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들아, 내가 먼저 암환자가 되었네 / 1부 : 일단 버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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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없이 받아 든 암 판정은 사형 선고처럼 들렸습니다. 막연했던 '죽음'이 눈앞의 '죽음'이 되었습니다.
첫 수술을 앞두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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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사랑하고 감사한 아내, 딸, 아들에게
언제 전하게 될지 모르는 유언을 적는다.
다음 주 있을 수술을 생각하며, 혹시라도 그날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적는다. 인생은 앞날을 알 수 없으니.
(중략)
내가 언제 죽게 되더라도 난 정말 '행운아' 였다고 생각한다.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훌륭한 부모님을 만나 - 멋진 신체, 좋은 성품 가진 이로 태어났고, 조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의 큰 사랑 속에 성장했다. 이른 나이에 -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 아내를 만났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부부의 연을 맺으며 살았다. 엄마 아빠를 적절히 닮은 딸, 아들을 낳아 어른이 될 때까지 무탈하게 키울 수 있었고 또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건 정말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 그 행운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나도 열심히 살았다. 특히, 결혼 후부터.
'가정과 일', 이 두 가지에 내 에너지의 대부분을 쏟았다. 내 그릇의 크기를 과대평가하지도 않았고, 과소평가하지도 않았다. 과욕을 부리지 않았고, 기회가 생겼을 때는 적극적으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내 인생에 점수를 주자면 - 91점!
벌써 죽게 된다면 너무 아쉽지만, 다시 태어나도 이만큼 하겠나 싶다.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나라를 구할 그릇은 아니었으니, 내 소임은 다한 듯하다.
덕분에 할 수 있었다. 고맙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받으며 산다는 기분을 늘 안고 살아왔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제일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부분이었다. 부모님께 감사하고, 아내 OO에게 정말 고맙다. 그래서 뿌듯한 마음으로 마음 편하게 이런 글을 적을 수 있다. 전해질 그날이 언제일지라도.
(중략)
그 무엇보다, 이게 중요하다.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은 늘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 내가 언제 떠나더라도. 그게 내가 열심히 산 이유였으니까.
이제 그게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략)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내 삶의 버팀목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내가 없어도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기반을 빨리 만들겠다는 목표를 이루어 가는 그 과정은 내게 큰 성취감을 주었다. 그래서 행복했고, 계속할 수 있었다. 경제적인 부분이 컸지만,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커 가는 모습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 나를 신기루처럼 생각하고 집착 없이 멋지게 살아라. 하늘에서 지켜보며 흐뭇할 수 있게. 어차피 누군가는 먼저 떠나게 되어있다. 그게 순리다. 미안함도 아쉬움도 남는 것이 당연하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원래 그런 거다. 같이 있을 때 사랑하고 행복했으니, 그거면 족하다.
눈물도 며칠이면 그쳐라. 나에 대한 추억도 일 년에 하루면 족하다. 당장은 슬퍼도, 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
중요한 건 - 나 자신의 인생이다. 절대적으로 나 스스로의 행복한 인생에 집중해서 살아라.
2022.0.0
내 인생은 아름다웠다. 덕분에 행복했던 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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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를 책상 위에 적어 두고 수술대에 올랐습니다만 이 유서를 가족들이 펼쳐볼 일은 아직 없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도 한참 후, 뒤늦게 알았습니다. 암 판정을 받았다고 바로 죽는 건 아니라는 것을요.
우리나라 인구의 세 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막연히 두려움만 가질 뿐, 이게 어떤 병인지는 제대로 모릅니다. 그래서 암 진단을 받으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들까지도 큰 충격을 받습니다. 저처럼 암은 곧 죽음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암 진단을 받고 이걸 묻는다고 합니다.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하지만 전문의들의 설명으로는 그렇게까지 쇼크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TV나 영화에서 봤던 말기암 환자의 고통스러운 상황이 곧 닥치게 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특히, 암세포 자체에는 통증이나 고통을 일으키는 요인은 없고요.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암세포 때문이 아니라 대체로 치료 때문이랍니다.
일본 암 전문의 다니가와 게이시 교수는 "통증으로 몸부림치고 살이 빠지고 원기를 잃은 상태는 암이 상당히 진행돼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이거나 그에 가까운 때이다. 암세포가 처음 몸 안에 발생하고 그때부터 경과한 시간을 생각하면 이는 마지막에서도 마지막, 한 시기일 뿐이다. 따라서 치료를 받을 사람이나 한창 치료 중인 사람이 이 상태를 상상하는 것은 불안만 과도하게 부추길 뿐 전혀 의미가 없다", "암이 무서운 이유는, 잘 몰라서다. 암의 실태를 알면 분명 공포심이 줄어들 것이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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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 방송 채널 tvN의 <알쓸인잡> 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NASA(미국 항공 우주국)의 과학자 미미 아웅(MiMi Aung)이란 여성을 알게 되었어요.
그녀는 NASA의 '화성 헬리콥터 팀' 리더로 팀을 이끌고 6년 간 연구 끝에 - 화성에서 헬리콥터(인저뉴어티(Ingenuity, 2021))의 비행을 성공시킨 분입니다. 화성엔 대기가 희박해서 물체를 띄우는 데에는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화성 탐사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이 성공은 인류가 비행기를 만든 것과 맞먹는 업적이라고 하네요.
이 방송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성공의 순간에 그녀가 보인 모습이었어요.
팀원들과 함께 상황실에서 성공 여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화성에서 헬리콥터가 영상 촬영을 통해 보내온 성공 소식을 확인하고, 그녀는 기쁨의 환호를 했습니다. 그리고 짧은 연설을 한 후, 일어선 채 실패하면 읽으려 했던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렸어요. 아마도 발표문을 성공용과 실패용, 두 가지 종류로 준비해 두었던 모양이더라고요.
유튜브로 생중계된 이 날, 이 성공의 세리머니가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미미아웅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유학 왔던 미얀마 출신의 부모님을 따라 두 살 때 귀국하면서 미얀마에서 살았어요. 그러다가 청소년기에 홀로 미국으로 유학을 왔고, 23살에 NASA에 입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단계씩 올라 팀장이 된 것이고요.
그런 그녀이기에 더더욱 간절히 바랐을 겁니다. 지난 6년 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쓴 '실패용 발표문'을 읽게 되지 않기를 말이죠.
그러니 그 '실패용 발표문'을 찢어 버리는 순간,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 마음이 전해져서인지, 저도 이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암에 대한 무지가 죽음을 생각하게 만들었고, 죽음을 떠올리며 공포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했습니다. 그때 적어 둔 유서는 여전히 책상 옆에 놓여 있습니다.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기대해 봅니다.
저도 어서 암 완치 판정을 받고, 이 유서를 기분 좋게 찢어버리는 세리머니를 할 수 있기를요.
� 삶의 끝에 죽음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혹시,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사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