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루하 Oct 30. 2024

엄마가 인정해 주고 내가 사랑하는

20화

“지금요?”

“당신 노래 듣고 싶어서요. 저는 노래 못 부르거든요.”


정말이었다. 그는 음치, 박치였다. 신이 모든 것을 주시는 것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노래방에서 주는 추가 시간까지 다 채울 때까지 나는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그가 나의 노래로 평안해진다면 하루 종일도 부를 수 있었다.


“역시 당신은 가수를 해야 했나 봐요.”

“가수를 안 했으니까 만났죠. 그러니까 저는 지금 만족해요.”

“가수 했더라도 우린 만났을 텐데? 왜 모를까? 우린 운명인데.”


그의 운명론은 여전했다. 여전히 나는 운명론은 믿지 않지만, 지금 하는 말엔 반박하지 않았다. 정말 운명이라면 그의 말대로 어디서 어떤 모습을 했더라도 우린 만났을 것이다. 그 생각이 좋았다. 내가 불행해서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이니까. 시간은 늦어지고, 집에 갈 시간이 되어서 그가 일어났다.


“이제 집에 갈게요.”

“얼굴 한번 봐요.”

“괜찮아요. 제 어머니 생각보다 힘이 세지 않네요. 예전에는 얼굴이 퉁퉁 붓도록 때렸는데, 많이 늙으셨네요.”


그의 슬픈 눈을 보면서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그와 어머니 사이에 내가 있으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저히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 말도 미안해하지도 말아요. 저는 단지 제 마음을 보여주려고 데려간 거지 당신 마음에 짐을 주기 위해 데려간 거 아니니까. 그러니까 그만 그런 표정 지우고 웃어줘요.”


나는 어설프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내 볼을 꼬집듯 잡았다.


“웃으라니까. 저 가고 울지 말아요. 당신 울면 제가 바로 눈치채는 거 알죠? 절대 울지 말고 푹 자기. 알았죠?”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약속은 지킬 수 없었다. 그가 나간 순간 눈물은 나를 힘들게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한참 후에 방에 돌아와 엄마 사진을 끌어안고 다시 울었다. 그래서였을까? 오랜만에 엄마 꿈을 꾸었다.     


“미소야? 미소야!”


엄마 목소리에 눈을 떴다. 출근하는 아침 늦잠을 자면 내 방으로 들어와 나를 깨우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볼을 쓰다듬는 손길이 여전히 따듯했다.


“엄마? 엄마.”

“우리 딸! 힘들지?”


엄마는 다 알고 있는 것일까? 모든 걸 다 안다는 듯이 물어오는 말이 다시 눈물샘을 만들었다. 결국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엄마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엄마, 미안해. 울지 마. 나 안 울게. 엄마 울지 마.”


엄마와 부둥켜안고 울었다. 엄마는 연신 내 등을 쓰다듬으며 내 이름을 불렀고, 혼자 두어서 미안하다며 울었다.


“아니야, 엄마. 명호 씨가 있는걸.”

“그 사람 착해 보이더라.”

“사윗감으로 어때?”

“어떻긴! 네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나는 무조건 오케이지.”

“치, 엄마 생각은 어때?”


엄마는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미처 마르지 못한 눈물 자국을 닦아주며 말했다.


“좋은 사람인 건 알겠더라. 미소야. 그 사람 손 절대 놓지 마. 그 사람 평생 널 지켜줄 좋은 사람이야.”

“응, 그럴게.”


엄마는 서서히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눈앞에 없다는 것을 알고 바로 눈을 떴다. 여전히 깜깜한 밤은 처음부터 이 방에서 나는 혼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오늘 꿈은 내 생각을 대변한 말인지 아니면 진짜 엄마가 걱정되어 나타난 건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그 사람 손을 절대 놓고 싶지 않다는 것은 확실했다.


새벽에 깬 잠은 더 이상 오지 않았고,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오늘 있었던 일을 일기로 써 내려갔다. 내 이야기를 볼 그가 어떤 댓글을 달아줄지 살짝 걱정되었지만, 나의 일기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엄마를 만난 꿈도 적었다. 그를 받아들인 후로 엄마 꿈은 거의 꾼 적이 없는 것 같다. 과거엔 엄마가 있어야 완성되었던 내 삶이 이젠 그가 있어야 완성되는가 보다. 이 사실을 그가 안다면 그는 좋아할까? 아니면 부담스러워할까? 분명 전자일 것이다. 그런들 난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이건 나만의 비밀로 간직할 테니까 말이다.


“아침이네. 일단 아침을 먹고, 일해야지.”


월요일이 되었다. 불안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는 절대 나를 떠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사실만으로 나는 충분히 하루를 살 수 있었다. 


“미소 씨?”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팀장님.”

“급한 것이 있는데, 지금 가능할까?”

“네. 가능해요. 메일 보내주세요.”

“고마워.”


마침 일거리도 생겼다. 대형 프로젝트 조사는 신경을 집중해서 해야 한다. 다른 생각은 비집고 들어올 여유도 없어 너무 좋은 일거리이다. 좀 급하게 아침을 먹고 소화제를 챙겨 먹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손가락을 풀었다. 메일을 확인하자마자 노트를 꺼내 들고 메모를 하며 폭풍 검색이 시작되었다.


팀장이 준 일은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가 오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보낸 후 자정이 지나서야 일이 끝났다. 팀장에게 메일을 보낸 후 잠자리에 들었다.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더니 너무 피곤했는지 바로 잠들었다.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은 개운했다.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그에게 맞선에 나가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당연하듯 그는 거절했고, 엄마의 폭풍 잔소리를 듣는 일은 이제 익숙해졌다.

날씨는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왔다. 눈이 오는 날 캠핑은 또 새로웠다. 오늘 캠핑은 그의 첫째 누나와 아들과 함께 같이 가기로 했다. 아들 방학인데, 할 게 없다는 이유로 따라온 것이었다.


누나의 아들은 솔빛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순우리말이라 한자도 없다는 말이 신기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명호 첫째 누나 오지윤이라고 해요. 요놈은 제 아들 솔빛이고, 중학생이에요. 잘 부탁해요.”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윤미소라고 합니다.”

“명호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궁금했는데, 이제야 보네요. 1박 2일 동안 잘 지내요.”


예쁜 이름을 가진 지윤은 어딜 가든 나와 함께 가길 원했다. 그녀가 그러는 이유는 그와 솔빛이 함께 밤 산책을 간 후에 알 수 있었다.


“저희 엄마, 너무 원망스럽죠?”

“아니에요. 당연한 걸요.”

“당연한 게 어디 있어요? 엄마가 욕심이 많은 거지.”


추운 날씨에도 시원한 맥주를 마셔야 한다는 지윤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맥주를 장갑까지 끼고 마셨다.


“아, 시원하다. 미소 씨도 한잔 할래요?”

“저 술이 잘 안 깨서 운전하는 전날은 안 마셔요.”

“그래요? 운전은 제가 해줄 테니 마셔요. 제 얘기 들으면 술이 당길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날 보며 지윤은 웃기만 했다.


“우리 명호 어릴 때 절에서 자랐어요. 어릴 때는 형편이 좋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4살 때부터 중학교1학년 때까지 절에서 자랐어요. 엄마는 그게 평생 한이었죠.”

“몰랐어요. 그런 어두운 면은 전혀 못 느꼈어요.”

“그럴 거예요. 그때 명호가 엄청나게 힘들어했어요.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 집에 왔는데, 자꾸 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얼마나 엄마를 힘들게 했는지, 그때 명호가 한 말 때문에 엄마는 아직도 가슴에 못이 박혀 있어요. 한번 버렸으니 두 번 버리는 건 쉬울 테니 그냥 자신을 버려달라고 했었거든요. 아마 용서할 수 없었겠죠.”


정말 술이 당겼다. 지윤이 따라 준 술을 단숨에 마셨다.


“천천히 마셔요.”

“네.”

“그런 명호가 엄마와 화해한 건 엄마가 아마 큰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에 들어갈 때였어요. 명호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때였죠. 제 딴엔 엄마가 죽는다고 생각했었나 봐요. 그래서 그때 명호가 울며불며 엄마한테 나쁜 말 해서 미안하다고 얼마나 울던지 아직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왜 이런 이야기를 저한테 해주시는 거예요?”

이전 20화 당신이 편하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