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는 도대체 왜?

예술은 무엇을 위해 하는가

by Parkers

고전파 음악의 엄률과 근대 낭만주의 음악의 형식에 익숙한 나에게 드뷔시의 음악은 시종 낯설기 그지 없었다. 물론 나의 음악적 취향이 편협해 거부감이 든 탓도 일부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파악하기 힘든 음악이 또 있을까 싶었다. 조성진의 신보에 수록된 드뷔시의 ‘영상’(images), ‘어린이 차지’(children’s corner), ‘베르가마스크 모음곡’(Suite Bergamasque)은 마치 한 손으로 움켜쥐자마자 흔적만 남기고 빠져나가는 물처럼, 머릿속에 음표들의 잔상만 남기고서 무참히 달아나버렸다.

2017년 10월 발매된 조성진 드뷔시 앨범

음악이라는 현상을 언어로 포착하고 재현하는 것이 음악 비평의 역할이라면, '영상'은 비평의 그 어떤 기준틀에도 포섭되지 않는 괴상한 주제였다. 그의 곡 전체에 깔린 기이한 템포, 불규칙한 선율, 독특한 화성은 마치 붙잡히지 않으려는 자가 붙잡으려는 자와 벌이는 지난한 수싸움처럼 느껴졌다. 나는 드뷔시를 이해하기 위한 형식주의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는 나의 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매번 불규칙하게 약동하며 내 상상의 오선지에 불가해한 파문들만 남기고서 사라져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제목을 단서 삼아 드뷔시의 곡에 흐르는 분위기를 추론하는 것뿐이었다.


가령, ‘어린이 차지’(Children’s Corner)는 ‘어린이들의 뛰노는 모습 혹은 생동감에 대한 인상을 기록한 곡이겠군’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식으로라도 곡을 톺아보면 드뷔시의 인상주의에 대한 일말의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일말의 희망과, 공연한 노력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좌절이 교차하는 가운데 문득 이 작곡가는 자신이 파악되는 걸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드뷔시에 접근하는 방법 자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풍문에 따르면 드뷔시는 자신이 인상주의 작곡가로 불리는 걸 탐탁치 않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의 클래식 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음악에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면 ‘인상’이라는 말만큼 어울리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인상은 어떤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느낌이다. 당연히 느낌의 결들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그 주관적 인상마저도 그 시대를 관장하는 에피스테메 아래에서 보편적 언어로 기록하고자 한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주로 외면 혹은 성토 당할 것이라는 데 대한 두려움과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한 근심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근대 이전까지는 대개 음악가들이 귀족이나 왕족의 후원을 통해 생계를 꾸렸기 때문에 자신의 개성보다는 주문자의 요구에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저마다의 인상이 지닌 결의 차이가 종종 시대의 문법에 맞게 편집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음악사의 경우, 바로크 시대에는 폴리포니(polyphony)와 지속 저음 (Basso continuo) 이, 고전파 시대에는 대칭 선율과 규칙적인 리듬을 통한 정형미가, 낭만파 시대에는 인간성의 해방과 감정의 정돈된 표출이 각 시대의 에피스테메였다. 그 에피스테메 아래에서 작곡가들은 자신의 주관적 느낌을 어떨 때는 지속 저음으로, 어떨 때는 대칭 선율로 짜맞춰 넣곤 했다. 주관적 인상이 시대성을 띠면 다수의 사람에 의해 소비되지만 비시대적인 태도를 취하면 낡거나 전복적인 것으로 여겨져 외면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근대 이전까지 진정한 의미의 주관적 인상은 등장하기가 참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의 전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비시대적인 것이 필수적이다. 따지고 보면 낭만파 음악 역시 처음에는, 고전파 시대의 음악적 약속이었던 정형률에 맞서 비시대적인 요구로 등장한 거라 볼 수 있다. ‘사그라드는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비시대적 주제를 외치던 낭만파 음악가들은, 좀 더 분방한 리듬과 선율을 통해 인간의 주관적 감정을 대변하려 했고 점차 시대적인 음악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의 양상이 새로운 양상에 밀려 나가는 것은 모든 현상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클로드 드뷔시(Claude-Achille Debussy, 1862. 8. 22 ~ 1918. 3. 2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볼 때 음악은 적어도 인상파 이전까지는, 시대에 따른 경향성은 달라도 음악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가질 수 있는 교집합이 있다. 그건 바로 형식적 순환성이다. 다시 말해. 음악이라면 어느 한 점에서 출발하여 발전부를 지나 전환을 거친 뒤 다시 최초의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A-B-(C)-A구성을 취하기 마련이다. 이런 구성은 바흐, 스카를라티와 같은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의 곡에서 가장 뚜렷하며, 낭만주의 시대의 멘델스존이나 쇼팽 등도 한두 번의 전환 및 변주를 거쳐 시작부로 되돌아오는 순환적 구성을 취한다. 왜냐하면 그런 구성을 취해야만 음악의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뷔시의 음악은 사뭇 다르다. 음악의 정의를 박자, 선율, 화성이 일정한 법칙과 형식의 순환 아래 ‘종합’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드뷔시의 음악은 종합이 아니라 ‘분산’을 지향한다. 그가 사용하는 화성이 낯선 종류일 뿐만 아니라, 출발점에서 시작된 화성들이 출발점으로 되돌아올 여지를 별로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감상자들이 그의 음악을 선율과 리듬에 의거해 분석적으로 듣지 못하도록, 마디를 불규칙 분할하고 선율의 선이 연속되지 못하도록 작곡했다. 또한 앞서 말했듯, A-B-(C)-A 와 같은 구성 중 C(정점)에서 흔히 나타나는 악곡상의 긴장감도 일부러 피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대상에서 느껴지는 순간적인 인상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력했으며, 그런 이유로 그의 곡엔 낯선 암시와 환상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거라고 한다. 그런 탓에 ‘영상’과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을 들어보면 그가 나타내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드뷔시는 정말 단지 주관적 인상만을 드러내기 위해 곡을 썼을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하나 없이?

드뷔시 달빛 악보 첫장

생각해보면 모든 예술가들은 대상의 ‘본질’에 천착한다. 문자로든 음악으로든 이미지로든 예술가들은 늘 어떤 대상의 본질에 닿겠다는 일념 아래 예술적 작업들을 해나간다. 그러나 작업 결과물은 늘 대상의 본질과 괴리되기 마련이다. 본질을 보여주지 않고 도망가버리는 대상과, 어떻게든 대상의 본질을 묘출해내겠다는 예술가들의 집념은 늘 어긋나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끝없이 방황하곤 한다. 방황의 끝에 예술가들이 내린 잠정적 결론은 작위적인 모든 과정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대상을 ‘나’의 의식이나 의도, 지식, 규범에 맞춰 작위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대상에 좀 더 가까워지겠다는 것이다. 그럴 때 남는 것은 온갖 종류의 불규칙, 불안정, 무질서뿐이다. 물론 그건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본질이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질서함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이고 핵심이다. 마찬가지로 인상주의 작곡가들은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각종 음악적 규칙들을 배제하고, 대상이 불연속적인 리듬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집중하려 했던 것이다. 드뷔시는 음악을 통해 바로 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 과정을 말하는 데 있어서 화성과 리듬, 템포와 조성 체계처럼, 종합을 위한 체계와 절차는 드뷔시 자신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은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별로 사로잡지 못했던 것 같다. 추측컨대, 드뷔시, 라벨 같은 인상주의 작곡가들이 음악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고 비교적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인상주의 작곡가들은 낭만파처럼 한 시대를 넘어 다른 시대를 개화시킬 정도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해 비시대적인 것으로 남았다. 그러나 드뷔시가 계통을 부여하려는 논리적인 작곡을 피하고 대상의 본질에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Claire de lune’ 같은 곡에서, 비록 그 번역어가 ‘달빛’이라는 걸 모른다고 하더라도, 음악적 규칙을 통해선 느낄 수 없었을 발코니의 달밤 풍경을 체험할 수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