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예스준 Nov 18. 2022

주 4일제 회사에 입사했는데요. 퇴사했습니다.

'워라밸'은 거들 뿐

2021년 3월, 나는 주 4일 근무제(이하 주 4일제)를 시행하는 한 기업에 입사한다.


아쉽게도 입사 후 인턴 기간 6개월은 주 4일제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던 덕분일까. 생각보다 6개월은 금방 지나갔고, 정규직이 된 입사 7개월 차부터 바로 주 4일제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었다. 처음엔 '입사 1년 차도 안 된 직원이 정말 매주 하루씩 출근하지 않아도 될까?' 생각했다. 업무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기에 상사들의 눈치도 보였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주 4일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고, 덕분에 전혀 눈치 보지 않고 단 한 주도 빠짐없이 일주일에 4일만 근무할 수 있었다.


그렇게 6개월의 인턴 기간을 제외하면 약 1년 2개월을 일주일에 4일만 근무했고, 1년 8개월 차에 나는 퇴사를 결심한다.


*MZ세대 구직자 중 무려 66.5%가 괜찮은 일자리의 판단 기준으로 일과 삶의 균형이 맞춰지는 일자리, 즉 '워라밸'을 꼽았다고 한다. 주 4일제는 감히 워라밸의 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혹자는 이를 '꿈의 제도'라 부르기도 한다. 제20대 대선에서는 한 후보가 이를 공약으로 내세워 주 4일제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기도 했다. (*MZ세대 구직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진행한 일자리 인식 조사 결과, 복수 응답)




우리 회사 복지? 별 거 없어. 주 4일제 정도?

주 4일제는 기대 이상으로 달콤했다. 일주일에 하루를 통으로 쉴 수 있는 복지는 상상만으로도 모든 직장인의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하다.


모든 복지가 그렇듯 주 4일제 역시 '부바부(부서 by 부서)'가 존재했는데, 우리 부서는 다행히 웬만하면 각자 원하는 요일에 쉴 수 있었다. 팀 전체 회의가 있거나 본인에게 업무가 유독 많이 쏟아지는 날('보고 지옥'에 빠지는 월초의 월요일 등), 같은 파트의 직원이 경조사로 출근하지 못 하는 날 등을 제외하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내가 쉬고 싶은 날을 하루 정해 쉴 수 있다.


얘기를 들어보면 쉬는 날에 취미·여가활동을 하는 직원들이 가장 많았고, 모두가 일하는 시간이라 한산한 은행이나 병원, 미용실에 다녀오는 직원들도 많았다. 어떤 직원은 평일에 눈썹 문신을 하고 나타나기도 했고, 베이킹 원데이 클래스(하루 동안 한시적으로 개설되는 수업)에 다녀왔다며 직접 만든 빵과 쿠키를 나눠주기도 했다. 월요일이나 금요일을 쉬는 날로 정한 직원은 가까운 여행지로 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나 역시 가장 많은 시간을 취미·여가 활동을 하는 데 할애했다. 집에서 밀린 독서를 하거나 혼자 영화관이나 전시회에 다녀오기도 했다.


주 4일제가 특히 소중한 직원은 다름 아닌 어린 자녀가 있는 직원이다. 예쁜 아이의 모습을 1분 1초라도 더 눈에 담고 싶은 '육아맘·육아대디' 직원들은 누구보다 쉬는 날을 의미 있게 쓰는 듯 보였다. 주 4일제는 자녀가 있는 직원에게도, 그 직원의 자녀에게도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한 복지 제도일 것이다. 경쟁사에서 한창 커리어 상승곡선을 그리던 한 상사는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싶어서 이 회사로 이직했다고 한다. 그만큼 주 4일제는 곧 직원들의 삶이자 이 회사의 정체성, 경쟁력인 셈이다.



근데 진짜 4일만 출근해?

주 4일제 회사에 다닌다고 이야기하면 주위의 반응은 부러움과 의심으로 나뉜다. '주 4일제라니 네가 제일 부럽다!'와 '근데 진짜 4일만 출근해?'의 반응이 그것이다. 직장인 친구들끼리 모이면 각자 몸담고 있는 회사의 장단점을 주제로 이야기하곤 하는데, 내가 우리 회사의 단점을 얘기할 때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넌 그래도 주 4일이잖아'라며 내 하소연을 철없는 투정쯤으로 넘긴다. 하루는 주 5일 재택근무인 '풀재택' 직장에 다니는 친구에게 부럽다고 했다가 '주 4일제가 할 말은 아니다'라며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재택근무도 어쨌든 근무니까 하루를 통으로 쉴 수 있는 주 4일제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 4일제의 장점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만, 일주일에 하루를 통으로 쉬는 것만이 주 4일제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저 XX를 3일만 봐도 된다

내가 싫어하는 상사와 쉬는 날이 겹치지만 않으면, 그 상사를 일주일에 딱 3일만 봐도 된다. 그러니까, '내가 하루 쉬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쟤가 하루 쉬어서 좋은 것'도 있다는 얘기다. 이 장점을 가볍게 생각하고 웃을 수도 있겠지만 끔찍하게 싫어하는 상사를 둔 부하 직원이라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아주 중요한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내 바로 옆자리는 연차 차이가 많이 나는 상사였는데, 상사가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출근의 부담이 훨씬 줄었다.


매월 초, 주 4일제를 시행하지 않는 회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 벌어진다. 각자 이번 달에 쉬고자 하는 요일을 모두가 열람할 수 있는 근태관리 페이지에 기재해야 한다. 불편한 상사와 요일이 겹치지 않기 위해 조용한 눈치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다음 달은 무슨 요일에 쉬세요?" 하루라도 얼굴을 덜 보기 위해 필요한 질문이다. 지금 막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상사가 있다면 상상해보라. 저 XX를 일주일에 딱 세 번만 보면 된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지 않는가?



주 4일제도 막지 못한 퇴사

주 4일제 회사를 떠올리면 모든 직원이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근무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다닌 지 2년도 채 안 된 이곳에서 주변 동료들이 줄줄이 떠나가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고, 나도 나왔다.


우리가 직장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단순히 근무 '시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진짜 퇴사를 결심하게 만드는 스트레스는 보통 직업윤리나 가치관으로부터의 괴리에서 비롯된다. 이 스트레스는 일주일에 4일만 출근한다고 해서 결코 해소할 수 없다.


애사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제아무리 달콤한 주 4일제라 할지라도 더 나은 직장을 향한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매월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과 충분한 휴식 시간이 보장되는 직장에서 적당히 안정을 추구하며 남아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없는 곳에서 안정을 추구하기에는 내 잠재력과 젊은 나이가 아까워 사직서를 꺼내 들었다.


이제는 안다. 워라밸은 일자리를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소임이 틀림 없지만, 이 회사를 다녀야 할 절대적인 이유가 되어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주 4일제에서 주 0일제 백수가 되었지만, 회사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의미'를 부지런히 찾아 나서고 있는 요즘이다.




P.S.


#1.

구체적인 퇴사 이유를 적었다가 삭제했다. 현재 주 4일제를 시행하고 있는 기업이 많지 않아서 구체적인 업무 내용을 적으면 어느 기업인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해당 기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과 혹시라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모두 지웠다. 분명한 건, 여느 직장인들의 퇴사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내가 왜 퇴사했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를 위해 이유를 열거해 본다. 궁금증 해소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 회사에 기여하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 때
2.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때
3. 새로운 시도를 원천 차단하는 상명하복식 업무 체계가 반복될 때
4. 가까운 지인에게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없을 때


#2.

버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버티는 것도 능력이라며 조언해 주는 분들의 마음도 잘 안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경쟁을 뚫고 들어온 회사에서 사무직 아르바이트생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 내게 무작정 버티라는 말은 상당히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어떤 크기의 꿈을 꾸는지도 모르면서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라는 조언을 하려거든, 부디 속으로 삼켜주길 바란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