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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조각.

by 남다른 양양

1.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버릴 때 유독 괜히 애잔해지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운동화다.

애잔하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지 운동화를 버릴 때 사진을 찍어 놓는 버릇이 생겼는데 스스로도 왜 그럴까 싶은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낡고 너덜 해진 운동화를 볼 때마다 '내가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첫 직장부터 오피스룩을 쫙 빼입고 다니는 곳이 아닌 현장에서 아이들과 뛰어다니는 일이다 보니 정장보다는 활동하기 편한 옷, 구두보다는 운동화를 신는 게 더 능률적으로 좋았는데, 유독 업무에 치여 힘든 한 해를 보내고 나서 운동화를 버릴 때 그 스스로에 대한 애잔함이 폭발한 건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경력이 쌓이고 이제는 직접 뛰기보단 후배들이 움직이는 일이 더 많고, 현장보다 행정적인 업무를 더 많이 맡게 돼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낡은 운동화는 열심히 살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가끔 수고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고생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리 신발장 속에 많은 운동화와 신발이 있어도 수많은 시간을 함께한 신발을 버릴 때는 그렇게나 혼자 F 감성이 터져 나오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물건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기도 하고 아픔이 되기도 하니까.


이제 또 새로운 신발을 신고 여전히 바삐 움직이고 뛰어다니겠지만, 지나간 시간을 가끔씩 이렇게나 추억하는 것도 나름 좋지 않나 싶다.


2.

어떤 사람에 대한 실망을 느낄 때 그리고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 결심이 일어나는 순간이 누군가에겐 단 한순간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화조차 나지 않을 때가 되기도 한다.


내가 사람에게 느끼는 가장 큰 위기는 바로 '화도 나지 않는 순간'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무력한 감정을 느낄 때 허무하고 씁쓸함을 느끼게 되면, 그 사람을 정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정리를 한다고 해서, 마음이 편하다기보다는 씁쓸한 기분이 어느 정도 지속되는 편인데, 생각보다 그 기분은 아주 짧게 지나가고 더 이상 그 사람에게 그 감정을 쏟아낼 만큼의 여력도 없다는 것을 더 뼈저리게 확인하는 기분이 든다.


사람을 정리한다는 것이, 혹은 누군가에게 정리를 당한다는 것. 시절인연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경험상 시절인연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오랫동안 마음을 나누고 정성을 쏟아낸 사람들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결국 '지쳤다.'라는 감정이 제일 크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이 과정까지 와서 결국 누군가를 정리하면 유독 자주 아팠다. 허무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결국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아무렇지 않지도 않으니까.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결국 사람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바닥을 치거나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무언가를 알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결국 이 나이가 돼서도 이런 일은 너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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