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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Oct 10. 2022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날린 하이킥

영화 '세 얼간이'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제겐 인도영화의 입문작입니다. 동시에 많은 사람을 인도 영화의 매력에 빠지게 한 영화이기도 하죠. 개봉 당시 ‘아바타’를 꺾고 811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흥행 수익을 올리며 역대 인도 영화 중 흥행 순위 1위로 올라섰는데요. 재미, 감동, 교훈까지 모두 잡은 영화 ‘세 얼간이’입니다.  


(왼쪽부터) 라주 역의 셔먼 조쉬, 란초 역의 아미르 칸, 파르한 역의 마드하반. 영화 ‘세 얼간이'의 세 얼간이들.


비행기를 타고 막 이륙하려던 남자. 휴대전화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고 안절부절못하는데요. 막 이륙하던 비행기에서 거품 물고 쓰러진 남자는 끝내 비행기를 돌려세웁니다. 급히 휠체어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지던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는 냅다 출구를 향해 달리는데요.


남이 예약해둔 택시를 잡아탄 그는 친구에게 전화를 겁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파르한(마드하반 분). 다짜고짜 “란초가 온대”라는 한마디로 바지 입는 것도 잊은 채 불려 나온 남자는 라주(셔먼 조쉬 분)입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대학교 옥상이었습니다. 동기 차투르(오미 베이디아 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죠. 자신의 직장과 돈, 집 등 지금 얼마나 잘 사는지 자랑을 늘어놓던 차투르는 대학 때 한 약속 ‘누가 더 잘 사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이 자리에 불러모았는데요. 정작 란초는 오지 않았죠. 오직 란초를 보기 위해 그곳까지 달려온 파르한과 라주는 허탈해졌지만, 그가 어디 사는지 안다는 차투르의 말에 따라나섭니다.


영화는 란초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면서 과거 그들의 대학생활을 보여줍니다. 입학 첫날부터 범상치 않은 행동으로 선배들을 골탕 먹인 란초는 요주의 인물로 ‘바이러스’라 불리는 대학 총장 비루(보만 이라니 분)에게 소위 말해 찍히게 됩니다. 그 이유는 가치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라 불리는 비루 총장(보만 이나리 분)은 입학 첫날부터 도태되면 죽는다는 말을 하며 1등만 강조한다.


총장은 갓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뻐꾸기를 예로 들며 도태되면 죽게 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이미 입학하면서부터 누군가를 제치고 들어온 이들에게 여기서 제대로 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하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수업 첫날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게 설렌다는 그에게 교수는 ‘기계’에 대해 정의해보라 하는데요. 란초는 그가 생각한 기계에 대해 쉽게 풀어 설명합니다. 하지만 교수는 그 ‘정의’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정의라며 점수를 잘 받고 싶으면 책에 있는 정의나 똑바로 쓰라 합니다.


1위만 강조하는 대학 총장과 좋은 점수만 강요하는 교수. 학생들을 순위로만 평가하는 학교가 못마땅했던 란초는 사사건건 총장과 대립하게 되는데요. 총장의 입장에선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속담처럼 란초가 다른 학생들에게 미꾸라지 같은 존재였던 거죠.


어쩐지 남 얘기 같지 않죠? 취업률만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대학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대학도 취업률로 대학 순위를 평가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교육 체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실제로 과거 카이스트 학생이 극단적 선택한 것을 두고 학교에서 ‘무한 경쟁’을 조장한다는 대자보가 붙었죠. 그때 한 대학생 기자가 ‘영화 ‘세 얼간이’가 서남표 총장에게 전하는 교훈’ 제목의 기사를 통해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살인이었음’을 꼬집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던진 화두는 어마어마했습니다.  


한국에 정식 개봉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 개봉하게 되었으며 치열한 경쟁사회에 묵직한 한방을 날렸다.


그렇게 영화 속에서 경쟁이 아닌 자기 마음속에 있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성공은 자연적으로 얻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란초는 우여곡절 끝에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하게 되는데요. 졸업식을 끝으로 사라져 버렸고 절친과도 연락이 안 된 채 5년간 잠수를 탑니다.


5년이 지난 지금 마침내 란초의 집까지 찾아간 그들은 그의 아버지 장례식에서 란초를 만나게 되는데요. 그들이 아는 란초와는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대학 학위도 졸업사진도 모두 우리와 함께였는데 얼굴만 달라진 이 기이한 상황. 도대체 우리가 아는 그 ‘란초’는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란초’ 역은 인도의 국민배우 아미르 칸이 맡았습니다. 인도의 굵직굵직한 영화라면 어김없이 나오는 그는 당시 나이가 47세였음에도 불구하고 20대인 대학생 역을 무리 없이 연기했습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춤과 노래 역시 그가 직접 소화했는데요. 인도영화가 처음이라면 뜬금없이 나오는 음악과 춤에 당황하겠지만 몇 번 보다 보면 중독성 있는 음악과 군무가 정감 있게 느껴집니다. 인도영화에서 나오지 않으면 서운할 정도죠.


극 중 ‘란초’는 용기가 필요한 상황에서 주문 같이 ‘알 이즈 웰(All is well)’이라 외치는데요.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음은 쉽게 겁을 먹는다. 이럴 땐 마음을 속일 필요가 있는데, 이때 가슴에 손을 얹고 ‘알 이즈 웰’이라 외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라고요. 요즘같이 불안한 시대에 우리도 가슴에 손을 얹고 ‘알 이즈 웰’이라 외쳐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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