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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나무 Nov 01. 2023

[책. 리뷰 or 에세이]
'밝은'과 '밤'의 공존

<< 밝은 밤 >> (최은영(글))을 읽고


'밝은'과 '밤'의 공존


<< 밝은 밤 >> 최은영(글) / 문학동네(출판)




0. intro


#

♬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건 우리 안의 소리 ♬♬

♬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건 우리 안의 소리 ♬♬

♬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건 우리 안의 소리 ♬♬


'연결고리#힙합' 가사 중, 쇼미더머니3, 바비 ,  

2014년 한국 힙합씬 최대의 이슈 트랙 중 하나




1.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

'밝은 밤이라, 

'밝은'과 '밤'은 상반된 의미의 조합인데, 무슨 의미일까? 둘은 어떤 연결 고리가 있을까?'

최은영 소설가의 장편 소설 <<밝은 밤>>을 제목부터 궁금증을 품고 읽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 이내 그 궁금증은 잊었죠.


<<밝은 밤>>에는 증조모부터 나에 이르는 4대에 걸친 여성들의 고난한 삶이 가득 펼쳐져 있어요. 거기에는 일제 강점기 , 6.25 전쟁, 전후의 가난한 나라라는 시대의 아픔이 바탕에 깔려 있고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아픔, 아버지의 묵인 하에 자행된 남편의 중혼, 시댁 식구들의 비하와 남편의 무관심, 남편의 외도로 인한 이혼 등의 개인적 비애가 더해져 보기 안쓰러울 정도예요. 그나마 다행인 건, 가족보다 더 가족 다운  새비 아주머니, 명숙 할머니, 희자, 명희 아줌마, 지우 같은 의지할 수 있는 지인들이 버팀목이 되어주네요.


때론 안타까워하고, 때론 함께 아파하고, 때론 응원하며 소설 속에 빠져들었어요. 그런데 실컷 눈물, 콧물 흘리며 읽고 난,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떠오르는 건, 슬픔보다 의문이었어요.

'이런 시대적 아픔 속, 슬픔을 나누고 함께 이겨내야 할 가족 사이에, 왜 갈등만 있을까?' 



#

소설 속 주인공의 여성 가족 - 즉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나에게는 각 각 두 종류의 가족이 있어요.

하나는 증오 관계의 가족, 이는 남자들로 아버지 또는 남편이죠. 또 하나는 애증 관계의 가족이에요. 엄마와 딸 사이의.


증오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할 말이 없죠. 기구한 삶이에요. 소설 속 여성들이 받는 고통의 중심에 때론 남편이, 때론 아버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요.

안타깝고, 화가 나요.

왜 소설 속 남자들은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유럽의 멋진 남자들처럼 등장하지 못할까요? 그 시대의 아버지 상이 그래서였을까요? 어려운 시절, 외부에 더 큰 에너지를 써야 했던 남자의 역할 상 어쩔 수 없었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다'라고 변호를 하기에는 정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해요.

이 문제적 남자들에 대해 호의적 이견을 제기할 이 시대의 남자는 없을 거예요. 그렇다고 이 남자 가족들을 그 당시 대한민국의 남자들로 일반화할 수는 없어요. 그게 가능하다면 새비 아저씨가 이상한 사람이 되니까요. 새비 아저씨 같은 사람을 아버지로, 남편으로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지요.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애증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 모녀 관계였어요. 

애증(愛憎)이란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잖아요? 사랑하면서도 미워한다는 건 모순된 감정 같지만 - 인간에겐 이 반대되는 감정이 한 마음속에 맞서 있는 '감정의 양면성'이 존재하죠. 그렇더라도, 왜 더 똘똘 뭉쳐야 할 이러한 상황에서도 - 엄마와 딸이 그리고 할머니와 엄마가 서로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계속 갈등을 할까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안타까웠어요.


이 안타까움이 더해지다 보니,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 더 궁금해졌어요.


처음에 느낀 '밝은 밤'은 - 대한민국의 수난 시대에 태어난 것도 모자라, 남편, 아버지 잘못 만나 고생한 여성 4대의 안타까운 인생과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이었어요.

하지만, 이게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부였을까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건 아닐까요?

혹시 여성을 넘어, 가족?




2. 가족이라는 착각


#

'밝은 밤' 책을 덮자마자, 온라인 서점을 뒤져 가족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봤어요. 그리고 눈에 띈 서적이 있어 바로 읽어보았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호선이 쓴 <<가족이라는 착각>>이었어요.


진은영 님의 시 인용으로 시작하는 책이었어요.


밖에서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가족' / 진은영



책엔 이런 문장들이 있어요.

"밖에서 빛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집 안에서는 더 빛나고 아름다워야 한다. 설령 밖에서 빛나지 못하고 아름답지 않더라도 집안에 들어오면 가족에게만큼은 늘 빛나고 아름다운 존재로 살아야 한다. 밖에서 그토록 빛나고 아름답던 존재가 집 안에만 들어오면 빛을 잃고 아름다움을 상실한 채 초라한 존재가 된다면? 가정은 고유의 기능은 물론 의미까지도 사라진 한없이 쓸쓸하고 허무한 공간일 뿐이다."


"환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이상적 가족이란, 부모는 사랑과 희생으로 자식을 키우고, 자식은 성심성의껏 부모에게 효도하며,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면서 꿋꿋이 가정을 지키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상적 가족과 실제 가족은 전혀 다르다.... 이상적 가족의 모습을 기대하면 우리는 자꾸만 문제를 만들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가족 사이의 적정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요?... 이 환자의 질문에 답하다 보니... 책이 되었다."


'가족 간의 적당한 거리라... '

처음 접해본 문제였어요. 어려운.




3.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가족


#

'아들 다 필요 없어, 딸이 있어야 해. 특히 엄마에겐'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특히 결혼하고 나서요. 하지만 이 말은 남자이자 아들로서 열등감을 확정하는, 반박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지요. 딸과 아들 남매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딸이 성인이 되고, 어머니와 장모님도 나이를 드셔 갈수록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주위를 둘러봐도, '친구 같은 사이'라고도 표현하는 엄마와 딸의 관계는 그만큼 너무 가까워서 서로 많은 것을 주고받으며 의지하기도 하지만, 그런 점이 반대로  불편함과 상처도 쉽게 주고받게 만들더군요. 어떨 땐, 문제의 표적으로 삼아야 할 대상이 따로 있음에도, 화살을 제일 가까운 엄마나 딸에게 날리는 경우도 보았고요.


사랑으로 시작한, 악의 없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 <<밝은 밤>>에 만 있는 건 아니죠.



#

<<밝은 밤>>과 <<가족이라는 착각>>, 이 두 책을 만나게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애증의 관계라고 생각하는 <<밝은 밤>>에 등장하는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주인공 지연을 <<가족이라는 착각>>을 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만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 싶어서요.



간호사 :

엄마 먼저 들어오세요. 할머니는 조금 있다가 엄마 마치고 들어오시고요.


의사 :

어머니와는 어떤 문제가 가장 큰가요?  발단이 된 사건이 있었을까요?


엄마 :

저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굴레가 있어요.

초등학생이던 큰 딸을 잃은 슬픔이죠.

절 닮은 그 아이가 저 때문에 죽게 되었다는 생각에서 떨쳐 나올 수가 없어요.


전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 게 삶의 목표였어요.

이를 위해 시댁 문제를 포함한 그 어떤 수모도 이겨내며 살고 있지요.

아이 잃은 아픔도 꼭꼭 숨겨두고요. 하지만 제 마음속에선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엄마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너무 쉽게 잊으라고 합니다.

물론 저를 위해서겠지요. 하지만 그게 잊히나요?


엄마는 제가 어릴 때도 그랬어요.

살기 힘들어서 그런 것이었겠지만, 전 늘 혼자였어요.

엄마는 저한테 정이 없는 아이라고 자주 말했지만, 전 오히려 엄마가 저에 대한 정이 없는 분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간호사 : 

할머니 들어오세요. 엄마는 잠시 밖에서 기다리시고요.


의사 :

따님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조금 섭섭한 감정이 있으시더군요.

특히 첫 째 손녀 분 관련해서요.


할머니 :

딸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제가 너무 쉽게 말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다만 저에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요.

어려서부터 너무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랐어요.

전쟁통에 지인들이 사상범으로 몰려 총살당하는 일도 있었고, 피난길에선 살려 달라는 아이를 무참히 떼어내는 걸 지켜만 봐야 했던 일도 있었어요, 남편의 중혼을 알게 되고, 졸지에 미혼모 보다 못한 처지가 되기도 했고요.

그래도 이겨냈어요.

"어마이, 지나간 일 잡고 살지 맙시다."라고 말하면서요.


그런 일을 겪으며 알게 되었죠. 때론 포기가 낫다는 걸요.

예를 들면, 남편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고 체념하고 나니 그런 삶도 견딜 만했거든요.

그 후로도 늘, 과거에 묶인 사람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사람으로 살았어요.


딸에게 그 흔한 통장 하나 만들어주지 못한 호적에 없는 엄마였지만, 딸 하나 먹여 살리는 게 제 삶의 전부였어요. 


그러다 보니, 아버지 없이 자라온 제 딸이, 보란 듯이 잘 사는 걸 보고 싶어요.

그런데, 딸을 존중하지 않는 시댁 식구들 만도 너무 미운데, 떠나간 첫 째 자식을 잊지 못하고 매달려 있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심지어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있어요.


지나간 일은 잊고,

마음껏 자유롭게 살면 좋겠어요.

멕시코로 혼자 여행을 갔다 왔다는 얘기를 나중에 듣고는 제가 다 후련했어요.


의사 :

제 책의 이 부분을 읽어드릴게요.


"무심코 툭 뱉은 말 한마디가 부모와 자식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낸다. 피를 나눈 사이니까 어련히 이심전심이 통하리라는 마음은 버리는 게 좋다. 오히려 부모와 자식 간에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고, 무조건 제 말만 하다가 포기하고, 아무 생각 없이 내지른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박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 가지만 분명히 기억했으면 좋겠다. '가족이라서 다 괜찮다'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 가족이니까 모든 문제에 개입하고 지적하고 충고해도 상관없다는 말은 오판이라는 사실이다. 이의로 많은 사람이 가족이니까 상처를 줘도 이해하리라는 잘못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가족이라서 더 아프고 속상하고 잊히지 않는다..... 가족은 바꿀 수도 끝낼 수도 없는 관계이기에 생채기는 점점 심하게 곪아 간다."


간호사 :

엄마 들어오셔서  할머니 옆에 앉으세요.


의사 :

멕시코 여행을 다녀오신 모양이네요. 잘하셨어요. 

제 책 대로 하셨네요. 하하.


"가족은 사랑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희생과 통제를 강요하고, 강요당함으로써 외로움만 남는 불행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가족애를 성장의 자양분으로 만들려면 중심을 잡고 나만의 자유를 누리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간호사 :

엄마와 따님 함께 들어오세요.


의사 :

두 분은 어떤 문제가 있으신가요?


엄마 :

딸만큼은 행복한 정상 가족을 이루길 바랐어요.

그걸 바탕으로 특별한 사람이 되길 바랐죠. 똑똑한 아이거든요.

그런데, 이혼을 하고 말았죠. 그 정도면 나쁜 남편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너무나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강한 사람으로 잘 살았으면 했어요.

그런데 약에 의지하고, 시골로 도망가 나약한 삶을 사니 너무 화가 나요.


게다가 제가 아프거든요. 딸을 잃은 마음이 아프고, 병으로 몸도 아프죠.

그런데 딸은 저의 아픈 부분을 보듬지는 못하고 절 원수인 것처럼 대하면서 더 큰 상처만 줘요.

아직도 환상 속에서 언니를 찾는 어린애 같아요.


딸 :

어려서부터 늘 외로웠어요. 

엄마의 정에 굶주려 있었죠.

혼자 집에 있다가 엄마가 일하는 곳인 전화국에, 114 전화를 걸곤 했어요.

하지만 엄마의 목소리를 듣진 못했어요.

엄마 옆에 누워있을 때와 머리를 땋아주실 때만 엄마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늘 저에게 큰 기대를 하셨어요.

특별한 사람이 되리라 믿으셨죠.

엄마는 평범함을 원하면서, 왜 나에게는 특별함을 원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어요.

전 그렇게 특별한 아이도 아니거든요.


그리고 엄마는 모든 걸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돌려 말해요.

아빠 쪽 식구들에게도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참기만 하고요.

게다가 제 입도 막아버리려 하죠.

그게 더 서로의 소통을 막는 것 같아요.


의사 :

그렇군요. 우선, 어머니는 제 글들을 한번 들어보세요.

'자식은 '내 것'이라는 착각' 부분이에요.


"부모가 아이를 교육하면서 "너는 커서 반드시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 "너는 부모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꼭 이런 사람이 되리라 믿어"라고 강요하고 압박하면 아이의 정신세계는 강력히 규제당한다."


"내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내 주관에 따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함부로 재단하고 강제할 권리 역시 없다. 아무리 부모라도. 아무리 가족이라도 말이다."


의사 :

따님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이 부분을 소개해 드리고 싶네요.


"가족끼리 소통이 왜 이렇게 힘들까?

너무 편하고 가까운 사이다 보니 상대방이 나를 먼저 이해해 주고 내 말을 들어주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부모니까 무슨 말을 해도 받아주겠지, 자식이니까 아무 말이나 해도 이해하겠지... 이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큰 오해이고 착각이다. 이것은 소통이 아니라 소통 장애를 일으킨다.  가족은 수평적 관계여야 한다."


의사 :

모녀 관계란 참 어렵죠. 마음과 같지 않으니까요.

그런 마음이 담긴 노래가 있는데, 함께 들어보시면 좋겠어요.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예요.


♬♬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속을 뒤져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다섯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 사랑해라...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 줘!

.....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 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 주겠니?

♬♬




4.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가족   


#

<<밝은 밤>> 가족들이 <<가족이라는 착각>>의 전문의를 만난 후 관계가 호전되어, 마지막 상담을 하게 되었을 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어떤 당부의  말을 할까요?


제가 책에서 인상적으로 본 두 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하나는 '가족도 타인이다.' 그러므로 이에 기반해서 소통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에게는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리울 만큼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요.


"자신과 가족을 객관화한다는 뜻은 가족 관계를 혈연과 필연의 관계 속에서만 바라보거나 대하지 않고, '타인'을 대하듯 적당한 격식과 예의를 갖추는 일이다. 일종의 가족 간 '거리 두기'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를 말한다. 가족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환상을 깨뜨리고, 가족 간에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건강한 가족 관계를 위한 첫걸음이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려면 부모, 배우자, 자녀, 형제자매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에 담긴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 원칙이다. 잘 안 들리면 좀 더 다가가야 한다. 너무 크게 들리면 좀 떨어져야 한다. 무심함과 예민함의 조화다."



#

<<가족이라는 착각>>에서 알려준 - 가족 간의 갈등 해결책은 사실,  <<밝은 밤>>에도 있어요.


<<밝은 밤>>의 할머니와 나(지연)의 관계를 보면 되죠.

교통사고 후 보호자 연락처를 묻는 의사의 질문에 부모가 아닌 할머니의 전화번호를 쓰는 관계잖아요?


이십 년이 넘게 왕래가 없던 할머니를 희령에서 만난 후, 일 년 여의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런 관계가 만들어졌을까요?

이에 대한 답이 - 이상적인 가족 관계를 만들어 가는 모범 답안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엔 할머니의 역할이 아주 컸어요.

할머니는,


“어디 가세요?”

“아무 데도 안 가는데요.”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더니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거 다 마트에서 산 거예요.”

“잘했어. 혼자 살면 사 먹는 게 싸게 먹혀. 일하느라 바쁜데 어느 세월에 밥 해 먹어? 나도 그래. 내가 하는 것보다 사 먹는 게 더 맛있더라.”


▶ '캔디크러시' 스마트폰 게임을 즐겨하는 할머니는 손녀 시대의 문화에도 익숙한, 말이 통하는 '신식' 할머니였어요.



“그리고 저…… 헤어졌어요, 남편이랑.”

“잘했어.”

할머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약간 얼떨떨한 마음으로 할머니를 바라봤다.


“안다, 내가 알아.”

“계속 같이 살 수 없었어요.”

“그럼, 넌 내 손녀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 있었을 거다.”


"대전의 연구소로 이직하게 됐어요. 희령을 떠나요.

대전이라니 잘됐다. 거긴 도시구 젊은 사람들도 많이 사니까 지연이 너에게 더 좋을 거야.

축하해! 좋은 일이 생길 줄 알았다. 언제든 돌아와도 돼."


▶ 대구에서 만났던 명숙 할머니처럼 - 손녀가 무슨 말을 하든 할머니의 생각을 판단하지 않았고 교정하려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듣고 싶은 말만 해주고요.



"지연이 너한테 고마워. 내 얘기 들어줘서. 들어줘서 정말로 고마워."


"나도 여기 오랜만이야... 너랑 함께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재미있었어, 옛날에.”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지연이 너는 기억 못 할 수도 있지만, 열 살 때 네가 우리 집에 와서 며칠 있었을 때 말야. 같이 바다도 가고.”


▶ 손녀에게도 할머니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고마움도 바로바로 표현해요.



“번호 알려줄래? 연락은 안 할 거야.”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할머니의 핸드폰에 내 번호를 저장하고 통화 버튼을 눌러서 할머니의 번호를 받았다.

“심심하면 연락해.”

“네.”

“귀찮게 하는 일 없을 거야. 그러면 당장 끊어.”

“그럴게요.”


“할머니는 어디 아프신 데 없죠.” 내 말에 할머니는 소리 내어 웃었다.

“내가 하루에 먹는 약만 한 줌이야. 근데 난 지연이 너랑 그런 얘기하고 싶지 않아. 그런 소리 지겹지 않냐. 다 늙어서 손녀딸한테 아프다고 투정하고 그런 거, 난 싫다. 그런 할머니 안 해. 너랑 재미난 얘기만 할래.”


제가 읽어드릴까요?”

“괜찮아, 괜찮아.” 할머니가 손을 휘휘 저었다. “내일 출근해야지.”

“제가 읽어드리는 게 불편해서 그러세요?”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자꾸 나한테 뭘 해주면, 내가 되돌려줄 게 없어서 문제가 생겨.”


▶ 그러면서도 타인처럼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죠.



"술 처먹고 운전하는 새끼들은 다 죽여버려야 해"라고 내 일인 것처럼 화를 내기도 하고...


" 어디 가야 하거나 도움 필요할 땐 (강아지) 나한테 맡겨. 봐줄게."


"할머니는 집안 여기저기 널려 있는 내 옷들을 보더니 수선이 필요한 것들을 집으로 가져갔다. 할머니가 갖고 온 옷들은 어디를 수선했는지 모를 정도로 말끔하게 마무리되어 있었다."


▶ 그래도 손녀에겐 언제나 흔쾌히 도움도 주고, '언제나 내 편'이란 생각이 들게 든든한 지원군 역할도 해주죠.



“엄마한테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넌 나랑 달라. 그 애의 딸이잖아. 엄마가 딸을 용서하는 건 쉬운 일이야.”


▶ 필요할 때에만 적절한 조언도 해주고요.



" 할머니는 걱정 끼치는 사람, 돌봐야 하는 사람, 짐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저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나를 웃게 해 주고 말이 통하는 대화 상대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


'쿨한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와의 대화를 좋아한 손녀의 관계.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면,  '이게 작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 가족 관계의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돼요.



#

최은영 작가는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을 통해,

'나는 지연이가 희령에 도착해 조금씩 회복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라고 했어요.


그 희령에서의 시간은 바로 할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이기도 했지요.

회복하는 과정에 할머니가 있었던 거고요.



지연이 나이가 들어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어둠처럼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래도 그 속에 밝음이 있어 살 수 있었다.

할머니가 밝음의 역할을 해주셨다.




4. '진지남'의 소설 읽기


#

♪♬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건 우리 안의 소리 ♬♬


♪♬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건 가족 사이 거리 ♪♬

♪♬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건 그리울 만큼의 거리 ♪♬

♪♬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건 '밝은 밤'이 전하고픈 소리 ♪♬



#

책 <<가족이라는 착각>>에서 본 문구예요.


"누구나 세상을 떠날 때 가족에게 둘러싸여 인사를 나누고 웃는 얼굴로 이별하기를 소망한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나는 얼굴도 가족이고,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얼굴도 가족이다.

... 인간 본성은 늘 가족을 그리워한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비결은 결국, 그리운 시간을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에 달렸다."



책에서 반복하는 - 가족도 타인이라는 말이 너무 매정하게 들리지만, 그리울 만큼의 '거리 두기'라는 말은 너무나 현실적이기도 하네요.


평소엔 타인처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다가, 힘겨워하는 모습이 보일 땐 - '조용히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관계', 이런 게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인 모양이에요.



#

<<밝은 밤>>을 작가가 의도한 대로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부족한 공감 능력 탓에 - 감성을 이성으로 해석한 것 같기도 해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쓴 신형철 평론가가 책에서 말하더군요.

"평론가는 감동에 저항하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들이다." 


이 말에 위안을 삼으며 이성적으로 정리해 보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밝은'과 '밤'처럼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과 살아간다.

그럼에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타인으로 바라보는 것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통해,

'밝은'과 '밤'처럼 공존할 수 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이게 작가의 의도인지, 

책 속 - 안타까운 모녀의 관계를 풀어주고 싶은 저의 바람인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큰 아들로서 올바른 역할을 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머리로는 알고 있죠.


가족은 서로에게


'밝은' 에너지도 주고,

'밤' 같은 휴식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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