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몸과 일에 대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나다움’을 말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육각형 인간이 화제가 되면서 남녀 불문하고 여러 겹의 기대와 규율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치 자동차에 기름이 떨어진 상태처럼 각자에게 주어지지 않은 부분을 결핍의 한 형태로 본다. 더 이상 달리지 못할까 봐 염려하듯이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어쩌면 ‘나다움’을 발견하기 가장 어려운 환경이다. 모두가 육각형에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에 나만의 각을 인정하기가 참 어렵다. 각자의 개성이 터부시되고 완벽이라는 잣대에 지나치게 스스로를 가둔다.
일례로, 살이 찌면 게으르다는 말을 듣고, 자기 관리를 잘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통한 체형과 마른 체형 너나 할 것 없이 말아다. 우리의 몸은 스스로의 것이기보다 사회가 서로 논평하고 거래하는 상품처럼 취급된다. 또한, 끊임없이 더 능숙한 사람이 되라는 압박은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그 위에 올라탄 순간, “나는 지금 충분한가?”라는 질문은 사치가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에게 맞는 일’이라는 말은 의미가 흐려지고, 어느 순간 우리는 ‘나에게 맞을 것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조정한다.
'나다운 삶'이란 이렇게 넘겨졌던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는 과정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저울질하는 대신에, 가지고 있다는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재봉된 옷에 억지로 몸을 꿰맞추지 않고, 나한테 맞는 옷을 직접 디자인하는 과정이다. 시대를 역행하는 것 같지만, 나다운 사람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멋스러움을 지닌다. 그렇다면, 나다움은 어떻게 발견되는가.
사회가 규정한 ‘괜찮은 몸’의 기준은 매년 새로고침되지만, 내 몸이 보내는 신호는 단 한 번도 나를 속인 적이 없다. 몸을 미화하거나 과대평가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더 붙일 것도, 덜어낼 것도 없이 ‘지금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기술이다. 거울 앞에서 사회의 시선을 투사하는 대신, 감각과 기능을 중심에 두는 일이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얼마큼 먹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내 몸이 외치는 소리를 존중한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역행하는 것은 불안함을 동반한다. 건강과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대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선택하고 즐기는 일은 다소 위험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몸은 건강과 다이어트라는 두 개의 축으로만 작동되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칼로리 계산이나 체중 그래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층위가 있다는 뜻이다. 음식을 선택하는 일은 단순한 섭취 행위가 아니라, 나의 선호와 필요를 구분해 내는 자기 표기법이다. 심지어 무엇을 먹느냐보다 ‘왜’ 그 음식을 선택하느냐가 더 중요한 순간도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식을 스스로 선택해 먹는 일은 방종이 아니라, 주도권을 되찾는 기술이다. 사회적 기준에 맞추기 위해 식습관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신호를 해석해 나에게 맞는 방식을 설계하는 과정. 건강도 다이어트도 이 과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지속 가능해진다.
직업을 정체성의 최종 형태로 삼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대신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들어간다. 업(業)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이 나를 소진시키고, 무엇이 나를 회복시키는지 구분하는 능력이다. 이 기준이 선 사람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이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게 합류한다. 이 감각이 자리를 잡으면 직업은 더 이상 ‘나를 소모시키는 시스템’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무대가 된다. 연봉이나 직함 같은 외부적 스펙보다, 나의 정체성을 살펴보게 된다. 단순히 능력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능력을 확장시키는 방향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로 나다운 업은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나를 점점 더 나답게 만들어준다. 예를 들어, 일상의 작은 결정에서도 이 감각을 적용할 수 있다. 같은 할 일이라도, 억지로 수행할 때는 에너지가 소진된다. 반대로, 내 리듬과 방식을 살려 계획하고 실행할 때는 에너지가 회복된다. 공부, 운동, 글쓰기, 사람과의 관계 모두 마찬가지다. 무엇이 나를 지치게 하고, 무엇이 나를 살리는지를 구분하고 활동을 배치하는 순간, 나다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일을 하는 방식과 그로부터 얻는 회복이다.
나다움을 발견하고 적용할 수 있는 분야는 몸과 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와 시간관리, 감정등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를 담고 있는 신체와 매일 반복되는 일이라는 것은 나다움이 발현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이것들을 다듬는 행위는 거창한 설계라기 보단 '타인 모드'에서 '내 모드'로 스위치를 옮기는 과정이다. 나다움이란 항거하고 역행하는 힘든 싸움이 아니라, 이렇게 단순한 재배치만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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