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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문학 속의 신

by 최용훈

신과 초자연적 존재에 관한 이야기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학 작품 속에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성서나 코란과 같은 종교의 성전뿐 아니라 중세 프랑스의 무훈시(武勳詩)였던 ‘롤랑의 노래’(The Song of Roland, 1040~1115))나 14세기 이태리 작가 단테(Dante Alighieri)의 ‘신곡’(The Divine Comedy, 1320),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의 풍자적 이야기 모음 ‘데카메론’(Decameron, 1353), 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 1599~16010)에서도 이러한 존재들에 대한 묘사가 이어져 왔던 것이다. 특히 영국의 17세기 대표적 청교도 시인이었던 존 밀턴(John Milton)의 ‘실낙원’(Paradise Lost, 1667)은 신과 사탄의 전쟁을 통해 신의 뜻과 의지를 밝히려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심지어 중동 지역의 문학인 ‘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 Tales from One Thousand and One Nights, 1706~1721)는 신과 초자연적 존재인 알라딘(Aladdin)이나 신밧드(Sinbad) 같은 인물들을 결합시키고 있다.


오랜 인류의 역사와 다양한 문화권에서 신의 존재는 문학에 가장 지속적인 요소가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신의 죽음을 선언한 19세기의 문학에서는 오히려 신의 문제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Fyodor Dostoevski, 1821~1881)는 신의 존재와 세상의 고통이라는 모순된 명제에 깊이 천착한 작가였다. 그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이반 카라마조프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것은 신이 아니야. 나는 그가 창조한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 20세기의 역사가 토인비 역시 비슷한 탄식을 한 적이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다. 전능하다면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능한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역사를, 오늘의 세상을 어찌 이리 방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반의 동생 알렉세이를 통해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표출한다. “신과 악마는 전쟁을 하죠. 그리고 그 전쟁터는 인간의 마음속이에요.” 알렉세이는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순수한 기독교인의 표상이기도 하였다. 1878년에 쓴 한 서신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신이 없다면, 영혼의 영원함도 없다면, 그저 땅 위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왜 올바르게 살아야 하며, 왜 선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일까?... 만일 그러하다면 왜 나는 무언가를 훔치고 다른 사람의 목을 잘라버려서는 안 되는 것일까?(내 지성과 영민함으로 법을 피할 수 있다면)...” 그의 의문에 답이라도 하듯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Raskolnikov)는 아무런 이유 없이 두 여인을 살해한다. 우월한 존재로서 벌레 같은 인간의 목숨을 취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은 신에 대한 회의와 부정의 산물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또 다른 작품 ‘악령’에 등장하는 키릴로프(Kirillov)는 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상실한 채 이렇게 외친다.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은 그의 의지겠지. 나는 그의 의지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고. 하지만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은 내 의지가 될 거야. 그러면 난 내 의지를 드러내야 하지...” 그렇게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어 키릴로프는 신이 되려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는 없음을 주장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뒤 지극히 혼란스러운 삶과 마주하게 된다.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고 자신의 양심을 침묵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냐를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용서를 구하게 된다. 결국 신에 대한 부정은 그에 대한 새로운 확인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19세기의 과학 정신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창조론을 비웃었고, 카를 마르크스로 하여금 물질이 정신에 앞선다는 유물론을 전파토록 했으며 프로이트로 하여금 인간의 정신을 임상적인 실험의 대상으로 전락시켰지만 문학은 인간의 가장 깊은 심성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신의 존재를 결코 외면하지 못했다. 오히려 문학은 과학으로 신을 대체하고, 사상으로 종교를 설득하려는 무지한 인간의 행태와 삶을 교화하려 하였다. 그렇게 문학은 예언적으로 인간의 한계와 절대적 존재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확장시켜 온 것이다. 결국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은 신에 대한 회의와 불신 속에서도 나약한 인간이 갈구한 신의 절대성에 대한 믿음 속에서 탄생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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