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들아, 내가 먼저 암환자가 되었네 / 1부 : 일단 버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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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수술을 마치고 열흘 간 입원해 있었어요. 병원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는 '절대 안정' 표식이 붙어 있는 환자로 지내다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해방감을 기대하며 집으로 왔지만 방사선 치료 시작 전까지 3주 정도의 치료 공백 기간도 여전히 '안정'을 요하는 기간이었어요. 퇴원 후 주의 사항이 한가득이었죠.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건 수술 부위를 통한 뇌척수액 유출이었어요. 뇌척수액이 새어 나와 흐르는 확률은 3~10% 라고 하더라고요. 유출이 있으면 당장 응급실로 오라고 하는데, 이게 콧물과 구분이 잘 안 되어 계속 신경이 곤두서 있었어요. 그 외에도 코 안의 상처 안정을 유지하고 갑작스러운 뇌압 상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유의 사항이 많았어요. 한 달 동안은 머리를 숙이는 것도, 코를 푸는 것도, 가래를 뱉는 것도 금지였어요. 5kg 이 넘는 물건은 들어도, 밀어도 안 됐어요. 심지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볼 때도 힘을 세게 주면 안 됐어요. 그리고 여전히 코 안에는 코 속 점막 회복을 돕는 실리콘 고무판이 부착되어 있어서 코로 숨 쉬는 건 불가능했고, 코딱지도 엄청나게 많이 생겼어요. 이래저래 행동의 제약도 많았죠.
게다가 당분간은 집 근처 산책도 안 좋다고 해서, 병원 외래 진료를 다녀오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가급적 집 안에 있어야 했어요. 사실 움직일 여력도 없었어요. 정상적인 체력을 회복하는 데에는 2개월 이상이 필요하다고 퇴원 설명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기력이 많이 떨어져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자게 되었고, 깨어 있어도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 기간은 그냥, 나도 모르는 나로 살았어요. 정신도 마음도 내가 아닌 남이 내 몸에 들어와 사는 것 같았으니까요.
많이 답답했습니다. 물리적 고통이나 불편함은 그래도 참을 수 있었지만 정신적 고통은 참기 힘들었어요.
여러 친구들이 "넌 정신력이 강하니까 잘 이겨낼 거야"라고 응원해 주었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전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제가 이렇게 정신력이 약한 사람인지, 겁이 많은 사람인지 처음 알게 되었어요.
불확실한 미래는 생각만 해도 암울했고, 지난날의 나와 같지 않은 현재의 나는 바라만 봐도 침울해졌어요. 원치 않은 현실에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쏟아야 했고, 많은 시간을 무기력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이건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이런 때일수록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잡으려 해도 잘 안 됐어요. 오히려 아차 하는 순간, 제어할 수 없이 마구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야 했죠. 내 머리에서, 내 가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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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신적 고통은 특히 밤이 되면 심해졌습니다.
오후 6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아, 시작이다.'
숨이 막힙니다.
숯 불처럼 뜨거운 덩어리가 등장합니다.
이 녀석이 아랫배부터 가슴을 거쳐 머리까지 올라옵니다.
그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그럼, 마음이 바빠집니다.
일단 일어서서 움직여야 합니다.
이것저것 할 일을 찾습니다.
눈에 보이는 설거지 거리가 있으면 다행입니다.
뭐라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뜨거운 무언가가 사라지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두 번에 한 번은 끝까지 올라옵니다.
답답합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이 너무 답답하고
밀폐된 공간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가슴을 조입니다.
한 겨울,
창 밖은 영하의 추위이지만,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살아야 합니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최대한 밖으로 내밉니다.
그리고 크게 숨을 쉽니다.
후 후...
한 5분 정도,
미친 사람처럼 겨울바람을 맞으며 심호흡을 하다 보면
조금 나아집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안 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럼 서둘러 아내를 찾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부탁합니다.
"나 좀 안아줘."
이런 내가 너무 한심합니다.
그래서 더 괴롭습니다.
아내가 가냘픈 몸으로 안아줍니다.
그래도 충분히 포근합니다.
아내는 "왜 그래? 바보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냥 울어도 돼, 누구나 그럴 수 있어."
그제야,
요동치던 가슴이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합니다.
아내 덕에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몇 번을 망설였지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진 않았습니다.
그냥 혼자 진단을 내렸습니다. '공황 장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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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가와 게이시라는 일본 암 전문의가 책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서 이렇게 적었어요.
'암이 환자에게 미치는 고통의 대부분은 암 때문이라기보다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생긴 심적 괴로움이다. 심적 괴로움을 경감할 수 있으면 그만큼 암 환자의 고통을 덜 수 있다.'
저 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주위에 암 환자가 있다면, 헤아려 주시기 바라요.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내면의 고통을요.
이번에 분명히 알았어요. 혼자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있더라고요. 그럴 땐, 주저 없이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미안해하지 말고, 자존심 상해하지 말고 핑계 대지 말고요. 대신 다음에 반대 상황이 있을 때 돕겠다는 생각으로요. 저는 자주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대형 병원들에는 암 환자만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가 있는 경우도 있고, 암 센터 내에 정신건강의학과가 있어 통합 진료를 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필요하다면 이런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나 혼자 해내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도움을 받는다고 나약하거나 정신력이 부족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어떻게 든 이겨내는 것이지, 그게 꼭 혼자 힘으로 해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 배우자에게 도움을 자주 받으시나요? 그럼, 도움도 자주 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