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가 세 개나 생겼다~ 언제쯤 올 수 있노~?
올 때 맞춰서 오이무침해 놓을게~"
일상이 바쁜 딸에게 전화로 스케줄을 물어보시는 엄마다.
점심 먹고 엄마집 도착.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백도조림을 한 그릇 주신다. 올해 처음 맛보는 엄마의 백도조림. 복숭아에서 엄마의 향이 난다. 에너지 가득한 사랑을 먹는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수다 떨듯이' 그간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 주신다. 요양병원에 계신 큰 이모 면회 이야기, 큰 외숙모 오징어젓갈 갖다 드린 이야기, 친하게 지내는 분의 딸이 출산한 이야기 등.
언젠가부터 속에 있는 이야기도 한 번씩 하신다. 오늘은 "작은 이모가 태어났을 때는 할머니 하시던 장사가 잘 되고 못 받던 외상값도 들어오고 했다는데, 엄마가 태어나서는 쌀도 떨어지고 형편이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 하면서
그때부터 엄마는 '내 삶은 내가 개척하며 살아야겠다' 하고 다짐했다 하신다.
엄마는 요즘 치과치료로 오백만 원이 넘는 돈을 직접 내고 계신다. 일정금액의 현금을 내고, 나머지 금액은 언니의 신용카드로 결제한 후 돈이 생길 때마다 언니에게 조금씩 갚고 계신다.
언니는 엄마에게 '그냥 놔두세요, 엄마' 하고 몇 번이나 말해도 엄마는 자식한테 손 안 벌리고 당당하게 살란다 하신다.
치과돈 갚는다고 생활비까지 줄여 쓰시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고, 딸이 돼서 엄마 치과치료비도 척척 못 내드리는 지금의 내 형편에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려온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엄마, 긍정적인 마음에 의지도 강한 엄마를 본다. 조금은 흐트러져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직도 고민하는 나를 본다.
오이무침에 백도조림, 미숫가루를 받아오며 생각한다. 엄마는 나에게 쉼이고 에너지이다. 엄마의 피를 이어받은 내가 이리 약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강하게 먹자 다짐한다. 일상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자. 엄마에게 당당한 딸이 되기 위한 오늘의 한걸음을 내디뎌보자.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