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015년 을미년[乙未年]_백남기
세월호 1주기를 지난 2015년은 많은 사건들이 쏟아졌던 해이다. 여름에 메르스로 시작하여 국정교과서, 민중총궐기의 백남기농민, 한일합의까지, 그리고 사진집단 현장 30주년 준비에 기념사업회 일까지. 회사일하며 짬짬이 찍는다는게, 출근하면서 보고, 점심때 보고, 퇴근할때 보고 찍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큰 집회때만 와서 찍는 것이 아니라 매일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 자칫 의무감으로 하는 건 아닌지, 광장은 끊임없이 변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2015년 대한민국에서,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생긴 논란이다. 고려대학교 역사 계열 학과 교수진 등 2015년 10월 28일 현재 70여개 대학 사학계 교수들이 국정화 교과서 집필을 거부하고 각 학교 대학생들은 국정화 반대 대자보 붙이기 운동을 벌이는 등 국정화 반대 움직임이 확산되었다. 그 밖에 정치권에서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시민단체, 진보단체 등 야권에서는 국정화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10월 27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사교과서 친일·독재 미화 기술이 들어갈 것이 없을 것이며, 만약 들어간다면 대통령 자신 부터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후 먼저 나온 초등학교 국정교과서에서 우려했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교과서 폐기를 결정하면서 논란이 종료되었다. 2014년 11월 11일, 정부는 겨울 날씨와 여러 제반 조건의 어려움을 빌미삼아 세월호 수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계속적인 수색을 원했음에도 당시의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색 중단을 발표했다고 한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가장 큰 분노는 세월호 특별법에 세월호 인양을 명문화해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월호 인양과 미수습자 탐색에 대한 유가족협의회와 미수습자 가족들 간의 의견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숫적으로도 소수였다. 미수습자 가족들의 요구는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거리 피켓팅도 유가족 중심이었고, 오로지 홍대 8번출구 앞 거리 서명전만 유일하게 미수습자 문제를 알렸다. 은화 어머님이 페이스북을 통해 미수습자 가족 후원금을 부탁하는 글에 보면, 유가족협의회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채 인양을 맞았다.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차벽을 뚫기 위해 다른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버스에 묶인 밧줄을 잡아당기던 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이후 뇌출혈로 오후 7시 30분에 구급차에 실려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1년 가까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있다가 2016년 9월 25일 오후 2시 15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서울대병원에서 최초로 작성한 사망진단서에는 사망 원인이 병사로 기재되어 논란이 되었으나, 2017년 6월 15일 서울대병원은 사망진단서의 사망 원인을 외인사로 변경하였다. 사망진단서 변경에 따라 6월 16일 경찰도 백남기의 사망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하였다. 그러나 정작 이와 반대로 백남기의 주치의였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는 백남기의 사인이 '병사'라는 소신을 일관되게 고수하였다. 1주기가 되어도 뚜렷한 진상규명은 되지 않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세월호 선체 인양을 약속했으나 세월호 유가족과 충돌을 빚고 있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철회에 대한 답은 회피했다. 팽목항에 있던 9명의 실종자 유가족들은 그런 박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하지 않았다. 박대통령은 세월호 문제를 풀 생각이 전혀 없이 중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한 출국을 앞두고 잠깐 팽목항을 방문했을 뿐이었다. 박근혜는 해외 순방차 출국하였고, 이완구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무를 대행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로 정국은 요동치었다. 실종자 유가족들은 실종자라는 표현을 싫어했다. 그것은 실종이 아니라 미수습자라는 것이다. 미수습자들의 바램은 1. 세월호 인양, 2. 진상규명, 3. 책임자 처벌, 4. 안전사회건설이라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미수습자들의 바램보다는 진상규명이 우선이라고 했고, 진상규명이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니 진상규명의 외침에 강하게 요구하였다.
박근혜정부가 탄핵을 당하고 내려오는 2017년이 되어서야 세월호는 인양되었다. 세월호 천막이 비닐 천막에서 농성을 한지 7월14일, 1년을 맞아 새단장을 하게 되었다. 세월호 유가족 및 시민단체로 구성된 416연대도 6월28일 대방동 여성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시작되었다. 새단장으로 지난 1년간 ‘ㄷ’자 형태로 배치됐던 농성장 천막은 대로를 따라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섰다. 이해 여름은 메르스 사태가 있었고, 새단장한 분향소의 아이들 영정은 알록달록한 액자에 담겨졌고, 색깔이 튄다는 의견도 있었고, 그해 일률적인 고동색의 같은 액자로 바뀌었다. 미수습자 9명은 영정사진 없이 글씨로 놓여졌다. 유민아빠의 단식이 끝나고, 1년간 광화문광장 농성장은 영석아빠와 민우아빠가 그 자리를 지켰고, 천막농성 1주기 리모델링을 하는 기간 불미스런 일로 인해 이후 농성장은 유가족이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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