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얼굴을 탈환하다

전문가의 수용소를 부순 바살리아의 식탁

by 떨뇌지

만약 당신이 이탈리아에서 정신적 위기를 겪는다면, 마을 한복판에 있는 '정신건강 센터'로 안내받을 것이다. 그곳의 문은 잠겨 있지 않으며, 전문가의 지시가 아닌 이웃들의 촘촘한 연대가 당신을 맞이한다.

이것은 단순한 복지 정책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을 데이터로 치환하려는 거대 시스템에 맞서, 끝까지 '사람의 얼굴'을 포기하지 않았던 지능적 연대의 현재 진행형 보고서다.


아이히만의 병동: 전문가라는 이름의 무책임

1960년대 초, 이탈리아의 정신병원은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을 사회적으로 사형시키는 ‘격리 수용소’였다. 당시 법은 정신질환자를 '공공의 수치이자 위험'으로 규정했고,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순간 선거권과 재산권 등 모든 시민권은 박탈되었다.

그 병동은 잔혹한 의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사유를 외주화 한 성실함, 아이히만의 방식으로 작동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환자를 고통받는 인격이 아닌, ‘치료 데이터’와 ‘관리 번호’로 치환했다.

그들은 성실했다. 하지만 그 성실함은 환자의 삶이 아닌, 시스템의 규정을 지키는 데에만 발휘되었다. 환자가 쇠창살 안에서 무너져갈 때, 전문가들은 "의학적 방침"이라는 사유의 외주화 뒤로 숨어버렸다. '전문적 무책임'이라는 제복을 입고, 누구도 죄책감 없이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거대 기계의 부속품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식탁의 스파크: 데이터를 ‘인간성’으로 복원하는 자각

이 견고한 수용소의 벽을 허문 것은 거창한 법안이 아니라, 한 사람의 질문과 결심이었다.

베네치아 인근의 정신병원의 젊은 의사, 프랑코 바살리아는 부임 첫날, 환자들의 명단과 함께 건네진 병동의 열쇠를 거부했다. 그것은 인간을 가두는 판단에 대한 거부였다.

그는 흰 가운을 벗어던지고 환자들의 식탁에 앉아, 시스템이 지워버린 ‘인간의 얼굴’을 직시했다.


“나는 당신을 치료하러 온 전문가가 아니라, 당신의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하는 인간으로 여기 앉아 있습니다.”


그 선언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던 선은 식탁 위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의사가 환자의 눈을 맞추며 같은 숟가락을 드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관리 대상인 ‘데이터’가 아니라 고통을 느끼는 ‘개별자’로 접속되었다. 이는 ‘사유 없는 성실’에 익숙해져 있던 전문가들이 다시 주체적 책임을 회복한 '판단 주권의 탈환'이었다.



시냅스의 밀도: 주민들이 만든 ‘공존의 그리드’

이 ‘주체적 책임’의 전염은 병원 담장 너머 주민들에게로 번졌다. 바살리아는 주민들을 병원 안으로 불러들였고, 환자들을 마을의 식당과 광장으로 내보냈다.

주민들은 바살리아가 던진 선택지에서 시스템이 배급하는 ‘격리를 통한 가짜 안전'보다 내 이웃의 결핍을 직시하는 ‘불편한 공존’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선언에 머물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환자들과 함께 세계 최초의 사회적 협동조합(CLU)을 조직하며 공존을 삶의 구조로 구현했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의 ‘비정상성’을 삶의 한 조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전문가가 “위험하다”라고 낙인찍은 이들을 향해 주민들이 문을 열자, 이데올로기의 낙인은 시냅스의 밀도에 밀려 소멸했다. 주민들은 더 이상 전문가의 판단에 자신을 맡기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관찰하고 대화하며, ‘우리 중 누구도 온전하지 않다’는 결핍의 연대를 선택했다. 덴마크 농부들이 풍력 터빈의 시냅스를 이었듯, 트리에스테 주민들은 고통에 반응하는 인간적 시냅스를 이어 나갔다.



마르코 카발로와 바살리아 법: 정의권을 탈환한 지능

1973년, 주민들의 시냅스는 수용소의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왔다. 부서진 틈에서 나온 것은 환자들이 아닌 커다란 조형물이었다. 환자들과 주민들이 함께 만든 푸른 목마 '마르코 카발로(Marco Cavallo)’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병원 좁은 문 안에 갇혀 있던 환자들과 주민의 연대의 얼굴이었다. 그들의 연대는 마르코 카발로에 올라탄 채 거리로 행진했고, 시스템이 인간의 행진을 막을 수 없음을 몸소 증명했다.

푸른 목마의 행진은 시민과 환자의 연대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제도적 권리 회복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 되었다.

1978년의 바살리아법(180호 법안)은 단순히 병원 문을 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전문가에게 외주 주던 '무사유의 시대’를 끝낸 사건이었다. 시민들은 ‘누가 인간인가’를 결정할 권한을 전문가의 손에서 서로의 얼굴 위로 되돌려놓았다.


지워진 담장, 흐르는 일상: 오늘날 이탈리아가 건네는 답

바살리아법이 통과된 지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이탈리아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폐쇄형 정신병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예언했던 사회적 붕괴나 광기의 범람은 없었다. 대신 지역사회의 촘촘한 '정신건강 서비스망'과, 환자가 아닌 이웃으로 살아가는 개별자들의 일상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오늘날 이탈리아의 환자들은 수용소의 복도 대신 마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협동조합에서 일하며,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잔다. 위기가 닥치면 전문가의 '격리 명령'이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2SQ 네트워크'가 가동된다. 이는 서로의 얼굴과 일상을 관찰하며 대응하는 지역 기반 상호지원망이다.

이탈리아의 제도는 인간을 격리하고 관리하는 비용보다, 공동체 안에서 주체로 살아가게 하는 시냅스의 밀도가 훨씬 더 강력하고 효율적임을 보여준다.


바살리아의 혁명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이탈리아의 병동 없는 풍경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여전히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전문가의 성벽 뒤에 숨어 있는가, 아니면 낯선 이웃과 식탁을 공유하며 스스로 존엄의 그리드를 짜나가고 있는가.


연대는 수용소를 부순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수용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유의 근육을 함께 키워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여전히 누군가는 담장 밖으로 걸어 나온 '비정상성'을 공포로 응시한다. 그들은 '격리된 평화'로 돌아가자고 말하며, 공존의 피로를 '혁명의 한계'로 해석한다. 연대는 갈등 속에서도 이를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감당하는 주체들의 결심이다.


바살리아법 반대론자들은 역설적으로, 사유의 주권을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지독하고 끈질긴 투쟁인지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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