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감 리베 Nov 11. 2021

‘추억으로 가는 가요 톱 텐’이 열리던 그날...

승일희망재단의 어느 멋진 날의 기록

얼마 전, mbc 라디오 양희은 서경석입니다라는 프로그램을 듣다가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 사연을 보내게 되었다. 글 쓰는 거 참 나와 거리가 멀다 생각했는데 종종 내 생각들을 글로 옮겨보다 보니 이제 그리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은 않게 되었다.


사연에 채택이 되어 생방송으로 라디오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다. 나의 글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듣다 보니 지난 시간들이 주는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하는 일 그리고 지금도 이모저모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조금이라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글이었는데 그 역할을 좀 했으려나!!

방송에서 소개된 나의 글 '추억으로 가는 가요 톱 텐이 열리던 그날'을 여기에 기록으로 남겨본다.




어쩌다 보니 3,000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기획하게 되었고, 이끄는 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그날의 내 모습이 나에겐 영 어색하기만 했고 너무나도 어리버리 하게만 느껴졌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거라지만 내가 어쩌다 그 자리 그곳에 서 있었던 것일까! 난 루게릭병으로 20년째 투병 중인 남동생을 둔 누나이다. 연세대를 거쳐 기아자동차 농구 선수였던 동생은 1999년 농구 지도자로서의 꿈을 품고 홀연히 미국 유학을 떠났고, 2002년  봄 국내 최연소 프로농구코치로 금의환향하듯 귀국하였다. 그리곤 같은 해 같은 달 4월 루게릭병 판정을 받았다. 3년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처럼 주어진 최연소 프로농구코치라는 타이틀은 행복에 겹기만 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을 체 누려보기도 전에 동생은 세상에 서 가장 안타깝고 불운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각종 언론과 세상으로부터 동정 어린 시선을  받게 되었다. 가장 행복하고 화려해야 할 순간에 죽음을 앞에 둔 인생 가장 끝 나락에 서서  말이다.


2002년 앞으로 2~3년밖에 살 수 없을 거라는 의사의 사형 선고와도 같은 루게릭병 판정  앞에 부모님과 누나인 나는 어떡하든 기적을 찾는 절박한 심정으로 동생을 살려보겠다며 혼신을 다할 무렵 동생은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와는 다른 엉뚱한 길을 가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을 불쌍한 사람들 바로 루게릭병 환우와 가족을 위해 살고 싶다고 했다. 세상에나! 저보다 더 힘들고 불쌍한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건강을 챙기려 하기보다는 꿈을 좇는 동생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건강했던  모습에서 하루하루 무너져가는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난 너무나 싫었다.


그러는 사이 루게릭병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생의 몸에서 하나둘 움직임을 멈추게 했고, 시간 이 흘러 동생은 정신은 온전한 채 결국 병상에서 꼼짝 할 수 없게 되었다. 동생이 품었던 꿈은 루게릭병 환우를 위한 전문 요양시설 건립이다. 비록 병상에서였지만 수년간 간절히 바라며 쌓아온 꿈이 물거품처럼 무의미하게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동생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에 난 2011년 비영리재단법인 승일희망재단을 설립하게 되었다.


17년간 전업주부로 살아온 비영리재단법인에 대해 그야말로 일자무식이었던 내가 말이다. 피하고만 싶었고 외면하고 싶었던 루게릭병을 이제는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단순히 동생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루게릭병 환우와 가족을 생각할 때 우리들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기적인지를 알리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치의 루게릭병으로 빼앗겨버린 그분들의 평범한 일상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일이 루게릭요양센터 건립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고 건립에 필요한 기금도 빨리 마련하고 싶었다.


처음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통해 마음과 생각을 나누었던 작은 기부 콘서트가 계기가 되어 점점 규모를 키운 루게릭 희망콘서트는 승일희망재단의 모금 캠페인으로 자리를  잡았고 벌써 열두 번 진행되었다. 여덟 번째로 진행되었던 2015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루게릭 희망콘서트는 ‘추억으로 가는 가요 톱 텐’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고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깊어가는 가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10월의 이 즈음만 되면 어김없이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기억되곤 한다.


 



루게릭병 환우인 동생 박승일 한 사람의 꿈을 응원하며 1, 2, 3층 객석을 가득 메운 3,000 명의 관객들 앞에선 난 긴장으로 덜덜 떨며 작은 마이크를 의지한 채 소감을 전했었지!  1990년대 대중가요가 다시금 선풍적인 인기를 이끌었던 그 당시 인기의 중심에 있던 가수  임창정, 룰라, 조성모, DJ DOC, Re.f, 소찬휘, 영턱스클럽, 김원준, 박미경, 왁스, 지누션과  김제동 씨의 사회로 우리 콘서트에 모두가 재능기부로 출연해 주었었지! 객석에는 휠체어에  앉은 동생이 자신의 꿈을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힘찬 박수와 환호성을 듣고 있었지! 대관 시간을 훌쩍 넘겨서까지도 가수들의 열정적인 공연과 자리를 떠날 줄 모르던 관객들의  열기는 기적의 한 장면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기억되기에 충분했던 한 날이었지!




지금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은 고스란히 내 기억 속에 담겨있다. 관객 속 동생의 휠체어에  앉은 모습은 한없이 약하기만 했지만 그 모습보다는 그가 품고 있는 꿈이 너무나 강인했기에 내가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처럼 많은 사람들 또한 꿈을 가진 동생을 응원했고 함께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이유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그로부터 벌써 6년의 시간이 흘렀다. 관객 속 동생 곁에 항상 함께 계셨고, 매번  콘서트가 끝날 때면 등 다독이시며 애썼다 칭찬해주셨던 아버지도 지난해 하늘나라로 떠나셨고, 우리들의 겉모습도 많이 변해가고 있지만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건 지금도 동생이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볼 때면 언제나 재단의 일을 묻는다. 이제 곧 고지에 바로 닿을 듯 닿을 듯하면서도  많은 일들로 인해 애가 타기도 하지만 꿈이 있다는 것이 동생이 살아가는 힘이 되었고 그  꿈을 이루는 것이 승일희망재단의 존재의 이유이기에 오늘도 난 이 자리에 서있다.


다시금 루게릭 희망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날 루게릭병 환우 한 사람의 꿈이  우리 눈앞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기쁨의 소식을 나누고 싶다. 그날이 하루속히 우리  곁에 찾아오길 또 루게릭병 환우와 가족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평범한 일상이 온전히  회복되길 간절히 바라며 잠시 잠깐 2015년 10월의 그날을 다시 한번 생생히 떠올려본다.

승일희망재단 http://www.sihope.or.kr


작가의 이전글 막막하기만 했던 2002년 그때를 떠올리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