것 같다. 나는 스마트 폰을 늦게 구입한 편이라 그 당시엔 스마트폰이 없었고 노트북을 들고 다니기엔 오랜 여행에 짐이 될 거 같아 전자기기는 디지털카메라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이런 내가 숙소를 구하는 방법은 여행지에 도착한 후 론니플래닛을 보면서 숙소에 직접 찾아가는 것뿐이었는데(이렇게 말하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일 것이다...) 일단 숙소를 찾게 되면 숙소가 꽉 차서 방이 없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머물곤 했다.(숙소의 예쁨, 스타일리시함, 편리함 보단 가방의 무게가 내 어깨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가이드북을 보고 찾아간 예루살렘의 첫 번째 숙소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호스텔이었는데 유럽의 어느 고성같이 돌을 쌓아 만든 벽과 크진 않지만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나무문이 내가 입구요 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카운터와 넓진 않지만 안락해 보이는 라운지가 보였다. 라운지에는 붉은색 러그와 소파가 세트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좌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나무로 된 탁자가 러그 중앙에 있었다. 그리고 어디 악기 인지는 모르겠으나 잼베 비슷하게 생긴 악기들이 빈 공간을 허전하지 않게 채워주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이슬람 스타일의 인테리어였던 것 같다.


나는 이 호스텔에서 총 5박을 했는데 이 때는 여행에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떠나고 싶으면 떠나는 여행을 했다. 그래서 처음 3일분의 숙박비를 지불하고 머물다가 나머지 3일은 새롭게 숙박비를 지불해야 했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3일 후 호스텔 주인장에게 3일 더 머물겠다고 말하니 방이 없단다.


"지금 방이 없는데 네가 원한다면 라운지 소파에서 자도 좋아. 그 대신 숙박비는 저렴하게 해 주고 방이 생기면 바꿔줄게 어떻게 할래?"

"그래 알았어. 라운지에서 잘게"


라운지에서 잔다는 게 좀 꺼림칙하였지만 금방 방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고 저렴하게 머물게 해준다는 말에 나는 흔쾌히 승낙하고 말았다. 공용 욕실에서 씻고 소파에 올라왔을 때 소파는 조금 불편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다른 숙박객들은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1층 라운지에는 나밖에 없었다. 조명은 은은하고 마치 큰 1인실을 빌린 것 같았다.


하지만 자고 일어났을 때는... 내 몸에 이상이 느껴졌다. 입술이 퉁퉁 부어 있었다. 마치 캐리커쳐에서 일부러 입술만 과장되게 그려 놓은 것 같이 제 자리에 있어야 할 아랫입술은 윗입술보다 3센티는 앞서있었다. 아무래도 벌레에 물린 거 같아 호스텔 주인에게 말하니 뭔가 잘못 먹어서 그런 거란다.(웃기는 소리...) 암튼 그 날은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해를 가기로 했기 때문에 일단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사해 관광 후 숙소에 돌아와 보니 여전히 방이 없다. 결국은 하루 더 라운지에서 묵기로 했다.


'이놈의 빨간 소파 벗어나고 싶다. 내일은 방이 나올까?' 다시 불편하게 잠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대략 새벽 2시쯤이었다. 이상하게 몸이 간지러워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일어나 보니 새벽 6시였다. 자고 싶었지만 몸이 간지러워서 깰 수밖에 없었는데 어둠 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입술이 댓 발은 더 나와있었다. 팔은 코끼리 다리 마냥 퉁퉁하게 부어있었고 피부는 뜨거웠다.


너무나 큰 변화에 너무 놀라서 나는 죽을병에 걸린 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호스텔 스태프에게 거의 울듯한 목소리로 근처에 병원이 어디냐고 물었다. 스태프는 벌레에 물린 거 같으니 걱정 말라며 병원을 알려줬다. 나는 '네가 의사야? 죽을병인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라고 속으로 욕을 하며 병원을 찾아갔다. 세상에 이역만리 타지에서 병원에 오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의사 선생님께 겁먹은 얼굴로 나의 증상을 설명했다. 의사 선생님은 세상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숙소에서 벌레에 물린 거 같네요. 당장 모든 물건을 소독해야 합니다. 약 지어줄 테니 드세요."


그렇다 말로만 듣던 베드 버그였던 것이다. 숙소로 당장 달려간 나는 호스텔 주인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벌레에 물려서 이렇게 되었다 어떻게 책임질 거냐 분노를 가득 담아 얘기했지만 나의 영어 실력으로 인해 나의 분노는 의도치 않은 공손함으로 가려져 버렸다. 그러나 그는 나의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을 보고도 별다른 말이 없이 쓱 자리를 비우더니 정말 커다란 밭에서 농약을 뿌릴 때나 쓸만한 크기의 살충제를 가져왔다. 그러더니 어깨에 떡하니 메고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다 가져 오란다. 숙박업소에서 농사지을 때나 쓸만한 크기의 살충제라니... 기가 막혔지만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 모를 녀석들을 박멸하고 싶었기에 가지고 있는 모든 물품을 소독했다.


소독 후 하루 더 머물 생각이었던 나는 어디서 머물면 되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 놈의 호스텔 주인은 라운지 빨간 소파를 보여준다. 정말 어이가 없어 숨어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벌레에 물린데 대한 적절한 보상은커녕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호스텔 주인에게 넌더리가 났다. 한국이었으면 온갖 욕을 퍼부어 주었을 텐데... 결국 머리 뚜껑이 열린 나는 짐을 싸서 호텔 문을 쾅 닫고 나와 버렸다.


하지만 그땐 몰랐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녔음을...

이 후로도 베드 버그와의 반갑지 않은 만남은 계속된다.



네 잘못은 아니지만... 네가 미웠다. 빨강소파야 잘 있어










베드 버그를 피하는 TIP!

1. 호스텔보다는 호텔이나 한인 숙소를 이용한다.(유럽 호텔의 경우도 베드 버그에 안전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호스텔보다는 아주 양호함. 한인 숙소의 경우에는 베드 버그가 발생할 경우 영업에 치명적이므로 대부분 관리가 잘된다.)

2. 호스텔의 공용 공간(라운지)에는 절대 앉지 않는다.(베드 버그가 방에는 없었더라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용 공간에는 있을 가능성이 90퍼센트 이상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당신의 연한 살을 물어뜯을 기회를 엿보고 있다.)

3. 꼭 공용 공간에 앉아야 한다면 천이나 나무로 되어있는 의자나 소파는 피한다.(베드 버그는 천이나 나무로 되어있는 곳에 산다고.... 나는 꼭 앉아야만 하는 경우에는 금속이나 플라스틱 일 경우에만 불안한 마음으로 앉을 수 있었다. 베드 버그에게 몇 번 당하다 보니 생긴 후유증...)

4. 후기에 베드 버그가 나왔다고 하는 숙소는 피한다.(어떤 사람은 괜찮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할 수도 있다. 그게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