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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달래는 뻔한 수작

by 최용훈

늙은 여름의 눈물


초가을의 비는 늙은 여름의 눈물이다

갈증과 폐허와 절망에 대한 후회이며 반성이다

얼굴빛은 흐려지고, 느닷없는 눈물은 땅 위의 모든 것을 적시고

늦은 오후 같은 아침, 창문에 부딪히고 엉켜 붙어

생때같은 곡성을 토해낸다


눈물에 젖어 미끄러운 길 위로

구멍 뚫린 우산을 덮어쓴 사람이 걸어간다

그의 머리 위로, 얼굴 위로 작은 눈물방울이 맺힐 때

부질없던 여름은 비로소 참회의 절규를 쏟아낸다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하지만 거칠고 쉰 목소리로 퍼붓는 눈물은

번쩍이던 칼날 뒤에 숨은 교활한 책략,

마른 계곡에 물이 흐르고

지쳐 늘어진 초목의 목마름을 달랜다지만

빗물에, 눈물에 파인 붉은 흙 속의 자갈들은 익사한다


그리고

비를 피해 숨은 외로운 영혼은 질식한다

비틀거리는 여름이 뿌리는 참회의 눈물은

그리움의 날카로운 빗물 되어

이미 말라비틀어진 가슴을 난도질한다


혹독했던 여름이 가을을 달래는 뻔한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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