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 향기를 따라 걷다
여름의 끝자락,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고
바람은 조금씩 가을을 품기 시작한다.
짙은 녹음 아래, 숨을 고르듯 피어 있는 작은 꽃들,
골목 끝 화단에 피어난 백일홍 한 송이조차
어느새 마음을 조용히 데워준다.
그럴 때면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지금 어떤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향기로 기억되고 싶은가?
지난 6월 초,
5명의 친구들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예쁜 수국이 한창 피어나기 시작한 때였다.
도착한 제주도에서 내가 물었다.
“얘들아, 어떤 꽃이 보고 싶어?”
그때 한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제일 이쁜 꽃인데 뭐가 더 보고 싶겠어.”
모두들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지만,
그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귀히 여기는 아름다운 고백 같았다.
사실, 자신을 스스로 피워낼 줄 아는 사람만이
진짜 향기를 품은 꽃이 된다.
인도의 여신 ‘락슈미’는 부와 아름다움의 상징이지만,
진짜 축복은 마음의 평화와 조화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겉으로 보이는 꽃보다, 그 주변을 감싸는 향기처럼.
자신의 존재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로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우리는 그렇게 누구나
스스로의 락슈미가 될 수 있다.
함께 간 다른 친구가 말했다.
“남편이 어린 덴드롱을 얻어 와 키웠는데,
어느 날 하얀 꽃이 피더니 그 가운데에서 빨간 꽃이 쏙 올라오는 거 있지.
그래서 내가 말했어, ‘당신, 어쩜 이렇게 꽃을 잘 키웠어?’”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응. 내가 당신은 잘 못 키웠는데,
이 꽃은 물만 줘도 잘 크네.”
어이없는 말이었지만,
그녀는 그저 웃고 넘겼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가 한바탕 웃고 넘겼지만,
나는 왠지 그 말에 담긴 무뚝뚝한 애정을 읽었다.
언뜻 들으면 어이없고 서운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당신은 그저 물만 줘도 될 만큼 스스로 잘 피워낸 존재'라는
은근한 찬사가 서툰 농담으로 감춰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녀는
홀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시며
세 자녀를 사랑으로 키워낸 사람이었다.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몫을 감당해 온 그녀는
어쩌면 말보다는 행동으로 향기를 내는 사람이었다.
세월이 말해주는 향기.
고단함을 품고 피워낸 삶의 향기.
그녀의 남편도 그 향기를 몰랐을 리 없다.
늘 가까이에 있어서 말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
그는 이미 그 향기를 맡고 살아온 것이다.
꽃처럼 환하게 피어나는 순간보다는,
아무도 모르게 피워낸 향기로운 인내를
그는 이미 온몸으로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에게 향기가 된다.
삶을 고스란히 담은 향기.
쉽게 사라지지 않는 향기.
그렇게 오늘도
자신만의 향기를 피워내며
고요하지만 깊은 꽃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나도 믿는다.
말없이 피워낸 나만의 향기가
누군가의 하루를 물들이고 있으리라는 것을.
ㅣ에필로그
꽃은 자기 향기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향기는
여름날의 햇살처럼,
누군가의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스며든다.
떠들썩한 계절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남아 있는 향기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처럼.
오늘도 조용히 피어나는 나의 하루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기억이 되기를 희망하며.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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