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데미안 Oct 24. 2021

귀가가 늦었다. 있는 반찬들을 한데 모았다.

비빔밥과 최선의 삶에 대하여.

롯○리아를 그만두고, 긴 시간동안 웹툰 원고를 준비하다가 이도저도 안된 채로 돈이 떨어져 다시 취업을 했다. 취업을 하면서 내가 꼭 한가지 확인한 게 있다. 칼퇴근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퇴근후에도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면접 담당자는 알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직생활이라는 것은 결코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사실 어느정도 알고 있었고, 그 정도는 감내할 마음으로 회사에 들어갔다. 주 5일 근무는 거의 고정이고, 야근을 해도 오후 8시 퇴근이니까. 그 시간에 퇴근한다 해도 여전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날은 유독 일이 많이 밀린 날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사고가 터져서 오후 9시가 되어서야 일이 끝났다. 집에 들어와 시간을 보니 9시 20분. 본래 일찍 갈 생각으로 저녁도 조금 먹고 일을 했으므로 배가 고팠다. 간단하게 밥을 차려 먹기위해서 냉장고 문을 열어 있는 반찬들을 꺼냈다. 그리고 간단하게 계란 프라이를 하기 위해서 계란을 꺼냈는데, 늘어놓은 식재료들을 보니 왠지 비빔밥이 먹고 싶어졌다.


시금치, 무생채, 상추와 부추. 볶은 들깨, 계란, 당근이 있었다. 한 그릇에 넣고 비벼먹으면 괜찮을 조합이다. 우선 밥을 담았고, 그 위에 부추와 상추를 잘게 썰어서 한편에 두었다. 시금치와 무생채 역시 한쪽에 두었고, 계란 두 개를 반숙으로 부쳤다. 당근은 기름에 볶아서 먹어야 영양가가 좋으므로, 계란을 부치고 난 후에 채썬 당근을 볶아 넣었다. 참기름 한 숟가락과 고추장 반 숟가락을 한 데 넣고 밥을 비볐다.

비빔밥이란 음식은 이렇게 나물류 반찬들이 많이 남아있을 때면 종종 해먹는 음식이다. 채소위주로 구성되어 있어서 영양적인 부분에서도, 시각적인 부분에서도, 재료만 준비되어 있다면 그 간편함에서도 비빔밥은 높은 만족도를 주는 음식이다. 더욱이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으면 맛이 진해지고 풍미가 높아진다. 오늘날 고칼로리의 인스턴트 음식들로 각종 성인병의 위험에 노출된 시대에, 선조들의 비빔밥은 균형잡힌 식사의 대안처럼 보인다.



있는 재료들을 한데 모아서

비빔밥을 먹을 때면, 항상 이 훌륭한 음식인 비빔밥의 유래와 그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비빔밥의 역사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음식은 어떤 이유로 한번에 많은 반찬들을 한 데 비벼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재밌는 사실은 비빔밥에 들어가는 식자재들 대부분이 당시 서민들이 먹던 채소류인데, 그 채소로 만든 나물 반찬들이 한데 모여 시각적으로도 다양한 색을 띄며, 영양적으로도 균형 잡힌 음식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게는 굉장히 완벽해보이는 음식이지만, 이 음식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비빔밥을 두고 어떤 일본교수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음식이라며 비판했다가 뭇매를 맞고는 말을 바꿨는데, 그의 비판에 따르면 비빔밥은 비비기 전과 후가 다른 음식이고 그것이 가히 양두구육이라 부를만하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날카롭지만 동시에 속물적인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비빔밥은 그저 비비기 전과 후, 겉이 다른 음식일 뿐이다. 이 음식이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은 다양한 색감을 가진 식자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빔밥을 먹을 때면, 자연의 다양한 색감을 담은 식재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밥 공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정갈한 음식을 먹기 위해서 우리는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직접 섞게 되는데, 이렇게 음식을 섞으면 처음 우리가 보았던 정갈한 모습은 다소 흐트러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본질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음식들을 섞음으로써 이 음식은 조화를 이루고 본질을 되찾는다. 그렇기때문에 식재료들을 섞는 과정에서 식욕을 느끼는 것이다. 정말 양두구육의 음식이라면 식재료를 섞고 난 후에 음식에 대한 정이 떨어져야 하지 않을까? 본질이 바뀌었으니까 말이다.



비빔밥과 최선의 삶.

결국 비빔밥이 양두구육이라는 말은 비빔밥이 밥을 비비는 것으로 그 본질이 훼손된다고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대상의 본질을 판단하는 속물적인 시선이 섞여있는데, 내게 있어서 비빔밥이란 음식은 조선의 가난한 민중들이 남은 음식들, 혹은 갖고 있는 식재료들을 한데 모아 최선의 조합비로 만들어낸 음식이다. 이 음식에는 그 누구도 함부로 비하할 수 없는 최선을 향한 손길들이 서려있다. 비빔밥을 해먹으며 나는 언제나 가장 흔한 것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이 음식에 대해서 생각한다. 양두구육이라는 것은 겉만 화려하고 속은 텅비어있는 오늘날 패스트푸드들과 양식들이다. 덧붙여 그런 비판을 한 교수의 자국음식인 전통적인 튀김요리들은 어떤가. 무엇이든 튀기면 맛있어지고 부피도 커지지만, 거짓말처럼 칼로리도 함께 늘어난다. 진정한 양두구육이란 바로 그런 것들이다. 값만 비싸고 실속은 없는 음식들. 혹은 특정 영양소에 편중된 음식들.


프리미엄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실속없이 편중된 음식들이야 말로 진정한 양두구육의 사례가 아닐까. 본질을 따져보자면 그럴 것이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식재료들은 가장 흔한 재료들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최선이 담긴 음식이다. 비빔밥이 맛있는 것은 아무래도 고추장의 영향이 크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최선의 식재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그 맛이 더욱 돋보이는 것일테다. 렇기에 비빔밥의 본질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즉 최선의 것들을 다해서 하나의 음식을 만든다는 그 최선의 의지에서 비롯된 맛이라고 생각한다. 한 끼니에도 최선을 다하는 이 음식의 본질에는 삶을 억세게 살아온 민중들의 최선의 삶이 녹아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비빔밥에 대해서 글을쓰자면, 나는 양두구육보다는 오히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답을 내놓게 된다. 비빔밥은 밥과 식재료들을 섞기 전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갈한 비빔밥을 섞은 후에도 식욕을 충분히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동시에 그것의 본질(맛)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때론 보이지 않는 본질이라는 것이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다. 비록 겉으로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최선을 다한다면. 진심을 다한다면 그 본질은 전해지기 마련이라고, 이 음식은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전 08화 기다리는 사람의 의무란.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식사, 먹고 산다는 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