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추억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고사성어로 역사가 무려 400년이나 된 단어이다. 400년의 시간이 지나고도 여전히 일상적으로 쓰이는 걸 보면 언제나, 어딜 가나 이런 사람은 있나 보다. 살다 보면 정말 많은 일을 겪고,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아직 25년의 세월만을 지난 나지만, 오래 살다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일했던 카페는 백화점 영업시간에 맞춰 운영이 시작되고 백화점 폐점 1시간 전에 운영이 끝나는 시간인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마감 직전까지도 손님들이 줄 서서 기다리곤 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던 무렵, 중년 고객이 방문했다. 카드를 내밀었고 나는 카드를 인식하고 어떤 음료로 하시겠냐고 물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음료 어떤 거 하세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이요~"
"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은 생각에..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한 아메리카노? 아 다시 물어보면 화낼 거 같은데..' 뒤에 서있는 고객들을 봤다. 다들 엥? 하는 표정인 걸 보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다시 여쭤봤다.
"고객님 따뜻한 아메리카노 말씀하세요?"
"아 거참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
"고객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신다ㄱ..?"
"그래 ~!!!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 아가씨 말귀 되게 못 알아듣네"
머리를 한 대 땡 맞는 기분이었다. 내가 말귀를 잘못 알아들은 거라고? 머릿속에는 '...내가 아메리카노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말귀 못 알아듣는다는 말을 들어야 하나..?' 하는 위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감정을 삭히기 위해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셨어야 했다.
누군가는 나를 이렇게 위로했다. "자기가 잘못 한 걸 알아서 그게 부끄러워서 괜히 더 그러는 것이라고.." 어쩌면 그것은 일련의 수치심인가 보다.
p.s 1.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건 뒤에 서 계시던 고객들이었다. 나 대신 '참내' 이러고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봐주셨던 분들.
p.s 2. 이 손님은 매번 방문할 때마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 하셨다. 나중엔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제공하는 노련함이 생겼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