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냅스가 일궈낸 승리의 조각
2026년 1월 29일, 국회 본회의 전광판에 찍힌 '학교급식법개정안'에 대한 229개의 찬성표는 입법자들의 시혜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스템이 사유를 멈추고 성벽의 빗장을 걸어 잠갔을 때, 포기하지 않고 서로의 결핍을 연결한 '주체적 시냅스'들이 만들어낸 파동이었다.
이 거대한 반전의 서사는 2017년의 어느 날,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사회를 선언했던 바로 그 시기, 성벽 안 야당의원의 오만한 시선이 던진 모멸에서 시작되었다.
파업에 나선 학교급식 노동자들을 향해 던져진 “그냥 밥 하는 아줌마”라는 한 정치인의 발언은 노동자를 언제든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취급하는 시스템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러나 이 비하 발언은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을 ‘주체적 도발자’로 깨우는 트리거가 되었다. 그들은 시스템이 부여한 납작한 이름표를 거부하고, 자신의 노동이 가진 ‘생명성’을 증명하기 위해 성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정부 내에 '공무직위원회'가 설치되자 성벽 안팎을 잇는 시냅스가 마련되는 듯했다. 하지만 국가가 깔아준 판 위에서 연대는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작동하는 ‘구조적 절차’에 가까웠고, 개인의 사유는 그 틀 안에서 조정되고 관리되었다.
2023년 3월 31일, 운영 기한 만료와 함께 공무직위원회가 폐지되자 사람들은 연대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연대는 하향식 판이 걷힌 바로 그 지점에서 얼굴을 드러냈다. 노동자들의 주체적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024년 기간제 노동자들이 수당 권리를 인정받은 일련의 성과들은 시스템의 보호 없이 오직 주체들의 연결로 얻어낸 결과였다. 그것은 바로 2SQ(연대 지능)이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시스템이 급식노동자들을 다시 ‘밥 하는 아줌마’의 명칭 아래 가두려 할 때, 그들은 동료들의 ‘폐암 진단서’라는 날것의 언어를 들고 광장에 섰다.
그리고 8년 전의 모멸적인 언어는 2026년 ‘조리사’라는 법적 지위 획득과 학교급식법 개정안 통과라는 대반전으로 뒤집혔다.
이 승리는 성벽 밖의 비명에 사유를 깨운 성벽 안의 개인들이 응답했기에 가능했다. 시스템이 방관할 때, 노동자들은 스스로 시냅스가 되어 시민들과 접속했고, 그 에너지는 성벽 내부의 조력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결국 229명의 찬성 버튼은 이념의 승리가 아니라, ‘고통받는 개별자의 얼굴’을 마주한 주체적 각성들이 모인 결과였다.
연대는 국가가 깔아준 판 위에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판이 사라지고 성벽이 높아질 때, 서로의 결핍을 붙잡고 비명을 지르며 끝내 시스템의 빗장을 열어젖히는 지독하게 개인적이고 주체적인 연결이다.
2017년의 모멸을 2026년의 성취로 바꾼 것은 거창한 구조가 아니라, 사유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살아있는 시냅스’들이었다.
** 2SQ(Synaptic Solidarity Quotient) :
지속가능한 사회에서의 핵심능력으로,
타자의 결핍이 나의 결핍과 공명할 때 발생하는 연민의 연결 능력.
주체들의 사유를 공명 시켜 집단적 판단과 사회적 응답을 만들어내는 능력. 연대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