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연대기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이가 들면서 아픈 곳이 점점 늘어간다.
요즘 유행하는 러닝은 내 나이에 무리인듯하고, 슬로 조깅은 가능할 듯하여 며칠 시도하였더니 오른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다.
그냥 걷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젊은 시절에는 면도칼을 삼킨듯한 속 쓰림을 오랫동안 견뎌내야 했고, 조금 나이 들어서는 만성 허리통증으로 한 곳에 오래 앉아있지 못했다. 이어서 어깨 통증으로 이어져 처음으로 전신마취하고 수술대에 올랐다. 목 디스크로 인한 두통과 등의 통증.
이제는 무릎이라니.
하루라도 통증 없이 지낸 날은 내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나보코프의 소설 <프닌>에서 주인공 프닌의 "인류 역사는 통증의 역사"라는 선언처럼
"내 삶도 통증의 삶이었다."라고 소심하게 선언해 본다.
물론 나의 통증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육체적 고통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 널려있음을 난 알고 있다.
통증은 단 한 번도 인간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오늘은 '멜러니 선스트럼'의 명저 <통증연대기>를 통해 인간의 통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멜라니 선스트롬은 그녀의 저서에서 통증을
"우리가 가장 먼저 배우고 가장 나중에 잊는 언어"라고 묘사한다.
인간이 세상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통증을 유령처럼 우리에게 찾아온다.
통증은 우리 몸을 보호하려는 반응이다.
몸의 조직이 손상되거나 병에 걸렸을 때 몸에 경고를 보내고, 열이 내리고 상처가 나을 때까지 휴식을 취하도록 하는 정교한 몸의 기능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기능을 다한 뒤에도 가시지 않는 통증은 만성 통증으로 바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만성통증을 지니고 산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의 에세이 <아픈 것에 관하여(On Being Ill)>에서 통증의 난해함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햄릿의 사색과 리어왕의 비극을 표현할 수 있는 영어조차도, 고작 오한이나 두통을 표현하려 하면 갑자기 빈곤해진다."
통증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통증은 비유를 거부하며, 오직 고통받는 자의 육체 안에만 머문다"라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누가 나의 무릎통증을 이해하거나 공유할 수 있단 말인가?
선스트롬은 오래전에는 통증이
'죄에 대한 형벌' 혹은 '영혼의 정화 과정'으로 이해되었음을 상기시킨다.
고대인들에게 통증은 신의 목소리였으나, 현대 의학은 이를 신경계의 오류나 생물학적 신호로 치환했다.
하지만 과학적 정의가 고통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지는 않는다.
만성 통증 환자에게 통증은 더 이상 치료해야 할 '증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정체성'이 되어버린다.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우리는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이라는 두 개의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했다.
통증은 우리를 질병의 왕국으로 강제 이주시키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은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증명한다.
통증의 역사는 곧 그 고통을 견디며 의미를 부여해 온 인간 의지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통증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법을 배우며, 육체라는 유한한 감옥 안에서 인간애라는 가장 숭고한 정신을 갈망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표현할 수도 없는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