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을 무겁게 만든 건 이유가 있어서일 게다
by Yeslobster Feb 14. 2023
ps
아버지가 하루는 장기판 앞에 나를 불러 앉혔다. 열 판이면 열 판 아버지는 외통수에 몰려 쩔쩔매었고, 나는 별 생각 없이 남들이 늘 하는 대로 따먹은 상(象)이나 마(馬) 따위를 딸그락 거리며, 장기 두는 사람 어디갔나, 하고 약을 올렸던 것인데 그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하며 장기판이 그만 박살나고 말았다. 이놈의 자식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나중에 혼자 있을 때 가만히 생각해보면 장기판이 너무 가벼워서 장기를 너무 오래 두다보면 사람도 그렇게 경망스러워지는가보다 싶어, 그다음부터는 아버지하고 장기는 안 두고 바둑만 두기로 마음에 다짐을 두었던 것이다.
<정희성, '맞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